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비싸도 꼭 사고 싶은 것

스누트 3차 과제

by 영글
Auotomat by Edward Hopper


옅은 아이보리색 벽지로 둘러싸인 방 한 가운데 우드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마주 앉는다. 10평 남짓한 상담실. 5단짜리 책꽂이 2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 사이사이에 아담한 화분 몇 개가 보인다. 길게 뻗은 녹색 잎 중앙에 황금색 줄무늬가 선명한 '드라세나 골든 하트'와 하트 모양 이파리가 앙증맞은 '실버 포스트.' 모두 빛이 약한 곳에서도 씩씩하게 자라는 식물들이라 했다.


오후 4시, 은은한 노을 빛이 미닫이 창을 타고 들어온다. 천장에 달린 노란 조명까지 더해지니 오직 두 사람을 위한 무대가 완성된다. 빛이 잘 닿지 않는 식물들도 잎을 숙인다. 낮은 조도가 익숙하단 듯이, 온기를 어디에 채워야 할 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어제는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눈물이 났... 아니다, 쏟아졌어요. 워낙 무방비 상태라 제가 우는 게 맞나 싶더라니까요. 통제도 안 돼서 두 손으로 눈물을 받아낼 정도였어요. 평범한 아침이었는데, 선생님, 정말 별일 없었거든요."


안온한 공간에 조응하지 않는 문장들이 나열된다. 힘겹게 이어 붙인 말들 사이로 밭은 한숨과 번복, 머뭇거림이 섞인다. 선생님이 묻는다. "여전히 잠은 잘 못 자요? 요샌 몇 시간이나 자요?" 나지막한 질문에 눈썹이 뾰족하게 솟는다.


전날 밤의 꿈이 떠올랐다. 가시 철조망 더미에 박힌 철봉에 간신히 매달려 허우적거리던 나. 허구라는 걸 알면서도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억지로 눈을 떴지만 소름끼치게 생생한 꿈은 팔과 어깨에 욱신욱신, 한참을 머물다 사라졌다. 바위투성이 악산을 오른 사람처럼 손톱 끝까지 저릿하게 아팠던 밤이었다.


이번에도 불안에게 진 게 원인이었다. 나는 자주, 내 키를 훌쩍 넘는 불안에 굴복한다. 그것은 눈에 띄게 노쇠해진 부모님 얼굴과 볼품없는 통장 잔고의 형태로 나를 흔들었다. 어느 날엔 숫자로만 대하는 상사 앞에서, 또 다른 날엔 나보다 늘 한발 앞서가는 경쟁자의 등 뒤에서, 가끔은 쉽게 뜨거워졌다 식어버리는 관계 속에서 씨익 웃으며 나타났다 사라졌다.


오후 4시 50분. 상담의 마지막 질문이 던져졌다.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요?" 단어 하나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너무도 분명하고 묵직해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다. 답을 머금은 입이 무거워 고개를 떨구었다. 내려간 시선은 운동화에 멈췄다. 시간맞춰 뛰어오느라 헐겁게 느즈러진 리본. 불안하게 매달린 신발끈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살 수만 있다면 평안을 갖고 싶어요." 말이 자꾸만 길어졌다. 그런 삶이라면, 그런 사람이라면 풀려버린 신발끈쯤 다시 묶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담담함으로, 바스락대는 불안을 낙엽처럼 밟으며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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