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에 따돌림당하는 아이가 생겼다.

윤가은 감독 영화 <우리들>을 보고.

by 홍차


열네 살 우리 반에 따돌림당하는 아이가 생겼다. 시월은 긴 달이었다.


울고 있다고 장문의 문자가 온 아이에게 전화를 하고, 또래상담사를 했다는 친구와 대화 시간을 주고, 다른 아이들과도 시간을 쪼개어 상담하고, 내 동생 이야기까지 섞어가며 한 시간을 넘게 위로하고,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오시기도 하고, 각종 회복적 생활교육 책을 읽기도 하며 이리저리 마음을 썼다.


아이는 내게 고맙다고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친구관계는 내가 쉽게 끼어들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따돌림 문제는 3주 만에 해결되었다. 내가 그처럼 바삐 뛰어다녔던 것에 비하면 싱거운 해결이었다. 전학생이 왔고, 그 전학생과 성격도 맞고 좋아하는 연예인도 같아서 함께 놀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 허하기도 했다.


나는 너희를 너무 사랑하지만, '친구 같은 선생님'은 될 수 있어도 '친구'가 될 수는 없구나.





수업이 끝나면 곧장 책상에 엎드리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너보다 두 배를 살았단다. 처음 연애를 했던 중학교 1학년도, 거리낌이 없었던 고등학교 1학년도, 하고 싶은 일들이 별처럼 많았던 대학교 1학년도 모두 찬란했지만 울기도 많이 울었던 그 시절들로 다시는 돌아가기 싫었어.


그러다 올가을 너를 만났고 나는 모든 슬픔을 무릅쓰고 딱 열네 살이 되고 싶어졌어.


그러면 혼자 있는 너에게 이름을 묻고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지난주였다. 아직 우리 반 따돌림 문제로 마음고생을 할 때쯤, 오랜만에 메모장을 켜고 일기를 썼을 때쯤 영화 <우리들> 추천을 받았다.


초등학교 4학년, 열한 살들이 모인 교실에서 선이는 외톨이다. 선이는 방학식이 끝나고 전학 온 지아에게 이름을 묻고 방학 내내 즐겁게 어울리지만 지아는 선이가 외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선이를 피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음 따돌림의 타깃은 지아가 된다.


서로 돌아가며 따돌림 시키는 것, 실제 학교 현장의 모습이다.





처음엔 외톨이인 선이네 가정환경이 좋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엄마는 선이를 믿어주며 살갑게 챙겼다. 아빠는 술을 자주 마시긴 해도 흔히 등장하는 폭력적인 아버지가 아니었다. 선이의 성적이 좋지 않자 학원에 등록하고, 학원비를 걱정하는 딸에게 네가 왜 그런 걸 걱정하냐고 속상해하는 좋은 부모님이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흔히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성적으로 차별하는 선생님, 가정형편을 캐묻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농담하고, 싸우면 화해시키고, 괜한 엄포를 놓기도 하고, 자주 웃는 좋은 선생님이었다.


그토록 좋은 엄마도 선생님도 입을 꾹 다문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야. 말을 해야 알지." 달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님에게도 선생님에게도 기대지 못한다. 오직 아이들이 기댈 수 있는 건 아이들뿐이다.





지아는 선이를 모함하고, 선이는 해명하려다가 지아의 따돌림에 말을 보태고, 지아는 선이의 가정사를 폭로하고, 선이도 지아의 과거를 폭로하며 사건은 악화된다.


이 영화의 빛나는 장면은 선과 꼬맹이 동생 윤의 대화다.



선: 윤아. 너 왜 계속 연우랑 놀아?

윤: 응?

선: 아니, 연우가 너 계속 다치게 하잖아. 맨날 상처 내고, 때리고. 장난도 너무 심하고.

윤: 이번엔 나도 같이 때렸는데?

선: 그래?

윤: 연우가 나 때려서, 나도 쫓아가서 연우 대가리 팍 때렸어.

선: 그래서?

윤: 그래서? 연우가 이런 식으로 여기를 팍 때렸어.

선: 그래서?

윤: 그래서? 같이 놀았어.

선: 놀았다고?

윤: 어. 보물찾기하러 나갔는데?

선: 야, 이윤! 너 바보야? 그러고 같이 놀면 어떻게 해?

윤: 그럼 어떡해?

선: 다시 때렸어야지.

윤: 또?

선: 그래. 걔가 다시 때렸다며. 또 때렸어야지!

윤: 그럼 언제 놀아?

선: 응?

윤: 연우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연우가 때리고, 그럼 언제 놀아? 나 그냥 놀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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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너희보다 두 배를 살았고, 너희와 친구가 될 수는 없다. 나는 입을 꾹 다문 너에게 "말해야 알지" 달래는 사람밖에 될 수가 없다.


그래도 끝까지 달래야지. 너희들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이해하려는 관심을 멈추지 말아야지.


다만 너에게 친구가 생기길, "그럼 언제 놀아? 나 그냥 놀고 싶은데."라고 말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생기길 기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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