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할 수 없는 잘못도 있는 거야.

신규교사의 시행착오 및 깨달음: 잘 혼내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

by 홍차




중학교 2학년 교실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어르고 달래고 괜찮다고 토닥이고 때로는 진지하게 혼을 낸다. 나와 엇비슷한 키의 아이들은 천방지축으로 장난치다가 일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지면 그제야 눈치를 보고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에게 강조한다.



"선생님이 늘 말하는 게 있지? 거짓말이 가장 나빠. 거짓말을 하면 신뢰가 깨지기 때문이야. 한 번 깨진 신뢰는 회복하기 힘들어. 누구나 실수를 하고 누구나 잘못을 해. 실수할 수도 있고 잘못할 수도 있어. 다만 실수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중요한 거야."



학교는 국영수 같은 교과 지식뿐만 아니라 함께 사는 법을 익히는 곳이다. 실수해도 잘못해도 괜찮다는 것, 스스로 인정하고 사과하고 책임을 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정말로 모든 실수와 잘못이 괜찮을까? 스스로 인정하고 사과하고 책임진다면 혼을 안 내도 될까? 교직생활 1년 만에 의문이 들었다.








금요일 오후 마지막 교시는 우리 반 수업이다. 여러 차시에 걸쳐 <흥부전>을 비틀어 자신만의 소설로 재구성하는 중이었다. 지난 시간엔 인물을 설정했고 이번엔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을 구상하는 활동지를 나누어주었다. 뒷자리에서 물고기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소리가 소란스러웠다. 나는 킬킬대는 쪽에 다가가 눈높이를 맞췄 앉았다. 나도 장난에 끼어들듯 가볍게 질문했다.



"뭔데? 무슨 일이야?"



아이들은 서로를 곁눈질하며 웃었고 한 아이가 입을 뗐다.


"○○이가 미술실 어항에서 물고기를 몰래 가져왔는데요, 그걸 뺏어서 애들이랑 장난치다가 죽었어요."



'죽었다'는 그 동사를 듣자마자 얼굴이 굳은 채로 언급된 학생을 바라봤다.



"이○○."



이름 부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아무리 심각해도 '우리'를 빼먹지 않고 '우리 ○○이'라고 불러왔다. 처음으로 성까지 붙여서 단호하게 호명했다. 순식간에 교실이 조용해졌다. 평소와 별다를 것 없는 장난이라고 여겼던 아이들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이건 형광등을 깨거나 복도에서 뛰어다니는 것과 달랐다. 몇몇 학생을 통해 대충 상황 파악을 하고 두 학생에게 종이를 한 장씩 주었다. 해당 학생은 변명하려는 듯 입을 뗐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쓰세요."



그렇게 받은 종이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글이 삐뚤빼뚤하게 적혀 있었다.



'미술실에서 ○○이가 어항에서 튀어나온 물고기를 주워서 통에 담아왔습니다. 저는 그 통을 뺏어서 물고기를 손에 쥐고 여자애들 앞에 들이대며 장난을 쳤습니다. ○○이가 물고기를 다시 가져가서 안 주려고 하길래 뺏으려고 하다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손으로 주워서 화장실 세면대에 넣고 물을 틀었는데 뜨거운 물이 나왔습니다. 친구들이 물고기가 파닥이는 것을 구경하면서 만져보라고 했습니다. 움직이지 않자 죽은 것 같다고 하길래 꺼내왔습니다. 옆에서 친구들이 웃으니까 저도 모르게 신이 났습니다. 물고기를 밟으라고 했고 시체를 훼손했습니다. 납작하게 되는지 보려고 쓰레기통으로 눌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서 있기가 힘들었다. 슬픔과 분노와 배신감과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얽히고설키며 거북하게 치밀어 올랐다. 교탁에 섰다. 새삼 거리감이 느껴졌다. 한 명 한 명이 낯설었다. 내뱉는 목소리가 떨렸다. 일부러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누군가는 물고기의 죽음에 슬퍼한다는 걸, 생명을 담보로 건 장난에 분노한다는 걸 꼭 알려주고 싶었다.


마침 며칠 전에 담배로 걸린 학생들이었다. 그때는 엄한 척을 했다면 지금은 정말로 엄해야만 했다. 천천히 단어를 골라 힘을 주어 말했다.



"여러분들이 술을 마시든 담배를 피우든 호기심에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본인 몸에 해로운 거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시도해볼 수 있고 경험해볼 수 있어요.


하지만 생명을 장난으로 죽이는 것, 나는 손가락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아프면서 다른 사람이나 동물은 고통을 못 느끼는 것처럼 대하는 것, 자신이 돋보이기 위해 다른 존재의 몸이나 마음에 상처 입히는 것, 그건 정말 나쁘다고 생각해요. 정말 진심으로 매우 많이 나쁘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은 기쁘고 즐겁고 신나고 화나고 무섭고 짜증 나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죠? 여러분의 감정을 존중해주지 않으면 기분 나쁘고 억울하죠? 다른 사람도, 동물도, 물고기도 마찬가지예요. 나 자신도, 옆에 있는 친한 친구도, 대화를 한 번도 안 해본 친구도, 앞에 있는 선생님도, 방금 죽은 물고기도 모두 감정이 있어요.


그리고 나와 다른 존재의 감정을 느끼는 것, 그래서 존중해줄 수 있는 것, 그게 공감 능력이에요.


여자 혼자 살고 있는 집에 남자가 탕탕거리면서 문을 치고 있는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어떤 사람은 남자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문이 안 열려서 짜증 나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여자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정말 무섭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물고기라고 해서 다르지 않아요. 물고기를 괴롭히는 친구에게 공감하여 같이 웃는 사람도 있고, 물고기에게 공감하여 아프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어요.


어디에 공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지 스스로 생각해보세요."



조용해진 교실에서 잠시 침묵했다. 전체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리고 어떤 사건이 있을 때, 옆에서 보고만 있는 사람을 뭐라고 한다고 했죠?"


"방관자요."



아이들이 대답했다.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서 커다랗게 울렸다.



"응, 내가 좋아하는 여러분들이 어느 자리든 방관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요."



코끝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뒤돌아섰다. 작은 물고기가, 물고기를 둘러싼 장난이, 웃음소리가, 신발이, 쓰레기통이, 옆에서 바라만 보는 아이들이, 소란스러움이 제멋대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교실은 여태껏 없던 적막이 감돌았다. 심호흡을 하고 잠시 교실 문밖으로 나가 감정을 추스른 후 들어왔다. 웅성이던 아이들은 내가 들어서자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나긴 정적이었다. 장난을 쳤던 ○○이가 손을 들었다. 나는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무거운 분위기를 가까스로 깨며 말했다.



"선생님, 기말고사 며칠 남았나요?"



평소엔 교과서도 안 가져오기 일쑤면서 분위기를 전환시키려고 일부러 묻는 의도가 빤했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른 학생에게 물었다.



"□□야, 오늘 디데이 몇이지?"



아이들은 부드러워진 나의 목소리에 안심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선생님, 38일 남았어요!"


"우와, 시간 빠르다!"


"헉 벌써 38일 남았어?"


"하아, 어떡하냐."



○○이는 다 들리도록 "아, 이제부터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라고 말했다. 나는 아이들의 노력을 알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소란도 잠시, 다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무거운 정적을 그대로 두었다.


교실 한 켠에서 다른 학생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 학생 쪽으로 다가갔다.



"선생님, 실례되는 질문을 해도 될까요?"



나는 여전히 쿵 닫힌 마음을 풀지 못한 채 억지로 웃으며 물었다.



"뭔데?"


"실례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실례가 될 것 같은데요, 저……."


"응, 말해봐."


"제 소설에서 제비가 죽는데요, 괜찮을까요?"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커다란 남학생이 조심스레 묻는 말이 당황스러웠다. 대답할 말을 찾다가 되물었다.



"잔인하게 죽어?"


"많이 잔인하지는 않고요, 아닌가, 잔인한가? 흥부를 위해 싸우다가 칼에 맞아서 죽는데요."


"음, 죽는 데에도 이유가 있으면 괜찮겠지? 현실에선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이 많지만 소설 속에선 이유가 있어서 사건이 벌어지거든. 그래서 소설이 재미있는 거야. 이유도 모른 채 사건만 일어나면 독자는 답답하잖아."



자신의 소설에서 죽는 제비를 걱정하는 마음이 아득했다. 굳건하던 철벽이 어쩔 수 없이 녹아내렸다. 저기선 또 다른 학생이 커다랗게 혼잣말을 했다.



"아, 내 소설에서도 제비가 죽는데. 제비를 땅에 묻어줘야겠다."



결국 이런 순간들 때문에 아이들을 미워하지 못한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도 덩달아 웃었다.




수업이 끝나기 5분 전, 나는 해당 학생 두 명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번 시간 끝나면 미술 선생님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씀드리고, 사과드리고 와."



종이 치고 아이들은 "지금 다녀올게요."라고 말하더니 청소시간이 끝날 무렵 뛰듯이 돌아왔다.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미술 선생님이 괜찮대요. 어차피 날씨가 추워져서 오늘내일 죽을 것 같았대요. 그래도 무슨 일 있었는지 다 말씀드렸고요,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요. 괜찮다고 하셨어요."



나는 눈치를 보는 이 어린 마음이 그새 안쓰러워졌다.



"응, 그래도 사실대로 말해줘서 고마워. 애썼어."



여자아이들은 복도에서 서성이다가 다시 들어와 "선생님, 힘내세요!"라며 나를 한 번씩 안아주었다. 옆에서 쭈뼛쭈뼛 서있는 남자아이들은 "선생님, 제가 힘내라고 하진 못하겠지만요, 저 수행평가 준비를 열심히 해올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과관계가 이상한 위로들에 큰 소리로 웃었다.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집에 돌아왔다. 그제야 후회가 밀려왔다.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하면 안 되었다. 장난친 아이들을 마지막에 그렇게 보내서는 안 되었다. 한 번 더 방과 후에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시간을 들여 확실하게 말했어야 했다.



"선생님이 항상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지?


그런데 있잖아, 이 세상엔 사과할 수 없는 잘못도 있어. 실은 너희가 잘못한 대상은 몰래 물고기를 훔친 미술 선생님만이 아니야. 괴롭힌 물고기에게도 사과를 해야 해. 그런데 물고기는 이제 이 세상에 없잖아.


이미 죽을 운명인 건 상관없어. 편하게 숨을 쉬며 죽는 거랑 칼에 스무 번 찔려서 죽는 거랑 다르잖아. 심지어 죽은 사체라 하더라도 난도질하고 훼손하는 건 나쁜 거잖아.


사과를 한다고 해서 끝이 나는 게 아니야,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아야 끝이 나는 거야. 그런데 용서를 해줄 수 있는 상대가 더 이상 살아있지 않으면, 상대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면, 그건 사과할 수 없는 잘못인 거야."



여전히 혼내는 일은 어렵다. 원칙을 세우려고 하지만 수많은 예외들에 맞닥뜨리며 자꾸만 당황하게 된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아이들이 잘못을 납득하고 이해할지 머릿속으로 끊임없는 경우의 수가 돌아간다. 혼을 내다가 아이들이 마음을 닫을까 봐 무서워진다. 때로는 진심으로 화가 나서 폭발하는 감정을 어디까지 분출해야 할지 헤맨다. 혼내다가도 시무룩한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약해져서 어르게 되기도 한다.


잘 혼내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에 어떻게 혼을 낼지 사례집을 잘 마련해두어야 한다. 혼내는 게 두렵거나 미안하지 않도록 더 많이 고민할 것이다. 사랑하는 일은 어렵다는 걸 잊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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