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아무리 엿 같아도 피약골 보다는 낫다

by 연필소년

나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피약골을 떠올린다.


파국에 치달은 내 부모님이 각자의 피난처를 갈구 하였을 때 짐일 수 밖에 없던 나는 할머니께 맡겨졌다.

그러나 할머니는 바쁘셨다. 사시사철을 살아내는 것 만으로도 힘든 오지에서 스스로를 건사하기도 힘든 와중에 떠 안은 핏덩이를 보고 얼마나 심란 하셨을까.


그러나 졸지에 멀쩡히 살아있는 부모와 생이별을 당한 나의 결핍은 실로 대단 했다. 그랬을 것이다. 그놈의 애정결핍은 40년 후인 지금까지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이었으니까.


수시로 들러붙어 울어대는 네살박이를 떼어내고 들로 산으로 나가는 할머니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데리고 가면 짐이요 두고 가자니 보물인 것이다. 한참의 실랑이가 끝나고 나서야 할머니는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일터로 향하셨다.


어렸지만 알고 있었다. 오직 할머니 만이 나를 신경써 주는 유일한 사람이란 걸. 생이별한 누나 역시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인생을 살았다는 걸 보면 우리 두 남매는 사랑의 냄새 하나 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 맡는 본능이 있었던 듯 하다. ㅎㅎ


그 중에 가장 싫은 건 할머니가 피약골에 다녀 오신다고 나설 때였다.


피약골


어딘지는 몰라도 그 곳에 간다고만 하면 하루종일 집으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곳이란 걸 알았다.

피약골에 피만 나와도 울어재꼈다. 대관절 그 곳이 어디이기에 할머니는 해가 넝넘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때 까지도 도통 돌아오실 생각을 않는 걸까. 참으로 무서운 곳이다.


할머니는 피약골에 이런 저런 작물을 심으셨는데 그 작물들이 잘 자라게 하려면 피도 뽑아줘야 하고 돌도 골라줘야 한다고 하셨다. 당연히 그 딴 건 하루종일 나를 버리고 갈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울부 짖었지만 어쩌겠는가 극성맞은 손주놈은 밥만 먹여준다고 될 게 아니었기에 장에 내다 팔 거리를 더 마련하려면 더 일하실 수 밖에.


좀 더 자라서 할머니를 따라다닐 수 있을 때 가 본 피약골은 그야말로 어마무시 했다. 삼 면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어 답답하고 바람이 잘 들지 않아 더울때 너무 더운 곳, 크지도 않은 밭에 뭔 돌은 그렇게 많은 지 함탱이에 주워담아 밭을 빙 둘러 가생이로 내다 버린 것들이 쌓여 담을 이룰 지경이었다.


끔찍했다. 이런 답답한 감옥 같은 곳에서 하루 종일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혼자 주저 앉아 해가 져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돌을 고르고 피를 뽑고 썩은 잎을 따 내는 일을 한다는 것이.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한 마지기 남짓 되는 지옥 같은 곳을 일구면서 할머니는 누굴 원망 하거나 그리워 하셨을까?


현실이 힘들 때면 나는 과거로 회귀한다.

기억이 시작되는 첫 지점부터 잘못 했거나 아쉬웠거나 슬펐던 부분을 편집해 버리고 지금과는 다른 결론에 다다른 인생으로 만드는 망상에 빠져들곤 한다. 그 때마다 피약골을 떠올리곤 하는데 대부분의 망상은 이지점에서 해결이 되어 버린다.


무더운 여름 날 핏덩이 손자를 집에 두고 피약골로 일 하러 가셨던 할머니의 마음, 뙤약볕 아래에서 하루 종일 골라낸 돌로 쌓은 담, 해 넘어간 서낭당의 어두운 그늘 밑으로 할머니의 모습이 보일라 치면 맨 발로 뛰어 나가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하염없이 울었던 나와 무심하게 잰 걸음으로 손주의 슬픔을 위로했던 할머니의 서툰 사랑.


단 하나 남았던 만질 수 있는 사랑이자 나의 수호신이었던 할머니를 온전히 빼앗아간 그 곳이 바로 피약골이다.


세상이 어찌 이리 힘든 것인가

내 몸 하나 건사하면서 오롯이 살아 낸다는게 이렇게 피곤할 일인가

하루라도 내일 해야 할 일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순 없는 것인가

끝없이 되풀이 되는 도돌이표 같은 삶이 피곤하고 힘들 때

운이 좋으면 나는 피약골을 떠올린다. 온 세상이 무너지고야 말았던

하루의 끝 컴컴한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던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오열하게

만들었던 그 놈에 비하면 작금의 고난 쯤이야 뭐.


수 많은 저녁이 지나도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으시는게

제법 아픈 일이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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