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에 아무튼 읽기

선생님은 무슨 책을 읽을까? (2)

by 홍차


박규리, 『아무튼, 딱따구리』




수업 시간에 일부러 책을 들고 간다. 필요한 부분만 종이 한 장으로 복사해갈 수도 있고 PPT에 타이핑해서 보여줄 수도 있지만 굳이 책이라는 물건을 들고 간다. 작가에 대한 일화나 흥미로웠던 내용을 풀어내며 포스트잇이 잔뜩 붙은 나의 책을 보여준다. 친구가 써준 편지가 적혀있으면 더 좋다. "표지와 제목 사이에 있는 이 종이를 간지라고 해요. 한자로 '사이 간', '종이 지'라는 의미예요. 선생님은 책 선물을 좋아하는데, 특히 간지에 편지가 쓰여 있으면 기분이 아주 좋아져요."와 같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칠판에 커다랗게 Dog ears라고 쓰기도 한다.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이라고 물으면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 든다. 나는 나만 아는 비밀이라도 알려주듯 신이 나서 말한다.



"맞아요, 강아지 귀라는 뜻이에요. 책 귀퉁이를 이렇게 살짝 접어두는 걸 영어로 Dog ears라고 한대요. 귀엽죠? 여러분들도 강아지 귀를 접으면서 책을 읽어 보세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지금의 내가 담긴 나만의 책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코로나19로 등교수업과 온라인수업을 혼합하고 있고, 등교수업 때는 각종 수행평가와 지필평가를 위한 복습 및 시험 대비로 바쁘다. 그 촉박한 와중에도 새로 배울 내용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책이 떠오르면 기꺼이 짬을 낸다. 최근에 써먹은 건 『아무튼, 딱따구리』다. 안 그래도 요즘 환경 문제를 얘기해보고 싶었는데, 지속가능 디자인 연구원이 쓴 이 책에서 중학교 2학년 국어 시간에 배우는 역설법이 쓰인 부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작고 가벼운 책과 함께 교탁 앞에 서서 아이들에게 이쪽저쪽을 보여주었다.



“아무튼 땡땡은 세 개의 1인 출판사가 만드는 시리즈물입니다. 그중 하나는 사실 부부라서 2인 출판사라고 해요. 마지막 장에 보면 이렇게 소개가 되어 있어요.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 ‘아무튼’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내가 좋아하는 것 한 가지에 대해 풀어내는 책인데요. 여기 책날개를 보면 아무튼 게임, 아무튼 떡볶이, 아무튼 쇼핑 아무튼 트위터 아무튼 영어…… 엄청 다양하죠?


이 중에서 오늘 선생님이 가져온 책은 『아무튼 딱따구리』입니다. 선생님이 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같이 읽은 책인데 엄청 좋아서 같이 읽고 싶어요. 당연히 딱따구리를 좋아하는 이야기겠죠?


선생님은 우리 학교가 마음에 드는 이유가, 아침에 가만히 있으면 뻐꾸기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에요. 진짜로 소리가 뻐꾹뻐꾹 그래요. 들어본 사람 있나요?


딱따구리는 도시에 많이 살까요, 자연에 많이 살까요? 응, 그래서 이 책은 자연을 함께 돌보고 다양한 동물, 새, 곤충, 심지어 벌레까지도 함께 살아가자는 이야기입니다. 이 지구에 인간밖에 없다고 상상해보세요. 즐거울 것 같나요?


함께 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이 한 페이지를 읽어볼게요.”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천천히 158쪽을 펼친다.




유럽에서는 최근 음식 쓰레기 문제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프랑스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 가운데 하나인 '앵테르마르셰(Intermarché)'에서는 통상적인 미적 기준에 못 미치는 울퉁불퉁한 토마토나 납작한 사과, 쌍둥이 가지 등을 30퍼센트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매대를 적극적으로 마련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시장에서 보던 채소들의 모양은 지금보다 훨씬 제각각이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렴 다 다르게 생긴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데 식품 제조와 유통을 수월하게 하려 비슷한 모양의 과일과 채소들이 강요되고 있다. 다행히 이 사랑스러운 못난이들은 프랑스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어 슈퍼에서 가장 빨리 매진되는 베스트셀러 섹션으로 등극했고, 최근 이런 대매는 영국 슈퍼에도 도입되었다.
- 박규리, 『아무튼, 딱따구리』 p. 158




칠판에 '사랑스러운 못난이'라고 커다랗게 적는다.



"사랑스러운 예쁜이와 사랑스러운 못난이 중 무엇이 더 자연스럽나요? 맞아요, 그런데 자연스러운 말을 두고 일부러 부자연스럽게, 즉 앞뒤가 안 맞게 표현을 했어요.


작가는 왜 못생긴 과일들을 '사랑스럽다'라고 표현했을까요? 그렇죠, 생긴 건 못생겼지만 맛도 있고 가격도 저렴해서 사랑스럽다는 거죠. 이처럼 겉보기에는 모순되지만 속에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을 역설 표현이라고 합니다."



잠시 멈추고 아이들의 눈빛을 살핀다.



역설법도 역설법이지만 내심 아이들이 마트의 똑같이 매끄럽게 생긴 과일이 이상하다는 것을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딱따구리를 본 적이 있는지 떠올려보기를 바란다. 내 책에 빼곡한 포스트잇과 밑줄, 메모를 멋있다고 여기길 바란다. 세상에는 교과서 말고도 다양한 책이 있다는 걸 알길 바란다. 독서모임이라는 것에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길 바란다. 학교에서 배우는 반어, 역설, 풍자와 같은 표현 방법이 실제로 사용되며 효력이 있다는 걸 알길 바란다. 아무튼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자부심을 지니길 바란다. 이 모든 바람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길 바란다. 이 모든 바람 중에 딱 하나라도 전해지기를 바란다.



자, 욕심은 내려놓고 건강하게만 자라기를 바라야지.

수업도, 수업 준비도 계속된다.



아무튼시리즈02.jpg 책을 읽다가 수업에 써먹을 수 있는 부분엔 별도로 표시해둔다.



아무튼시리즈01.jpg 일부러 포스트잇 플래그 가득한 책을 교실에 들고 간다.



SE-d58a6b92-08be-432b-88d2-52fbd95a37ef.jpg 다양한 아무튼 목록을 읽어주며 아무튼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묻기도 하고.



SE-88e3a83c-2744-48cd-8ea7-61da9946bdd5.jpg 일부러 책에 가득한 필기를 보여주며 독서 모임 이야기를 슬쩍 꺼내기도 한다.



SE-e3af8e34-075d-4598-8f06-bf8e5448a240.jpg 이것저것 욕심 다 내려놓고, 아이들이 책에 삐뚤빼뚤 밑줄 긋고 메모해도 된다는 거 하나만 기억해도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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