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무슨 책을 읽을까? (1)
요조, 『오늘도, 무사』
국어 교사라는 직업으로 9개월을 꾹꾹 채웠다. 누군가를 만나선 눈빛을 반짝이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생생히 느껴요. 나는 내 아이들을 사랑하는구나 하고요."라고 단언하기도 했고, 누군가를 만나선 속절없이 "버겁고 두려워요."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감정 곡선이 요동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 퇴근하면 라면 등의 간편식을 먹고 소화되기도 전에 도피하듯 잠든다. 새벽에 일어나서는 수업 준비로 바쁘다. 두통이 잦고 피로가 무겁다. 심리상담센터를 알아봐야지 수십 번 생각하면서 검색할 겨를이 없다.
바쁘면서도 무기력한 이상한 나날이다. 정신을 다잡자는 다짐을 며칠째 실패하다가 드디어 움직였다. 퇴근하고 예쁜 그릇에 쑥떡을 담았다. 광화문 스트리트 마켓에서 받은 투명 컵에 얼음을 가득 넣고 카누를 탔다. 후식으로는 동그란 마카롱을 곁들였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묶었다. 에코백에 텀블러 하나를 넣고 팟캐스트를 들으며 도서관까지 10분쯤 걸었다. 가는 길에는 ABC 초콜릿 한 봉지를 샀다. 찬찬히 책장을 둘러보며 여러 책을 뒤적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 요조님의 『오늘도, 무사』다. 제주도 독립서점 '책방 무사'의 주인이 된 지 4년째인 뮤지션 요조님이 1년 차에 쓴 글들을 묶었다. 이 노란 책을 들고 좌식 자리에 쿠션을 기대어 자리 잡았다.
책장을 몇 장 넘기기도 전에 시험공부를 하러 온 아이들을 여럿 만났다. 외진 동네에서 살기 때문에 도서관에 가면 우리 학교 아이들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고, 이왕 마주칠 거면 기분 좋게 만나자는 생각에 이미 "나는 도서관에 자주 간다. 도서관에서 나를 만나면 간식을 주겠다."라고 선포해두었다. 아이들은 꾸벅 인사를 하자마자 기쁜 얼굴로 "간식 주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만나는 아이마다 ABC 초콜릿을 건넸다. 그렇게 오후 햇살이 스며드는 곳에서 초콜릿을 한 개씩 나눠주며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책방을 일궈내는 일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인데도 자주 나의 하루가 겹쳐 보였다. 때때로 울 뻔했다. "제 책방 정말 예쁘죠"라고 질문하는 장면에선 "우리 애들 정말 예쁘죠"라고 말하는 내가 겹쳤다. 책방 주인들끼리 한숨 쉬며 힘들어요, 힘들어요, 하는 그 어두운 얼굴 틈에서 작게 빛나는 '단호한 행복'의 빛을 발견한 대목에선 동료 선생님들과 떠들썩하게 떠드는 날들이 기억났다. '나는 너무 순진했다. 인간상이 이토록 (좋지 않은 의미로) 다양할 줄 몰랐다.'라는 서술에선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내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멋지고, 다정하고, 고맙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문장에선 결국, 결국엔 과분한 사랑을 건네던 여러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버렸다.
그녀가 고른 몇 권의 책과 함께 달력을 포장하면서 카드를 몰래 넣었다.
얼마 뒤 손님이 다시 책방에 찾아왔다.
놀라움과 감사가 뒤섞여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런 얼굴을 계속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다 이렇게 만들어놓고 싶어. -p. 226
4개월 만에 포기하고 싶다고 울고, 딱 2년만 최선을 다한 다음 그만두겠다고 결단하고, 그렇게 채 1년도 지나기 전에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하기로 다짐하는 어엿한 책방 주인 요조님이, 그 울음과 웃음이 곳곳에 베여있는 이 기록이 고마웠다. 사랑함과 버거움이 교차하는 이 글들 덕분에 앞으로는 나의 요동치는 감정 곡선에 덜 당황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서관에서 돌아와선 따뜻한 물로 샤워했다. 물을 끓이고 커다란 머그컵에 유자차를 타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어제는 무너졌지만 오늘은 다짐하는 날이다. 내일 또 무너질지라도 오늘의 다짐을 기록한다면 여전히 의미 있다고 믿는다. 글을 쓰려고 보니 <조금씩, 다르게, 살아가기>라는 부제가 이제야 천천히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