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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안 Jan 14. 2024

살기 딱 좋은 날씨

 나를 열렬히 아껴주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기 마련이고,
그러다 결국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드라마 미생 中-



해마다 한 번씩 삶이 곤두박질 칠 때면, 드라마 '미생'을 떠올린다. 숱한 명대사를 남긴 직장인들의 교과서 '미생'. 마음을 울리는 말들이 참 많지만, 그중 제일을 뽑자면 이 대사를 꼽는다.


'일을 잘하려거든 건강하라.' 이 말은 마치 1+1=2 같다. 너무 당연해서 굳이 떠올리지 않는 삶의 공식 같달까. 그 당연함 때문에 어쩌면 가장 막연하게 느껴지는 이상같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일의 능률이나 성공을 말할 때 건강은 생각보다 쉽게 연상되지 않는다. 당연함에 속아 영원할 거라 착각하는 것, 젊음과 욕망의 그늘에 가려 놓치고 버리다 끝내 전부를 잃게 하는 치명적인 공포, 그것이 바로 건강이다. 능력의 본질은, 아니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은 건강에 좌우된다는 것을 몸이 망가진 요즘, 절실히 느끼는 중이다.  


지난해 아픔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 나는, 새해에도 회복과 재발 사이를 오가고 있다. 벌써 1월의 두 주가 지났지만, 제대로 잠을 잔 기억은 없다. 원인 모를 앓이로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면, 그 원인의 화살이 나를 꼿꼿이 응시하고 있다. 밤새 몸을 주무르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며 몸을 진정시킨 후에야 겨눠진 화살이 사라진다. 그럴 때면 차오르는 설움을 꾸역꾸역 목구녕에 욱여넣을 뿐이다.   

 

어젯밤엔 통증으로 몸을 뒤척이다 방벽에 붙여놓은 24년 계획표를 보게 됐다. 배우고 싶은 공부 5가지, 월별 읽고 싶은 도서 리스트, 넥스트 커리어 계획, 가고 싶은 국내외 여행지 등. 삶을 향한 열정과 기대가 한 자 한 자에 꾹꾹 눌러 담겨 글자 밖까지 새어 나오는 듯했다. 그래 맞지, 나 진짜 하고 싶은 거 많은 사람이지. 세상 모든 게 관심사였지.


보통 고통을 분산시킬 땐 웃긴 영상을 보거나 기도를 하는데, 어제는 미생의 대사를 곱씹었다. 어떤 것도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어떠한 결말도 예측할 수 없는 새해의 출발점에 서 시동을 걸었을 뿐이다. 새롭게 맞이할 수 있는 아침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시작이다.


아침 7시, 건강에 좋은 두유 한 팩과 바나나 2개를 챙겨 집 밖을 나선다. 푹 꺼진 정신을 깨우는 겨울바람이 곧장 얼굴에 닿는다. 살기 딱 좋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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