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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빛나 Apr 04. 2016

몽유병

나는 그 애와 자주 오솔길을 걷곤 했다 모두가 잠든 밤이면 별들의 속삭임을 자장가 삼아 사슴의 머리맡에서 단잠을 자기도 했다 아이는 은행 나무를 좋아했다 이상하게도 그 은행 나무는 사계절 내내 노란빛을 띄었다 살랑이며 내리는 무희들을 아이는 사랑했다 이름이 있었다 그 애가 제일 좋아하고 사랑했던 무희는 파도였다 나는 그 애를 이해할 수 없었다 푸른 것과 파란 것은 다르기에 무도회가 열릴 때면 그 애는 덩쿨 사이에 숨어 그들이 춤추는 것을 보았다 이상했다 별들은 자장가를 노래하고 있었는데 아이는 월광을 읊었다 유난히 달빛이 아이를 담고 있었다 달빛에 녹아드는 듯이 잠든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쏟아지는 달빛의 모습을 빌려 아이와 사랑을 추었다 옅게 바스락거리는 아이의 속눈썹은 깊기만 했다 달빛이 아이에게 물든 탓일까 오로라의 향이 났다 잊기도 기억하기도 힘든 향이다 그래서 나는 그 애의 입술을 좋아했다 닿을 때면 수천의 무리들이 사막을 걷기에 나는 아이의 옆에서 모닥불을 찢었다 찢으면 찢을수록 그들은 더욱 화를 냈다 죽음을 예지하는 것일까 나는 마지막 만찬을 선물하며 말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그 아이를 사랑하거든 그들은 곧 잠잠해졌다 모닥불이 빛에 가리는 시간이 오면 우리는 깨어났다 눈을 비비고 팔을 구름에 적시고 물이 담겨 무거워진 몸을 이끌어 계속 걸었다 아이는 지친 표정을 했다 우리 조금만 쉬다가 가자 가시들이 고개를 숙일 때마다 아이는 겁먹은 듯 말했다 가시가 우리를 감쌀 거야 우리를 떼어놓을 거야 나는 그 애를 사랑했기에 존재의 뒷면에 가시를 숨겼다 숲에 은행 나무가 많아진 기분이 든다 멀리로 어항이 보였다 그 애는 훔친 팅커벨의 가루를 흩날리며 뛰기 시작했다 저기 봐! 어항이야 당분간 머무르다 가자 아이는 어항 속에 있던 인어를 보지 못한 것일까 가지 말자 가지 말자 오아시스야 돌아서자 돌아서자 아이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애의 귀를 간지럽히던 내 작은 목소리는 금새 사라졌다 나는 아직도 내 목소리의 행방을 모른다 아이는 인어를 보고 금붕어라 하였다 뿜어내는 오렌지빛이 살결같다고 했다 내가 눈에 담은 인어는 라일락을 닮았었는데... 아이는 어항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아름다워 꼬리 속에서 춤을 추고 싶어 아이의 손끝 주변으로 잔물결이 차올랐다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 응 나는 그 인어의 감정을 알고 있었다 그 아이를 보는 눈에 담긴 건 진주가 아닌 슬픔이었다 해적들은 인어의 눈물을 사랑했다 체온을 만나면 강하고 아름다운 돌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어항 속에 있는 것일까 오늘은 일찍 해가 진다 어항 주변의 작은 나무 위에서 잠을 잔다 아이의 입술을 삼키지 않았는데도 방랑하는 자들이 많았다 우리 앞을 지나가며 소리를 흘렸다 이 길을 잊으면 안 돼 그레텔 가녀린 목소리는 대답을 하였고 우리는 그 진동에 흔들렸다 서서히 눈을 감았다 무도회가 열리는 장소가 아닌데도 시끄러웠다 빛들이 순간들을 비집고 들어왔으며 아프게 찔렀다 눈을 사랑하는 빛인지 자꾸만 눈을 찔렀다 흐릿함 속에서 숨을 쉬었다 혀끝까지 습기가 차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꽃들이 자라고 있었다 잠시나마 찾아온 가을이 나에게 안겼다 어항 속에는 인어가 없었다 나의 위로는 딱딱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뚝뚝 끊기는 노래는 듣기 힘들었다 귀를 막았더니 향이 차올랐다 익숙한 향 우리가 보았던 목소리의 향 시나몬의 향 그리고 ... ... 오로라향 이상하게도 딱딱한 비들이 나를 묻기 시작했다 움직이거나 생각을 하면 더욱 깊어졌다 그들은 내가 발버둥칠수록 축축해졌다 내 눈 위로 손을 얹고 있었다 일렁이는 유성을 가져다 눈에 넣을 힘이 없었다 내 마지막 숨결이 눈꼬리에 닿으려 할 때였다 나의 무거운 몸은 무언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점점 커지고 있었다 눈을 뜨지도 않고서 달렸다 벗어나려는 순간 까만 정적이 찾아왔다 감은 눈 사이로 여러 색들이 번지기 시작했다 손을 뻗었으나 느껴지는 것은 나를 헤집는 공기 뿐이었다 아 이상한 꿈이었다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잖아 눈을 비비고 천장을 향해 손을 벋었다 나타나는 곡선은 아름다웠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오로라향은 무엇인가 나의 발 옆에는 메리제인이 신었던 구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애는 구두를 신고 있었구나 나는 우리가 헤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난 계속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었다 깨어나지 않는 진실이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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