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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년 Sep 23. 2020

알아두면 좋은 내 집 리모델링 순서.

어느 건축업자의 일상.

리모델링은 고객과의 끊임없는 협상과 시간과의 전쟁이다.


계약을 하기 전, 고객이 원하는 전체적인 집의 톤을 정하고 예산을 상정한다. 누구든 싸게 잘 뽑고 싶어 하고 그래서 우린 정해진 금액 안에서 최대한 고객을 만족시킴과 동시에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애 써야만 한다. 공기가 촉박하면 필수적인 작업이 진행되기 어려워서 힘들고 길어지면 그대로 손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수를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처음의 결정이 확정된 약속이라 믿고 진행한다면 결코 끝이 좋지 않다. 끊임없는 재확인을 거쳐 고객의 마음을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합당한 근거를 들어 포기시켜야만 하는게 우리의 역할이다. 이 부분을 들어 업체가 기만행위를 했다고 시위(?) 하는 고객들도 더러 존재하지만 우리는 만지는 물건을 금으로 만드는 미다스도 아니고 연금술사도 아니다. 천원짜리 과자를 떼다 팔고 백원을 남겨먹는 슈퍼마켓 주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고객만족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일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하면 돈과 신용을 잃고 고객은 큰 돈을 들인 만큼의 큰 트라우마를 떠 안아야만 한다.


때문에 항상 합리적이어야 하고 때로 냉정해야 하며 이따금씩 따뜻해야 하는 것. 그게 바로 우리, 건축업자의 소명이다.


첫 미팅 후, 공사기간과 계약이 확정되면 구조를 살펴야 한다. 워낙 발달한 인터넷 덕분에 굳이 방문을 하지 않고도 대략적인 구조정도는 파악할 수 있지만 직접 살피지 않으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세입자나 전 세대주가 거주 중일 확률이 높기에 하다못해 과일이라도 한 봉지 사들고 방문한다. 거듭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대략적인 구조를 파악한다. 간단하게 실측을 하고 부리나케 사무실로 돌아와 일정을 맞추고 선주문을 해야 하는 품목을 정한다.


철거가 진행되는 동안 집의 구조적인 문제와 선결되어야 하는 일정을 짜맞춘다. 새로운 것을 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다. 돈을 주고 들여오면 되니까..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이 집에 살게 될 사람들이 겪게 될 불편을 발견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물이 샐 수도 있고 난방이 시원찮을 수도 있다. 겨울에 찬바람이 쌩쌩 들어올 수도 있고 바닥이 움푹 패여 있을수도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이 먼저 해결되어야만 좋은 리모델링을 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선점검


이 작업이 짧으면 이틀, 길면 삼일안에 해결이 되었다면 좋은 출발이라 하겠다. 이 와중에도 고객과의 새로운 미팅을 통해 섀시의 브랜드와 종류 유리의 두께와 손잡이의 모양까지 정하고 주문이 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목공 작업을 통해 보완해야 할 부분, 천장과 벽 작업을 마무리 하고 고객이 새롭게 만들었으면 하는 부분(이를테면 슬라이딩 도어나 아트월, 포인트 벽의 웨인스 코팅 등.)을 시작한다.

디자인과 색상 정하기


문틀이 세워지면 욕실과 주방, 발코니를 꾸밀 타일을 고르고 주문함과 동시에 샷시 작업이 시작된다.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긴장감을 유지한다. 공기가 넉넉하다면 실수를 하거나 고객의 변심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만 빡빡한 일정이라면 모든것에 날 선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다. 늘어진 시간을 수복하기 위해 밤샘작업이라도 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다세대나 공동주택, 아파트의 경우엔 이웃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응당, 타인의 시간도 소중한 법이니까.

문틀 및 목공 작업


섀시 작업이 끝나거나 혹은 진행중에 타일작업을 시작한다. 주 자재나 부 자재가 부족하면 작업 자체가 딜레이 되고 밀리기 때문에 넉넉히 딱 맞춰서 주문해야 한다(?) 잘 해야 하고 작업자 또한 손실 없이 잘 써야만 한다. 남들이 보기엔 전문가가 들어와 알아서 작업을 해주니 속 편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속 모르는 소리다. 공정 사이에 쌓인 폐기물의 처리와 매끄러운 공정별 연계를 위해 우린 또 부리나케 움직여야 한다. 심지어 기술자라고 다 초 일류는 아니다. 감독하는 입장에서 보면 참 마음에 안들고 아쉬운 부분이 많이 보이기도 한다. 하물며 주인이라면? 리모델링에 대해 1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돈을 쓰는 입장이 되면 일명 주인의 눈이라는 스킬이 발동된다. 작은 티끌 하나도 찾아내 버리는 신묘한 힘 말이다. 이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어떤 입장에서건..

타일작업


타일 작업 전, 욕실의 모든 물이 나오는 구멍을 막아줘야 하고 혹시 설치될지 모를 비데와 칫솔살균기, 핸드 드라이어 등의 전자제품을 위한 콘센트 작업을 해 줘야 하고 설치가 끝난 주방 섀시 주변으로 원활한 타일작업을 위한 밑작업을 해 준다. 동시에 주방 싱크와 각 방에 들어올 싱크 및 붙박이 업체를 불러 협의를 하고 또 다시 고객과의 미팅을 통해 가구의 디자인과 냉장고, 후드, 인덕션 등의 위치를 정하고 식기 세척기나 오븐 레인지등의 사용여부등을 확인한다. 정수기의 위치와 추가로 필요한 콘센트의 수량 및 위치 또한 파악한다.


혹여, 포인트 벽이나 아트 월을 만들어야 할 경우, 기존에 설치된 조명 외에 추가로 매입등이나 간접조명등을 설치하고자 한다면 이 기간에 미리 전선 작업을 해 둔다. 현관까지 타일 작업이 끝났다면 입구 중문도 설치해 준다.


중문


타일 작업 후엔 욕실 세팅을 하고 문을 달아준다. 이 즈음에 도배가 들어올 수도 있다. 도배의 경우 기본적으로 물을 많이 쓰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욕실 세팅이 끝난 후나 여의치 않을 경우 동시에 시작한다. 이제  본격적인 마감이다. 30평대 기준으로 도배는 이틀간의 작업시간을 갖는다. 첫날은 밑작업 및 초배지를 바르고 둘째날은 천장부터 시작해 본격적인 벽지작업에 들어간다. 가장 눈에 잘 띄는 공정이기 때문에 신경써서 작업을 해 줘야 한다. 더욱이 도배의 경우 부분 보수가 불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에 작은 하자도 허용치 않아야 한다.

욕실세팅


도배가 끝나고도 작업일이 꽤 남아있다면 하루쯤은 작업을 쉬어 가는것이 좋다. 마르는 과정에 지나친 통풍이나 온도차가 생길 경우 벽지가 울거나 찢어질 수 있기 때문이고 미처 다 마르지 않은 상태로 다음 공정이 들어올경우 쉽게 하자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배작업이 끝나면 가구팀이 들어오기 전에 조명을 설치해 두는 것이 좋다. 조명은 간단하다. 정해진 자리에 달면 된다. 일반인도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게. 다만 까다로운 디자인을 골랐다면 두명이 협동한다. 잘못하면 천장지를 훼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후, 붙박이와 수납장 및 싱크가구 작업을 진행한다. 이미 철거가 시작될 무렵부터 싱크와 붙박이의 동선과 디자인을 정해 놓기 때문에 지난 열흘정도의 시간동안 준비해둔 자재가 물밀듯이 밀려와서 정해진 폼대로 작업하는 덴 길어야 이틀이다. 거의 조립만 하면 되게끔 되어있는 걸 보면 대한민국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조명 가구 싱크 및 입주청소


드디어 가구작업 까지 끝나면 하루정도 여유를 가지고 모든 공정과 세밀한 부분들을 점검한다. 누락, 하자, 교체, 변경 일체를 고객과 함께 점검하고 완료되면 입주청소를 한다.


이제 고객님이 이사를 하시게 되고 며칠간 생활하면서 느껴지는 불편함이 있다면 일정을 잡아 방문을 하고 해결해 드리는 것으로 모든 리모델링이 끝난다고 볼 수 있다. 사소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거울 하나 달아 드리는 것이나 액자 하나 걸어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해결해 드리는 것만으로도 고객은 크게 감사를 표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에 리모델링을 고민하는 지인이 있을 때 지체없이 소개시켜 주시기도 하니, 공사가 끝났다고 나몰라라 하는 것 보다는 꼭 한번쯤은 재방문을 하는 것이 오히려 나중을 위해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에 애착이 강하다. 대부분의 인생이 내 집 마련이라는 중과적 목표에 초점이 맞춰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집이 있냐 없냐 혹은 해올 수 있냐 없냐에 따라 생의 가치가 결정되기도 한다. 어찌보면 참 서글픈 일이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복잡하고 다변하는 세상속에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안전한 보금자리 정도는 있어야지 않겠는가 말이다.


힘들다. 그리고 돈을 못 번다. 자재값 뻥튀기고 인건비 뻥 튀겨서 내 한 몫 단단히 챙겨 나갈만큼 약아 빠지지도 못했다. 미련하게 일하고 손해나 안보면 다행이다. 그래서 그만두고 싶은 적도 많았고 아직도 어디 뭐 다른 할 일이 없을까 기웃거리기 일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와 땀이 들어가 완성된 집을 보면 뿌듯하고 무엇보다 너무 잘 됐다고 좋아들 하시는 고객을 보며 기운을 얻는다.  보람과 성취를 따지자면 그래..이 일만한것도 없다. 시멘트 가루, 톱밥, 곰팡이, 페인트를 뭍혀가며 얼룩덜룩 더러운 옷을 입고 한데서 일할지 몰라도 이 집 구석구석 닿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애 쓴 보람을 느낄때면 그간의 시름과 걱정이 모두 날아간다.


그래서 그만두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돈? 돈이야 뭐 언젠가 벌리겠지.

일단 굶고 살지는 않으니까..그만하면 됐다 치자..


이제 주섬주섬 짐을 싣고 트럭에 시동을 건다. 이 현장을 시작할 땐 여름이었는데 끝나고 나니 가을이 되어 있다. 다신 돌아가지 못할 또 하나의 계절을 쏟아부은 곳이 오래도록 예쁘고 깨끗하게 쓰여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 안의 가족들 모두가 안온하길 바란다.


아! 아직 한가지 할 일이 남았다.


최대한 빨리 집으로 돌아가 전화기를 끄고 샤워를 한 다음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침대로 다이빙 한다. 그리고 허리가 아파 누워 있지 못 할 만큼, 자고 싶지 않아질 때 까지 늘어지게 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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