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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년 Dec 16. 2020

애늙은이와 철부지 어른이 그 사이 어디쯤

브런치 작가란 것이 내게 준 의미

"너는 말하는 게 어쩜 그렇게 애늙은이 같아?"


꽤 오래도록 따라다닌 꼬리표였다. 이따금씩 '내가 정말 그런가?' 하며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첩첩산중에서 할머니 손에 크고 또래 친구가 없었기에, 보수적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한참 어리광 부릴 나이를 간주 점프해버린 탓이려니 했는데 20대가 넘어서까지 그런 말을 듣고 있자니 철 없이 사고 치고 다니는 엄마 친구 아들이나 옆 집, 옆 옆집 아들내미들이 경험한 황당무계한 판타지 이야기들과 비교하면 비교적 잘 자란 축이 아닐까 하는 자부심에 어깨뽕이 상승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언제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주변의 평가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너는 어쩜 그렇게 철이 안 드냐?"

"언제까지 그렇게 뜬 구름 잡는 소리 할래?"


나는 달리 한 것이 없고 변한 것이 없는데(그래서 조금 슬플 정도로) 왜 나는 애늙은이에서 철없는 어른이가 돼버린 걸까? 




'언젠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거야'


마음껏 꿈에 대해 이야기해도 됐던 어린 시절, 대통령이 되겠다고 해도 모두가 박수를 쳐 주던 그 시기에 나의 꿈은 친구들의 그것들과 비교하면 다소 소박한 꿈이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저놈이 어떻게 그런 꿈을 이야기했지 싶은 돼먹지 못한(어떤 친구는 장동건이 되는 게 꿈이었다... 재현아 미안해) 이야기들도 꿈은 꿈이니까 그럴 수 있지~ 했었는데 왜 나의 꿈은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하고 싶은 마음과 적당히 받쳐주는 재능과 필요한 만큼의 노력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내 것은 모두의 지지를 받아 마땅한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경지'에 위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학교에서 요구하는 '장래희망' 조사에 소설가, 문학가 등을 적어 낼 때면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곤 했었다. 아마도 뭉실뭉실 부푼 희망이 아니라 딱딱하고 현실적인 느낌이어서 그랬던 듯도 하다. 허기사 당대의 '글쟁이' 들은 유명한 몇몇을 제외하면 펜대를 굴리는 업종 중에서도 그다지 각광받는 직업이 아니었다. 소위 최고가 되지 않으면 돈 벌어먹기 힘들고 집안에 폐를 끼치게 되어 있으며(그 와중에 결혼은 빨리 해서 애들은 줄줄이 낳고 마누라만 죽도록 고생시키는) 젊은 나이에 폐병 걸려 죽기 십상이라는 인식이 강해서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한테 끽해야 미술학원 선생밖에 더 하겠니? 했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꿈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루에 네다섯 시간씩 주어지는 야자시간에 빈 공책을 상상으로 채우는 소일거리는 감독 선생님의 매의 눈으로도 도저히 찾을 수 없는(영락없이 열공하는 모습) 일탈이자 한 시간을 1분처럼 느끼게 하는 마법 같은 일이었다. 지루할 때면 무언가를 적으면서 시간을 때우려고 하는 습성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내겐 참 잘 어울리는 취미이자 특기였던 것이다. 그랬는데..


20년 후.

아직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을 꿈꾸는 나는 이제 '철없는 놈'이라 불린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다. 다른 것이 있다면 '빈약한 의지' '재능의 부재' '상상력 고갈' 등의 불편한 조건이 몇 가지 생겼다는 것뿐일까. 애늙은이 같다고 말하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런 허무맹랑한 꿈을 꾸고 있느냐" 고 혀를 차기 일쑤다. 여보세요 여러분. 그저 시간이 흘렀을 뿐이잖아요. 그때는 꿈을 크게 가지라더니 이제 와서 허무맹랑한 것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까. 꿈에도 복리가 붙는단 말인가요? 되묻고 싶지만 슬프게도 반박할 수가 없다. 부득부득 악을 써 가며 관철했던 나의 꿈은 주인을 잘 못 만나 시간의 파도를 정면으로 맞으며 넝마 떼기가 되어 버렸음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뭘 했어? 니 꿈을 위해서 네가 한 게 뭐야?'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수 백 수천의 단어들을 주워다 이리 짜고 저리 맞춰봐도 마땅한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생각보다 빠르며 꿈이 없이 지나온 인생은 황량한 사막과 같다는 진부한 진리 정도는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으려나. 나는 꿈을 방치했고 꿈은 그런 나를 외면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바로잡을 수는 있는 건지 알아낼 수 없을 만큼 꿈과 맞바꾼 현실은 잔인하고 냉정하다.





그 어려운 변명의 낱말들을 겨우겨우 그러모아서 한마디 거들어 보자면, 그래. 나름 어렵고 힘들고 게으르게 살아오면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품 안에 소중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포장해보자. 파릇한 열정과 패기가 꺼져갈 때쯤, 은근한 모닥불이라도 피워내며 근근이 살아올 수 있었던 원천이 바로 그 꿈이었다고 말해보자. 그러나 막상 꺼내놓으면 매혹한 인생 칼바람에 쓸려 영영 사라져 버릴까 두려웠노라고 적어보자. 풋풋한 첫사랑이 가슴시릿 첫 고별이 되고야 마는 99%의 진리처럼.. 널 잃어버린 채 남은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묵혀왔던 것이라 고백해보자. 그러나 소중히 간직한 것만은 틀림이 없기에 '글 쓰는 이'가 되기를 소망했던 애늙은이가 여전히 같은 꿈을 꾸는 철부지 어른이로 변해온 수많은 시간 속에도 간신히 너를 붙잡고 있을 수 있었다고 토로해보자.


브런치 작가가 되었던 날을 기억한다. 사실 뭐, 대단한 일은 아니지. 몇몇 블로그에  "브런치 작가 되는 법"이라는, 라면봉지 뒷 면에 나온 조리법만큼이나 쉽다고 떠들어대는 포스팅이 나돌아 다닐 만큼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닌 감투일지도 모른다. 돈벌이를 위해 글을 쓰는 사람, 이미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에겐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것들이 그렇다면 왜 내겐 그렇게나 특별한 순간이었는가.  "글을 쓰는 사람"을 넘어 "작가" "소설가" 등의 이 세계 판타지로 느껴지던 일들이 이제는 내가 사는 동네 위에 뜬 별이 되어, 누군가는 로켓을 띄워 이 별 저 별을 건너 다니며 여행하고 있는 것을 뉴스로라도 접할 수 있는 것 같은 정도의 현실성은 느껴지니까. 


내 꿈은 여전히 넝마 떼기이고 나는 철부지 어른이라 전에 없이 고달프고 외로울지언정, 이것은 수 없이 내디뎠던 첫 발자국이 아니라 지워지지 않은 최초의 발자국으로 기억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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