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필소년 Nov 03. 2021

배웅

 아버지.

 올해도 어김없이 김장철이 찾아왔습니다. 몇 달 전 함께 비닐을 씌우던 밭고랑에도 배추가 여물어 이파리를 벌리고 있겠네요. 그 것 들을 잘라다 쪼개서 소금에 절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허리가 저려오는 것 같습니다.


"얘~ 다음 주 금요일 김장하려고 그러는데 너 올려?"

"예, 일을 빼야 하긴 하는데..보고요."


  언제나 그랬듯 강요도, 부탁도 아닌 질문과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답으로 전화를 끊고는 금요일 일정에  "김장"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다보니 문득, 독립을 하고 십수 년 동안 아버지의 몇 번이나 흔쾌히 그러마고 답을 드렸는지 궁금해 졌습니다.


 바빴던 적도 있고 바빴던 척을 한 적도 있고 몸이 아픈 적도 있고 아픈 척 한 날도 있습니다. 솔직히 여러 핑계의 몇몇은 거짓말이었음을..고백합니다. 대부분은 아버지에 대한 미움 때문이었음도 함께요.


사실, 제가 만들어낸 슬픔과 고통을 감내하기가 두려워 피하고 싶을 때마다 저는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나를 세상에 내놓은 당신이 그 책임을 다 하지 못하여 내 인생이 이렇게 고달파지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 오랜 시간의 도망은 그래서였다고, 아마도 아실 테지만..전 아버지의 분신이니까.


아버지.

작년 이맘때의 김장날이 생각납니다. 밭에서 잘라온 배추더미에 파묻혀 우리 부자가 함께 흘린 구슬땀, 차가운 바람과 따뜻한 햇살이 공존하는 이상한 날씨의 11월이었습니다. 구르마를 끌고 밭이랑을 건너오던 위태로운 두 다리를 기억합니다. 제겐 늘 성난 폭풍 같았던 아버지의 얼굴이 이제는 사소한 근심조차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야위어 있음을 그 때야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는 괜시리 가슴 한켠이 뜨끔했지만 달리 건넬 말도, 어쩔 도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부자 사이면 다 그런 것일지도 아니면 긴 시간, 서로가 서로에게 했던 모진 말들이 정작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말을 꺼낼 수 없게 됐을 만큼 우리를 멀어지게 했기 때문인지 모를 일입니다. 그저 평소처럼 시시껄렁한 농담과 푸념, 잔소리를 늘어놓을 뿐이었습니다.


 아버지, 저는 당신을 꽤나 미워했습니다.

 우리의 시간이 나뉘기 훨씬 이전부터 참 많이도 미워했습니다. 구태여 왜 그랬는지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만큼 지금은.. 지금은 그 마음이 조금 달라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만 알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세월이 아버지의 시간을 깎아내는 동안 모난 저의 마음도 조금은 둥글게 깎아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에는 우리의 좋았던 기억들도 많이 되찾았습니다. 단둘이 5층 베란다에 앉아 구경하던 길 건너 공설운동장의 불꽃놀이. 우리 집 전통의 입맛 살리는 음식인 물에 말은 밥과 새우젓, 김치, 매운 고추를 작은 상에 차려 함께 먹은 날. 거짓말을 했다고 한참을 혼난 후 자전차 포에 데려가 사 주신 네발 자전거. 책이 많이 꽂혀 있던 작은 방에 이불도 없이 새우잠을 주무시던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 다리 하나를 끼워 넣어야만 잠들었던 날들도 다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우리의 체온이 가장 가까웠던 시간속 일들 말이죠.


 돌이켜보면 그 시절, 아버지는 아버지를 여의셨죠. 많이 무섭고 외로우셨겠죠. 지금 아버지가 없어지면 제 마음이 어떨까 하는 상상을 차마 하기도 싫을 만큼 아찔한데 지금의 제 나이때 였던 당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입니다. 홀어미의 아들, 칠남매의 맏이, 한 여자의 남편, 두 아이의 아비, 한 집안의 장손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독하고 고달픈 것인지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된 지금의 저로서도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이해받지 못했고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쌓인 외로움이 마음 속 단단한 얼음이 되고 송곳이 되어 우리의 마음 곳곳을 후빈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이제는 녹아내린 얼음이 젊음과 함께 씻겨내려 앙상한 겨울나무가 되어버린 당신의 앞에는 여전히 철이 없고 이기적인, 그러나 누구보다 그때의 당신을 닮아있는 제가 서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세월을 긍정하고 인정함에도 선뜻, 마음을 내 보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퉁명스러운 아버지의 안부인사에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제가 좀 우스울 때도 있지만 곱절의 시간을 견뎌온 당신이 아직은 서투른 저의 표현 속에서 만족스러운 대답을 찾아내시길 바랄 뿐입니다.


"야, 살 좀 빼라. 너도 이제 나이를 생각해야지."

"차 조심하고."

"술 조금만 마셔."

"담배는 좀 끊어라."

"들어가"


할 일 다 했으니 이제 그만 가보겠다고 하는 아들의 뒤에서 무심하게 던져지는, 그러나 무엇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는 듯 귓가로 날아든 아버지의 배웅을 몰래 주워 담았습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차마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저 뒤로 멀어지는 풍경 속에 덩그러니 놓인 당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흘끔거리며 한숨을 쉬는 것이 지금까지는 저의 최선이었습니다.


 아버지.

 이번 주말엔 그 배웅에 답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제가 내 놓을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말보다 조금만 더 따뜻한 대답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위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