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교권보호위원회를 통해 심리 상담을 지원받게 되었다. 3개월 이내에 접수해야 하는데 학교는 교사가 상처를 돌볼 시간을 주지 않았다. 30여 명을 담임으로서 챙기고 150여명 앞에서 수업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결국 딱 3개월째되는 날, 녹초가 되어가던 방학을 맞이하기 직전에 교육청 협력 기관의 목록 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날짜를 잡았다(그럼에도 대중교통으로 편도 2시간이었다).
상담센터에 처음 방문한 사람은 <상담 신청서>와 함께 <성인 상담을 위한 질문지>를 작성한다. '결혼 여부' 칸이 미혼, 결혼, 비혼, 재혼, 별거, 기타로 다양하게 나뉘어서 신기했다. 한편 직장, 종교, 학력 등의 구체적인 질문엔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사전에 서밤님 블로그의 <심리상담 FAQ> 시리즈를 보고 가서 다행이었다. '상담에서 왜 이런 걸 물어보죠?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내담자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말하기 불편하다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와 같은 내용을 떠올렸다.
질문지를 적은 후엔 잠시 기다리는 시간을 가졌다. 옆에 있는 팸플릿을 무심코 집어 읽었다. 상담 효과로 일곱여 개가 적혀있는데 그중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좀 더 편안하고 안전한 세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편하고 안전한 세상, 이라는 말을 읊조렸다. 안전이 강조되는 학교에서 교사의 안전은 어디에 있는지 그간 질문할 생각도 못 했다.
따뜻한 공간에서 차를 마시며 상담 선생님과 대화하고 질문에 답을 하다보니 문제상황이 나의 언어로 정리되었다.
교사로서 아이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이 많고
-> 그러면 그냥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기지 못하고
-> 1) 학생과 기싸움을 하거나 2) 좋게좋게 타이르고 나선 왜 나만 어르고 달래는 역할이 되어야 하지? 라는 생각에 지쳐버리고
->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좁을까 죄책감을 느끼는 흐름이 반복됨.
상담 선생님의 동의하에 기억에 남는 대화 조각을 기록한다.
상담 선생님: 아이들과 왜 기싸움을 하나요? 기싸움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나: 기싸움이란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상대는 상대가 옳다고 생각하며, 서로가 서로의 인정을 바라는 상태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생각을 굽힐 마음도 없고 내 생각을 상대가 인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싸움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상담 선생님: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 교사'란 어떤 모습인가요?
나: 바른 모습을 보이며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상담 선생님: 본인이 바른 모습을 보이며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나: 저로서는 최선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최선인지는 모르겠어요. 어느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성향이 달라지는 것처럼, 어느 담임을 만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성향이 달라질 수 있잖아요. 우리 반 아이가 만약 다른 담임을 만났다면 학교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담 선생님: 그건 다른 사람과의 비교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자신이 최선을 다했으면 그 외에는 자신의 범위를 벗어난 게 아닐까요? 자신의 범위를 벗어난 것까지 통제할 수는 없어요.
나: 그러나 사람마다 '최선을 다한다'라는 기준이 다르잖아요. 나는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지만 남들에게 못 미치는 수준일 수도 있어요. 또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 방법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요.
만약 선생님께서 우울한 사람을 10회기 동안 상담했는데 그 사람이 전혀 나아지지 않고 계속 우울하다면, 선생님은 스스로 내가 잘못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실 것 같나요?
상담 선생님: 안 들 것 같아요. 저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에요. 최선을 다하느냐가 중요해요.(이때 단호하게 답하셔서 놀랐다.)
상담 선생님: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과 '현재 나의 모습'이 불일치할 때 느끼는 감정을 수치심이라고 해요. 현재 00씨는 학생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높은 이상적 모습을 기대하고, 이것이 자꾸 좌절되면서 수치심을 느끼는 것 같아요. 현재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도요.
나: (나를 평가하는 것 같은 발언에 신경이 곤두섰다.) 그런데 제가 잘하고 있든 아니든 수치심은 슬픔, 기쁨처럼 감정이잖아요. '슬프지 말아야지', '기쁘지 말아야지'가 성립되지 않는 것처럼 감정이란 그냥 찾아오는 것인데 어떻게 안 느낄 수가 있나요?
상담 선생님: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려면 자존감을 높여야겠죠.
나: 그쵸, 자존감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는 건 알아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존감을 높일 수 있나요?
상담 선생님: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은 신념체계를 넓히는 거예요. 신념체계를 넓힌다는 건 '교사란 또는 나는 ~ 해야 한다(I have to/I should/I must)'에서 끝내지 않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까지 나아가는 거예요.
칭찬을 많이 받는다고 자존감이 높아지지는 않아요. 스스로의 신념체계가 넓은 사람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에요.
나: 나도 사람인데 가끔 학부모나 학생과 대화하다 보면 나만 왜 자꾸 상처받아야 하지? 왜 상처받는 소리를 듣기만 하고 똑같이 해주지는 못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상담 선생님: 교사는 전문가예요. 전문가니까 유연하게/전문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고, 동시에 사람이므로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해야 해요.
나: 학교가 의무 교육인 게 힘들어요. 하루종일 학교에 앉아있는 게 싫은 아이들도 반드시 학교에 와야 하잖아요. 성인 상담이야 자신이 힘든 걸 이렇게 줄줄 말하지만, 아동 상담자의 경우 다르지 않나요? 자의로 상담 온 게 아닐 경우 말을 하지 않는 아이가 있을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아이가 몇 개월의 상담 내내 끝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더라도, 선생님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있나요?
상담 선생님: 그런 걸 선택적 함묵증이라고 해요.
상담사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관련 증세를 이해하고 상담에 들어가며, 그 아이는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겠다고 선택한 거라는 걸 알아요.
그 아이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앞에 있는 나 때문이 아니에요. 그 아이의 배경과 역사가 말을 하지 않기로 선택하게 한 거예요.
이때 상담의 목표는 말을 하지 않는 아이를 말을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에요. 말을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배경과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거의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상담실을 나섰다. 상담이 처음이라 모르는 것도 많았고 '나는 내가 제일 잘 알아'라는 태도로 견제하기도 했다. A4를 반으로 접어 한쪽엔 '마음에 드는 나', 다른 한쪽엔 '마음에 들지 않는 나'를 적어오는 걸 숙제로 받아왔다.
나에겐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상담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돈을 내고 대화를 한다는 게 꺼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히 달랐다.
친구들에게 말할 땐 "(상대의 어떤 행동이) 짜증 나!"라고 말하고 상대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면 상담은 나의 행동, 나의 감정에 더욱 집중한다. 친구의 말엔 동의하지 않는 것이 있어도 굳이 반박하지 않지만 상담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반박한다.
이곳에선 나를 숨기지 않아도 나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 내 속마음을 말해도 안전하다는 것, 상담 선생님은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본 경험이 있으시다는 것, 이곳에서의 이야기는 비밀이 보장된다는 것과 같은 '전문가에게 돈을 지불한 약속'이 든든했다.
즉 평소엔 내가 좋아하는 나의 면모만 나라고 우기고 싶었다면, 상담실에선 내가 싫어하는 나의 면모까지 나라고 내보일 수 있었다.
건강한 교사가 건강한 교실을 만든다고 믿는다. 학교에 학생들을 위한 위클래스가 있는 것처럼 교사를 위한 상담도 열려있어야 한다. 변화하는 학교가 보고 싶다.
ps. 나는 학교로 돌아가면 상담을 해야 하는 사람이고, 상담 선생님의 화법 그 자체에서 배운 점도 많다. 첫째는 이름 부르며 대화하기, 둘째는 '공감 + 질문 + 나의 경험 말하기'를 적절하게 섞기, 셋째는 설득시키려고 하지 않고 나의 생각을 말하기. 이 세 가지 요소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떡도 먹어본 놈이 많이 먹는다고, 상담도 받아봐야 세심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