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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년 Oct 18. 2020

본체와 분신 사이.

36년 띠동갑 부자 이야기

우리 부자는 난생 처음 4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통화를 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70넘은 아버지와 40다 된 아들이 그 긴시간 동안 무슨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야 너 자동차 보험료 냈어?"

"냈죠 그럼."

"알았어 어험."

"오늘 뭐 하셨.."

뚜-뚜-


언제나 용건이 끝나면 서둘러 통화가 종료되는 우리 부자의 긴 통화의 사연은 다름아닌 "문자 메세지 복사" 때문이다. 시골에서 이런저런 과일농사를 짓는 부모님이 가끔 부딪히는 난관이기도 한데 분명히 배송이 완료되었다고 떴는데 상대방이 물건을 받지 못했다고 컴플레인이 들어오는 것. 자주 있는 경우가 아니라 뭔가 잘못됐겠거니 하고 한 박스씩 더 보내 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제 더이상은 못 참겠다고 느끼셨는지 내게 연락을 하고야 만 것이지.


"바쁘니?"

"아뇨. 이제 막 집에 들어왔어요."

"얘. 그 메세지 말이여~"

"예. 메세지 뭐 어떤거요?"

"내가 받은 메세지를 다른 사람한테 똑같이 보내려면 그것도 방법이 있을까?"

"어떤 메세지인데요?"


어지간히 억울하신 모양이었다. 아버진 자신의 "정직"함에 대한 강박이 있으신 분이다. 당신의 아들인 내가 그 기질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의심 받을 때 치솟는 억울함의 크기 또한 잘 알고 있다.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로 자존심을 누르고 내게 전화를 한 것이란 사실을 짐작하는 것은 분신인 나로선 너무나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어. 아부지! 그래서 그걸 길게 3초정도 눌러봐요 뭐가 보여요?"

"글자 복사. 삭제. 뭐 이런게 보이네"

"그렇지! 그럼 복사를 누르고! 이제 메인화면으로 나가!"

"메세지로 가서..어!..어!..이걸 눌러? 세게 눌러? 길게 누르라고? 우째 번호가 안나와 그래. 가만 있어봐! 어! 야 나온다. 그리고 뭐 하라고?"

"그렇지! 그걸 인제 누르고! 자 이제 오른쪽 밑에 종이비행기 모양! 아버지가 평소에 메세지 보내실때 그대로 누르면 돼!"

"야 됐다! 이게 인제 보내진거지? 됐다. 됐어. 그럼 인제 전화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돼!"

"위에 녹색 긴 줄 눌러서!"

"어 눌렀어!"

"통화 상태 나오면 밑에 중앙에 빨간 종료버튼 그거 누르면 꺼지지!"


뚜-뚜-뚜-


역시는 역시 역시였다. 아버지는 다소 길었던 용건이 끝나자마자 여지없이 전화를 끊으셨다. 수십년간 겪은 일이라 나 역시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뭐. 그래서 요 며칠 일은 어떤지. 건강은 챙기는지 같은 낯 간지러운 의례따위 우리 부자에겐 시간낭비였다. 별 말 없으면 잘 지내는 거지 뭐.


"풋!하하하하하하!"


내가 당신의 자식이 아니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냥 아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어디선가 주워왔다고 믿을만큼 우린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닮지도 않은 얼굴때문에 의심은 점차 확신이 되었고 서로에 대한 기대가 꺼지고 실망이 도를 넘어 포기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우린 부자의 연을 끊다시피 하고 살았었다.


왜 나를 돌봐주지 않아? 왜 보듬어 주질 않지? 왜 위로해 주지 않아? 왜 응원해 주지 않아? 왜 날 지켜주지 않을까? 당연하겠지. 난 당신 자식이 아니니까.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빚을 떠 안았을때 잠을 줄여가며 일을 하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던 수많은 날들을 버티게 해 준 것은 다름아닌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 어쩌면 약간의 증오와 원망이었는지도 모른다. 보일러도 없는 반지하 창고방에서 패딩점퍼를 입고도 오들오들 떨면서도 아버지에겐 그 비루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니까짓게 그렇지. 니가 뭘 할 수 있겠어."


그 조롱과 힐난의 눈빛을 보느니 죽는게 낫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이 고난에서 살아 남는다면 내 기어코 당신을 이겨먹을 것이고 큰 소리 빵빵 치면서 무시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버텨냈던 것 같다.


이제는 안다. 조롱과 비난이라고 느꼈던 그 말들이 사실은 자신과 똑 닮은 분신에 대한 걱정과 염려였고 나의 분노와 증오는 단지 당신에게 인정 받고 싶은 어리광 이었다는 것을.  닮아도 너무 닮아서 실패의 지점과 이유와 감내해야 될 고통마저도 비슷해 지니 걱정은 짜증이 되고 화가 되어 표출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 길은 잘못됐다고 말 한들 받아들이지 못할 놈이란 사실도 너무 잘 알고 계셨을 것인데.


당신의 아들이니까.


우리 부자는 각자 또 같이 삶의 전환점을 맞고 있는 중이다. 아버지는 조금 말 수가 많아지셨다.  전화를 걸면 "어 아들~아부지여!" 정도의 애정표현은 할 줄 아시게 되었다. 별 용건 없이 연락을 하셔서는 밥은 먹었는지 일은 잘 되는지 등의 시덥잖은 안부를 물어보시고 처음엔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아버지 왜 전화하셨어요?"

"뭐 꼭 이유가 있어야 되냐?"

"그냥 그거 물어보실라고 하셨다고?"

"흠..험..야 집엔 언제 오냐? 너 사과즙 먹을 줄 알어? 이번에 생즙좀 내려놨는데 좀 보내줄까?"


'보고 싶으니 시간 내서 집에좀 와라'


나는 이제야 아버지의 말을 제대로 해석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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