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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년 Nov 29. 2020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의 목록

#2

"미안하다. 형이."

사정이야 어떻든 사장님은 사과를 하셨다. 근자에 확연히 줄어든 일거리로 인해서 우리의 수입이 사라지게 된 부분에 대해. 딱히 사과받을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계약이 되어 있는 부분이고 그래서 돈을 벌 수 없다는 불안감을 뛰어넘을 정도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시간으로 이 시기를 충분히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후로는 더 이상 수입의 공백은 공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괜찮다고 말씀드릴 수 있었다. 진심이었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이야기해 주신 부분에 감사했다.  

그건 그거고.
추진로켓에 불이 붙었을 때 밀고 나가야 한다. 이 중대한 결심에 대한 열정이 꺼지기 전에 뭐라도 일단 시작해야 하기에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의 목록을 작성해 보기로 했다.





1. 몸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뒤에 나올 목록들에 미치는 영향력도 가장 강력하다. 사실, 제일 쉬우면서도 혁신적이며 확실한 변화를 모색하고자 한다면 몸을 만드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실현해 낸다는 건 별개의 것으로 봐야 한다. 체계적인 식단관리를 해야 한다는 희대의 난제와 단기간에 완성되지 않는다는, 조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내겐 더욱이 어려운 난관인 것이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전 국민이 열광하고 있다 해도 좋을 정도로 다이어트 열풍이 강한 나라에 살고 있는 만큼,  오직 나만이 의지 부족이란 불명예를 가진 건 아니니까. 작년에 당한 어깨 부상을 어느 정도 치료하고 다시 운동을 시작한 지는 3개월째가 되어간다. 여전히 장시간의 운동은 통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일회 50분 이상의 지속이 힘들긴 하지만 고맙게도 아직까지는 '내일부터 다시 하자'는 게으름이 업데이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패션(어떻게 하면 옷을 잘 입을 수 있는 걸까?) 

나로선 정말 어려운 일이다.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변에 옷 잘 입는 사람들에게 물어볼 때면 항상 많이 입어봐야 한다고 하는데 그걸 누가 몰라! 그 실패의 과정을 좀 줄여볼 수는 없냐 이거지! 하여튼 옷 잘 입는 사람들은 말을 참 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본인들만 모르는 것 같다. 일단 나의 패션을 짚어보자면.. 음... 어.. 짚을 게 없다. 말 그대로 최악이자 최 저랄까?  그냥 벗고 다닐 수 없으니까 입고 있는 사람. 그게 바로 나란 사람이지. 하하하!(자존감이 떨어지고 있다.) 일 할 때는 늘 작업복을 입고 다니기 때문에 새 옷을 입을 일도 없거니와 퇴근하면 집 밖으로 나가질 않으니 또한 예쁜 옷을 고르는데 시간을 쏟을 이유가 없다. 그나마 발이 편한 걸 좋아해서 신발은 좀 사는 편이지만 운동화. 그 마저도 발 볼이 넓은 관계로 키에 비해 조금 큰 사이즈를 신기 때문에 기능성 이상의 무언가는 기대하기 힘들다. (네. 여기까지 패 알못의 궁색한 변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희망적인 요소도 없지만은 아닌 것이 어쭙잖게 아는 척할 필요 없이 정말 없을 無 의 상태라는 점이다. 마흔에 가까워서야 옷을 잘 입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일까? 

 

3. 대인관계 (친구 만들기)

최근 한 모임에 가입신청을 했다. 소규모의 친목 사교모임으로 활동인원이 약 20명을 웃도는 7080 모임이다.(아저씨가 되다니.. 어디 갔죠 나의 청춘은?) 처음엔 운동이나 독서모임을 나가볼까 했지만 두 활동 모두 혼자 잘하고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제대로, 잘 노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소위 인싸들처럼 주위에 사람이 와글거리고 시의적절한 유머센스와 배려심 따위의 생활양식 따위는 내게선 찾아볼 수 없는 덕목이다. 그래서 단순하게 놀러 다니고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들 수 있는 가벼운 주제의 모임을 선택했다. 이 항목을 적다 보니 뜬금없이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당신 스스로 자중하시기 전까지는 핵 인싸의 길을 걸으셨던 아버지.... 자신감이 +1 상승했다.

 

4. 수익구조의 변화 모색 

이 항목은 추가로 만들었는데 지금의 힘든 계절(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현재의 직업은 이듬해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란 확신과 불안을 느껴서이다. 올 한 해 블로그 운영을 하면서 느낀, 요즘 사람들이 참 부수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오히려 부업의 발전을 통해 본업과의 전환을 꾀하면서 자신의 노동력과 시간을 좀 더 발전적인 부분으로 사용하려고 한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내 직업기술을 좀 더 많이 팔아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시국을 겪어보고 나니 상당히 고루한 발상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건축업, 특히 내가 하고 있는 분야는 앞으로의 발전성도 충분히 기대해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 플랫폼의 시장 독점현상(심지어 기술도 서비스도 떨어지는)과 자체적인 마케팅 홍보 능력의 부재로 인해서 상대적 손실을 겪고 있다. 점점 개인화되어가고 있는 마케팅 시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의 소중한 인생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의 목록을 구성해 봤다. 중요한 건 실천이다. 그럴듯한 계획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끝을 보려는 사람이 적을 뿐이지. 그러니까 자기 계발 서니 동기부여니 하는 것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 또한 오늘의 게으름을 변명하기 위해 그것들과 가까이했던 시절이 있었다. 빈약한 희망고문에 기대서라도 나의 무능을 변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이 없어졌다. 일이 없어지니 나도 없어졌다. 두려웠다. 아니 두렵다. 덜컥 벼랑 끝으로 내 몰린 기분이 끈적하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평생을 걷고 뛰기만 했던 나는 하늘을 나는 법을 알지 못한다. 날개가 돋을지 확인하려면 기어이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내디뎌야 한다. 확률은 반 반. 날아오를 것이냐. 그대로 추락하고 말 것이냐. 


이 글은 그 첫 번째 내딛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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