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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년 Sep 24. 2020

건축업자로의 삶에 대한 짧은 소회

출근길 놓여진 노을 앞의 고해성사

인테리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지 정확히 7년이 되었다. 


끈기는 없어도 추진력은 좋은 편이라 마음먹자마자 모든 것을 정리하고(없는 살림에 손해를 감수하면서 까지) 목공 학원에 등록하고 두 달을 다녔다. 그때의 인연으로 나를 좋게 봐주신 형님과 함께 이 업계에 접어들었다. 당연하게도 세상은 기대가 클수록 처참한 결과물을 안겨주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런 게 아니었어."


내가 꿈꾸던 건축일은 멋있는 공구 벨트를 차고 정해진 설계에 맞춰서 나무를 재단하고 자르고 박고 끼워 맞춰서 멋있는 조형물이나 선반, 책장, 가구 등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막상 처한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온몸이 새 하얘질 만큼 뿌옇게 피어오르는 시멘트 먼지 한가운데에서 일을 해야 했고 시커멓게 그을린 화재현장에서 냄새만 맡아도 코피가 질질 흐르는 쓰레기를 줍고, 지워지지도 않는 검뎅자욱을 쇠솔로 박박 문대는 일 따위로 시작한 것이었다. 



"이건 건축일이 아니라 그냥 막노동 이잖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기 저 기술자들은 옷도 나름 깨끗하고 깔끔하게 자기 일만 하고도 20만 원 이상씩 척척 벌어가는데 나는 허리도 피지 못하는 빌라 지하에서 갇혀서 죽도록 일하는 데도 돈벌이가 좋지 않았던 것이 불만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내가 했던 일은 건축일 중에서도 가장 힘들면서 대우는 시원찮은 분야였던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을 때 환한 미소로 나와 함께 일하고 싶음을 피력했던 당시의 사장님께(그리고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는 현재의 "형님"이신 그분) 적지 않은 분노와 원망을 품었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왜 이리 잘 가는지 어~~ 하는 새에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첫 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짙은 회의감에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살고 있던 와중에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쓸데없는 추진력이 또 발동해서 앞 뒤 안 가리고 그만둬 버리고는 앞으로 절대 건축일은 하지 않겠다는 지금 생각하면 참 쪽팔린 행동을 하고 말았지 뭔가. 죽을 것 같고 미래도 보이지 않고 도무지 좋은 구석이라곤 찾아볼래야 찾을 수 없었던 현실에서 탈피했다는 사실 만으로 처음엔 행복하다고 느꼈지만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간 쏟아온 열정과 이를 악물고 견뎠던 숱한 현장들. 하루 14시간이 넘도록 공들여서 일했던 시간들이 점차 아깝기도 했고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상황이 나를 다시금 이곳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던 것 같다.(그러고 보면 온 우주 어쩌고 하는 법칙이 실재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 같기도.)


7년. 


올 8월로 나는 꽉 찬 7년 동안 이 일을 하고 있다. 처음 4년은 "하자보수"라는, 업계 종사자들이 극도로 기피하는 일을 했었고 그때의 참혹한 경험들이 지금에서야 빛을 발하고 있는 중이다. 차 후의 글에서 다룰 수도 있지만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었음은 함께 고생한 동료들도 인정하고 있을 만큼 분명한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그중에 버티고 살아남은 이는 내가 유일하다는 웃픈 현실과 함께.


근래에 리모델링을 비롯한 비로소(지극히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건축 다운 건축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그때의 그 거지 같던 일들이 내게 얼마나 주옥같은 경험과 놀라울 정도의 경험치가 되어 주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비양심적이고 편법을 악용하는 업자들. 주먹구구식으로 자기 일만 생각하는 기술자들을 다루면서 나는, 제대로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그간 겪었던 고된 일들 모두가 이 일에 대한 올바른 방향성과 신념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경험이었음을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엔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게 존재한다고 서술되어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무슨 일이든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만 적정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골자의 내용인데 최근엔 그 시시비비에 대한 갑론을박이 다소 존재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전문가적 눈이 트이는 것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노하우를 토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의 입장에 섰을 때 가져야 할 도의적인 책임감을 마땅한 신념으로 여기는 때가 바로 그 시점임을 말이다.


모두가 기피하는 일을 억지로라도 해야 했던 초창기의 나는, 스스로의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좌절을 맛보았다. 제삼자의 입장이었을 때는 마냥 멋있고 있어 보였던 일이 실상은 그저 그런 낙오자들의 피난처였을 뿐이라는 것과 이 일은 실패자의 영역이고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낮추다 못해 바닥을 치고 뚫고 내려가야만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이런 일을 10년, 20년 지속한다는 것은 결국, 내 인생이 실패로 점철되어 모든 가치를 포기하고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패배자의 길로 접어든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지옥 같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적 고비를 넘고 육체적인 한계를 맞이해 앓아눕기도 해 가며 맞이한 현시점에 바라보는 출근길 노을 앞에서 가슴이 웅장해짐을 느끼며 나는 과감히 선언해 본다. 


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했고 한 때 의심하기도 했으나 결코 틀리지 않았으며 좌절하고 의심했던 시간들을 버티고 감내한 결과 지금의 시점에 이르렀다고.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안온의 기준선이 어디에 그어져 있던 그 어떤 편법 없이 정직하게 쌓아 올린 지금까지의 커리어가 나를 그 자리에 데려다 놓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른 아침.

늘 같은 시간에 지나는 출근길에 놓아진 노을을 보며 주저리주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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