지금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살다 보면 내가 미운 날이 있습니다.
어제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내가 미웠습니다. 뭐 하나라도 깊게 파고들고 잘하는 게 있어야 성공하는 이 시대에 도무지 뭐 하나 잘하는 게 없네요. 흥미도, 취미도 없고 끈기도 없어서 거울을 보면서 아, 탄식했습니다. 잠깐 틀어본 유튜브에는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있던지요. 성공하고 싶은데, 이 나이 먹도록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잘하는 것 하나 없는 나입니다.
답답할 때면 구글에 검색을 합니다. 네이버나 다음은 안됩니다. 그곳들은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지는 않거든요. 정제된 글이 아니라 흔히들 말하는 '싸질러 놓은' 글들을 보면서 가끔은 위로를 받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건 정말 내 얘기 같거든요. 잘하는 게 없어요 라는 글을 쳐보았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의 고민이 있네요. 대부분은 뻘글이지만, 그래도 가끔 와닿는 글들이 있습니다.
'25살 대학생인데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자격증이나 스펙도 없고, 군대를 다녀와보니 다니던 학과는 사라져서 다른 과 수업을 듣는데 하나도 모르겠다고 하네요. 대부분 시켜서 했던 것들, 해보려다 포기했던 것들이고 잘하는 것 하나 없이 이룬 것 하나 없는 내가 밉다고 하네요. 네, 솔직히 보면서 웃었습니다. 누군가의 진지한 고민을 보고 웃는 건 흥미가 아니지만,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25살이면 아직 창창하잖아요? 이룬 게 아무것도 없다 칩시다. 지금부터 아무거나 잡고 하나만 시작해도 저보다 7년을 빨리 시작했네요. 팔 굽혀 펴기를 매일 하루에 10개씩만 해도 3650개 x 7년이니 어림잡아 몇 만개는 했겠네요. 자격증 공부를 시작한다면 얼마나 많은 자격증을 딸 수 있을까요. 3년간 수능을 공부하고 4년을 대학을 다녀도 이제 제 나이네요. 젊음이 부러워서,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이 샘나서 살짝 질투해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하는 게 하나도 없고, 이 나이 되도록 이룬 게 하나도 없다는 제 글을 39살이 본다면 어떨까요? 방금 내 기분과 같지 않을까요. 지금부터 시작해도 40살 전에 이룰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합니다. 한 분야를 포기하지 않고 7년을 한다면 또 얼마나 전문가가 되어있을까요. 46살이 본다면, 53살이 본다면 어떨까요. 그런 생각을 하니 내 고민이 참으로 작아졌습니다.
나만 빼고 모두가 다 잘 나가는 기분을 느끼는 날들입니다. 요즘은 그런 걸 FOMO 증후군이라고 한다 하더군요. 모두 성공하고 플렉스하고 멋지고 잘 나가는 것 같은데 왜 내 삶만 시궁창일까, 하는 생각들을 한다고 합니다. 근데 사실은요, 사람들은 변한 게 없습니다. 단지 차이라면 성공한 사람들을 예전보다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뿐이죠.
너무 걱정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좀 못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천천히 해도 됩니다. 20살 때 적었던 일기장의 고민들, 지금 와서 보니까 별거 없더라고요. 그때는 피로 쓴 절절한 글이었는데 말이죠. 달라진 건 고작 몇 년 더 시간이 흘렀다, 삶의 경험이 조금 늘었다는 것뿐인데 마음은 이렇게 편합니다. 불안할 땐 나에게 외쳐봅시다. 너보다 열 살 많은 사람들도 그런 고민한다고! 오늘부터 시작하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