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여행, 우리가 해냄 (中)
남한의 최상단 파주에서부터 가장 끝자락 남해까지 장장 412km의 여정. 그 기나긴 여행길에 오른 첫걸음부터 우리는 엉성했다. 새벽 다섯 시 반, 나름 일찍 나섰다고 생각했음에도 여섯 시부터 러시아워가 시작된 서해안 고속도로의 물살을 정통으로 맞아야 했다. 그 덕에 예상 도착 시간은 순식간에 세 시간이나 불어났다.
게다가 첫날부터 하늘에선 장대비가 쏟아졌다. 우리의 여행을 비웃기라도 하듯 빗방울은 점점 덩치를 불리더니 차선을 집어삼켰고, 드센 파도처럼 몰아치는 빗물은 차 양옆으로 튀어 올랐다. 와이퍼는 놀란 강아지처럼 끽끽 소리를 내며 유리를 긁어냈고, 차 안엔 긴장감이 흘렀다.
때마침 미리 맞춰둔 93.9FM 라디오에서는 기독교 방송 프로그램이 시작됐고, 영화 <시스트엑트 2>의 OST 중 하나인 'Oh happy day'가 흘러나왔다. 살얼음판 위를 달리는 듯한 여행길과는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찬송가였다. 그 시각, 나는 경직된 얼굴로 운전대에 매달린 아빠의 옆모습을 지켜보며 가사 속 happy day를 주문처럼 되뇔 뿐이었다.
그 간절한 바람이 하늘에 닿은 걸까. 낮 열한 시, 전라도로 접어들자마자 물 자국 하나 없는 마른 고속도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폭우가 쏟아지던 중부와 달리, 남부는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 선 듯, 상쾌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 자그마한 대한민국 땅에도 지역 간 날씨 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 순간이었다. 이윽고 섬진강 휴게소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오후 한 시 반, 남해 섬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노량대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약 8시간의 여정 끝에 마침내 발을 디딘 남해. 다리를 에워싼 바다 위 윤슬처럼 반짝이는 설렘이 차창 밖으로까지 번져갔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아빠의 메모 첫 줄에 있던 다랭이마을이었다. 이곳은 계단식 논밭을 뜻하는 ‘다랑이’가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놓인 장소다. 10월의 들녘엔 아직 베어 지지 않은 벼가 황금빛으로 출렁였고, 그 너머로는 너른 남쪽 바다가 숨 쉬듯 번들거렸다. 그 멋진 풍경 하나로도 길고 험했던 여정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나는 부모님을 모셔 온 자녀로서 책임감을 안고, 가이드하듯 이곳을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미 저만치 앞서 있었다. 엄마는 코스모스가 흐드러진 언덕 끝에서 바다를, 아빠는 초록 풀이 선처럼 반듯이 그어진 계단 위로 푹익은 벼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되도록 또렷이, 그리고 오래 눈에 담으려 했다. 아름다운 것을 볼 때면 만화 속 캐릭터처럼 "어머! 이것 좀 봐!"를 숨 쉬듯 내뱉는 한 소녀와, 다랭이 논의 역사부터 베트남과 태국 논밭과의 차이까지 줄줄이 설명하는 마을 이장님을. 언제였더라, 두 분이 저렇게 행복해하던 때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 한편이 간질거렸다. 조카들이 새 장난감을 만났을 때 보이던 표정과 그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한껏 들뜬 아이들처럼 설렘을 숨기지 못하는 부모님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들에겐 늘 내가 어린아이였고, 내가 기대고 의지하던 존재였는데. 한해 한해 그들의 젊음을 앗아와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특히 아빠는 지난 3년, 아니 퇴직 후 8년 동안 묵혀둔 에너지를 되찾은 듯했다. 하루 반나절을 차 안에서 보낸 탓에 엄마와 나는 피곤이 역력했지만, 아빠는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한 사람 같았다. 다랭이마을에서 차로 40분을 달려 찾아간 횟집에서 저녁을 먹은 후에도, 시간이 아깝다며 드라이브를 가자고 먼저 제안한 것도 아빠였다. 비록, 저녁 6시가 되면 온 마을이 소등되는 남해의 리듬에 밀려 20분 만에 차를 돌려야 했지만.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세상 저리 가라 코를 골며 잠에 든 아빠를 보며 웃음이 났다. 엄마가 좋아하는 남해를 가자며 설득했던 아빠에게도 잊고 지냈던 환한 웃음이 찾아온 것에 감사하며.
ps. 다랑이마을에서 짝꿍이 되어 열심히 골목을 누비고 다녔던 이장님과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