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필소년 Nov 27. 2020

뜻밖의 시간,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1

노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무서울 줄이야.


2020년을 관통하는 가장 크고 두려운 주제는 코로나이다. 연초에 시작된 이 전염병은 우리의 삶 속에 급속도로 침투했고 한 해가 다 가도록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사실 나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호재였을 수도 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사람들은 인테리어나 리모델링에 관심이 많아졌고 해당 업계 종사자로서 조금은 씁쓸한 이 기회가 반가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온 국민의 참여와 협력으로 잦아들고 있었던 이 놈의 이슈가 다시금 위험 수준으로 격상되었고 이제 사람들은 뭐가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공장소의 이용에 제한이 걸렸고 식당이나 술집 등은 밤 9시 이후의 영업을 포기해야 했다. 여러 사람을 대면해야만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도 예년보다 조금 빨리 비시즌이 찾아오게 되었다. 불만을 터뜨릴 때가 아니란 걸 알고는 있지만 불안한 겨울 시즌을 보내야 하니 마음이 답답해졌고 무엇보다 이 넘쳐나는 시간을 일이 아닌 것으로 채워야 한다는 막연함이 더없이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표면적으로는 비수기, 체감상으로는 실직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처음 며칠은 먹고 자는 일에 치중했다. 그동안 힘들게 일했으니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자는 생각이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택적 게으름은 너무나 달콤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마음 한편에 불안감이 싹트고 있었다. 잘 먹고 잘 자고 그동안 못했던 취미생활에 열을 올려볼까 하는 생각에 다다르니 나의 취미가 무엇인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깊게 파고들진 못했지만 나는 꾸준히 독서를 했고 운동을 했었는데 일을 하지 않아 남아도는 이 긴 하루를 채우기엔 턱 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결혼을 한 사람들이 듣기엔 참으로 배부른 소리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남아돌아 힘들다니. 희대의 망언이로다. 그러나 혼자 사는 마흔을 앞둔 남자에게 이것은 더없이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일단은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마침 김장철이기도 했으니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의 김장을 도와드렸다. 며칠 머무르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각자의 터전이 있기 때문에 너무 길게 머무르다 보면 부모님이나 나나 익숙지 않은 루틴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니 반가움이 무뎌지기 전에 돌아와야 했고 나는 또다시 기약 없는 다음 스케줄을 기다리며 마냥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시간만 죽이기엔 몸에 익은 성실함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줄어들지를 않았다. 운동 시간을 늘려도 보았지만 관절과 근육에 쌓이는 피로감 때문에 매일같이 유지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노동과 운동의 영역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몸살과 근육통으로 하루 내내 끙끙거리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또 의미 없는(돈을 벌지 않는) 며칠을 보내고 나는 깨닫고야 말았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이리도 허무할 데가! 일을 할 땐 바쁘고 힘들어서 생각조차 못했다. '뭐 하지? 어딜 가야 하지? 누굴 만나야 하지? 아니, 누굴 만날 수 있지? 만나면 무얼 해야 하지?' 이 느낌을 굳이 말로 설명해 보자면 의식 불명에 빠져 병원 침대에 누워 지내다 10년이 지나서야 눈을 떠서 몰라보게 변한 세상과 늙고 무뎌진 몸에 비해 정신과 내공은 전혀 성장하지 않은 느낌. 시간이 남아도는데 놀 수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는데 심지어 퍼질러 누워서 시간 죽이는 것조차 못하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놀아야 한다. 최선을 다해 놀아야 한다. 굳이 노는 것에 최선이란 말을 붙인다는 게 참 나답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노는 것 마저 일을 하듯 수행해야 할 과제로 인식하고 있는 현실을 떠올리니 한 편으로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 단호히 결심해 보건대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한 방법으서 노는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폐쇄적인 생활을 해오며 잃어버렸거나 찾지 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서 내 안에 채워 보려 한다. 가령, 비행기를 탄다던지(아주 오래도록 비행기를 타 보지 못해서인지 무언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처음으로 든 생각)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어 본다든지 30편 이상의 연결되는 글을 써 본다든지 가벼운 관계부터 될 수 있으면 진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해 본다든지.. 돌이켜 보면 오랜 친구 몇 명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개인적 인간관계를 만들지 못한 내가 조금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하는 의문마저 들 지경이다. 


이런 글을 주욱 써 내려오다 보니 문득, 영화 '쇼생크 탈출'의 브룩스라는 인물이 떠올랐다. 인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낸 그가 마침내 석방되어 자유의 몸이 된 영화 속 작은 이야기. 분명한 '역할'과 '쓸모'가 있던 감옥과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그저 늙은 외부인에 지나지 않는 그의 처지는 바꾸기엔 너무 늦어버렸고 그래서 적응을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했다. "브룩스가 여기 있었다" 고 하는 소심한 절규와 함께 목을 매는 그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언젠가 사회 속에서 나의 '역할'을 필요로 하지 않거나 실행할 능력을 잃어버렸을 때의 내가 맞이할 절망적인 상황을 지금, 이 시기에 조금 축소된 상태로 맞이한 거라고 생각한다. 잘 활용한다면 나 개인의 인생에 좋은 전환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 결론에 조금 과하게 기대 볼까 하며.


이제부터 '잘' 놀아보기로 결심했다.

작가의 이전글 저희 어머니께서 우리 엄마가 됐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