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져도 괜찮아

선생님은 무슨 책을 읽을까?(3)

by 홍차


이슬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2월엔 전국국어교사모임 새내기 연수에 다녀왔다. '교사가 무엇을 가르칠까'가 아니라 '학생이 무엇을 배울까'를 중심에 두고 확장해가는 선생님들이 멋있었다. 수업 구성도 활동 방식도 따라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의욕이 불끈 앞선 젊은 교사들 앞에서 선배 선생님들은 '꾸준함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강조하셨다. 꾸준함, 즉 일관성이 없으면 아이들과 신뢰 관계를 구축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좋은 것도 한 해 동안 꾸준하지 못할 거라면 안 하는 게 낫다고 하셨다.



우리 조 멘토 선생님께선 매일 종례신문을 만든다고 하셨다. 오늘의 전달사항, 칭찬거리, 주의사항, 때로는 추천 도서나 추천 노래 등을 담은 A4 한 장짜리 신문을 종례시간마다 배포하고 학기말엔 문집으로 엮어서 나눠가진다고 하셨다. 예전부터 욕심났지만 엄두가 안 나던 일이었다. 용기를 얻어 2년차인 나도 종례신문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다만 우리 학교에서 수업시수가 가장 많은 내가 스스로 지치지 않기 위하여 '금요신문'으로 주 1회 발행하기로 했다.



신문을 꾸미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말로는 쑥스러워 하지 못했던 좋아한다는 말도 듬뿍 할 수 있었고 전달 사항도 체계적으로 목록화할 수 있었다. 개학 첫날 나눠줄 창간호는 특히나 공들였다. 며칠 동안 고민하여 개학 이틀 전, 토요일 밤에야 완성했다. 뿌듯한 마음에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런데 자꾸 걸리는 게 있었다. '선생님이~' '선생님은~'이라고 반복되는 주어였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수직적이곤 하지만 나는 가능한 한 수평적이고 싶었다. 지난 학기 내내 외로움에 시달리던 아이를 또다시 담임으로 맡게 되어 눈에 밟히기도 했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을 기웃거리며 아무리 말을 걸고 장난을 쳐도 나는 교사고 아이들은 학생이었다. 아이들과 내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걸 이제 막 인정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눈높이를 맞추고 싶었다.



주어를 '나는'으로 바꿨다. '선생님'은 '나'로, '학생'은 '너'로 바꾸었다. 주어만 바꾸었을 뿐인데 이미 완성한 글이 이상해졌다. 일방적인 전달사항이나 규칙 안내는 주어가 '나'로 바뀌자 어색한 문장이 되고 말았다. 결국 새벽 4시까지 모든 글을 뜯어고쳤다. '해야 한다'는 요지의 글들은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는 시작점 때문인지 늦은 밤이기 때문인지 '나는'으로 시작하는 글들은 자꾸만 솔직해졌다.



막상 글이 솔직해지자 걱정되었다. 솔직한 마음을 내보이는 건 낮아지는 일이었다. 보다 근엄하고 진지한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이건 너무 감상적인 게 아닐까, '선생님답다'라는 건 무엇일까, 수많은 생각들이 불쑥불쑥 솟았다. 그럴 때면 신규 교사 연수에서 "여러분이 이제 교육경력 3년을 채우고 1정 연수를 받으면 1급 정교사가 되잖아요? 1정 연수 받기 전 3년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세요. 그래야 자신만의 철학을 세울 수 있고, 나에게 어울리는 교육을 할 수 있어요."라던 선배 선생님 말씀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불안해질 때면 이슬아 작가의 책을 다시 읽었다. 나는 이슬아 작가의 글을 무척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 또한 그의 글을 좋아한다. 엄마를 '복희', 아빠를 '웅이'라고 부르며 가족, 연애, 누드모델 아르바이트 등 개개의 경험에 대한 솔직한 속마음을 꺼내보이는 글이 둥근 그림과 함께 이어진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가운을 벗고 무대에 오르면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몇 시간 동안 내 알몸을 그렸다. 연필이 종이에 닿는 소리를 들으며 시선 속에서 멈춰있는 동안엔 아무런 이야기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 옷을 입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나를 둘러싼 그림들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나를 그려놓은 그림들이었는데 어쩐지 모두 그들 자신을 조금씩 닮아 있었다.

허리가 긴 사람은 내 허리를 실제보다 더 길게 그려놓았고, 입술이 두꺼운 사람은 내 작은 입술을 실제보다 더 도톰하게 그려놓았다. 코가 높은 사람이 그린 나의 코는 실제보다 오뚝하였고 미간이 좁은 사람이 그린 나의 미간은 실제보다 좁았다.

누구나 남을 자기로밖에 통과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두 눈으로 확인했을 때 나는 조금 위안이 되었던가, 아니 조금 슬펐던가.

-p. 183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읽다보면 분명 따뜻해졌다. 단단한 연대의 기분이 생기기도 했다. 자, 이슬아 작가를 봐봐. 솔직해져도 괜찮아. 멋지잖아. 그렇게 나 자신을 스스로 믿어주었다.



'금요신문'이란 제목은 '금요일의 편지'로 바꾸었다. 제일 위에 박아두었던 학교 로고는 '우리 반 로고를 모집합니다'라는 문장으로 대체했다. '신문'이란 단어와 학교 로고는 '나는~'으로 시작하는 글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 완성한 금요일의 편지를 다시 읽었다. '선생님'이 아니라 '나'가 있었다. 한 꺼풀 발가벗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홀가분했다.



내일은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이 편지를 서른한 장 인쇄할 것이다. '나'와 '너'가 어떤 이야기들을 채울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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