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아이들과 사랑 표현 주고받기

신규교사의 시행착오 및 깨달음: 나는 자꾸만 놓치는 기분이 들었다.

by 홍차



매주 금요일마다 <금요일의 편지>를 쓰고 있다. 여러 선생님들이 하루 일정이나 준비물, 칭찬 거리 등을 담아 작성하시는 종례 신문을 나의 사정에 맞게 변형하였다. 주 1회만 작성하되 최대한 수평적 눈높이를 맞추고자 애쓴다(조금만 방심하면 곧바로 어른의 시선이 되어버린다). 조금 더 편지 느낌이 나도록 긴 글을 적는다. 하고 싶은 잔소리가 많지만 꾹 참고 사랑한다는 말을 듬뿍 적는다.


금요일의 편지를 블로그에도 꾸준히 업로드하고 있다. 나 또한 인터넷에 가지각색 자료를 올리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아이디어와 용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선생님~ 늘 궁금했던 게 있는데요. 혹시 금요일의 편지를 쓰시면 나눠주고 같이 읽나요? 아니면 그냥 나눠주나요……? 저도 무언가 시도를 해보고 싶은데 가정통신문도 버려져있는 경우가 있어서 겁이 나서 시도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나 역시 종례신문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여쭤본 것은 "아이들이 다 읽어요?"였다. 마주 앉은 선생님께선 "아유, 다 읽진 않죠~"라고 말씀하셨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 들여 작성했는데 애들이 안 읽으면 너무 속상하고 허무하잖아!' 안 그래도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으므로 당연히 일을 벌리지 않았다. 아직 1년차이므로 기본만 해도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9월에 발령받은 나는 한 학년에 세 학급씩 총 9학급의 신설 중학교에서 100% 전입생으로 구성된 1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다. 휘몰아치듯 시간이 흘렀고 겨울을 지나 2월에 도달했다. 무사히 종업식을 마쳤다는 안도감을 만끽할 새도 없이 새로운 학년도의 담당 업무와 학급 발표 시간이 돌아왔다. 나는 중학교 2학년만 아니길 바랐다.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교직원 회의에서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호명되고, 나의 두 번째 담임 학급은, 제발.


중학교 2학년이었다.


이미 내가 가진 패를 모두 보이며 수업을 같이 했던 학생들을, 게다가 담인 반이었던 1/3을 다시 담임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성향을 알고 있는 아이들이었기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더욱 고민되었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짚으며 3월을 준비하는 동안 다시 종례신문을 떠올렸다. 조용한 아이들 때문이었다.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밀집해있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눈에 띄는 건 단연 시끌벅적한 아이들이다. 대답을 똑 부러지게 잘하는 아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해맑게 드립 치는 아이, 선생님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아이 등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이 교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끊임없이 장난치는 말썽꾸러기들은 웃겨서든 화나서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름이 불린다. 이런 아이들은 아무 이유 없이 교무실에 들러서 능청스럽게 사탕을 받아 가기도 한다.


시끌벅적한 아이들과 호들갑을 떨고, 안전사고를 처리하고, 싸움을 화해시키고, 수업 태도에 대해 상담하고, 부모님께 전화드리고…… 쏟아지는 업무와 회의를 정신없이 챙기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난다. 묵묵히 학교생활을 해나가는 조용하고 성실한 아이들은 자꾸 다음으로 밀린다.


'쟤는 알아서 잘 하고 있으니까……'


믿는데, 믿고만 있다는 게 자꾸 미안해졌다. 한 반엔 서른 명의 아이들이 있고, 담임교사로 만나는 시간은 조례와 종례시간뿐이고, 나의 눈은 두 개며 입은 하나뿐이었다.


결정적으로, 매사에 무기력하여 마음 쓰이던 아이가 다시 우리 반이 되었다. 시간을 들여 상담을 하고 말을 걸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네' 또는 '아니오'의 작은 목소리뿐이었다. 그렇다고 이 아이만 붙들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붙든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교사와 학생이 만나는 한정적인 시간 속에서 나는 자꾸만 놓치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학기를 반추하며 마침내 금요일의 편지를 쓰기로 결심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나의 편지에 응답하지는 않는다. 나의 정성과 시간과 고민과 애정을 쏟은 편지를 읽지도 않거나 훑어보고 대충 구겨 넣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은 100% 시끌벅적한 말썽꾸러기들이다.


그러나 묵묵히 학교생활을 해나가는 조용한 아이들은 평상시처럼 묵묵히 편지를 읽어나간다.


당연히 나는 우리 반 서른 명의 얼굴을 모두 떠올리며 편지를 쓴다. 그러나 제일 먼저 불쑥불쑥 떠오르는 신나고 활기찬 아이들의 이야기는 일단 두고 더욱 곰곰이 구석구석을 살핀다. 묵묵히 학교생활을 해나가는, 소란한 일상을 조용히 견뎌나가는 아이들을 일부러 짚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소개하고 시도 고르고 친구 직업을 인터뷰하기도 한다. 수영 강습을 받고 있는데 수영 선생님께서 칭찬은 안 하고 지적만 해서 위축된다고, 우리는 서로 칭찬하는 사이가 되자고 말을 건넨다.



평소 교사를 어려워하던 아이가 금요일 종례 시간에 교탁 옆을 서성이며 "오늘은 편지 제목이 뭐예요?"라고 묻는다. 쉬는 시간엔 늘 엎드려있으며 무기력해서 걱정하던 아이가 책상에 올려놓은 편지를 발견하자마자 선 채로 시간을 들여 읽는다. 말 걸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내가 쓴 편지에 적혀있는 자신의 칭찬을 들고 와서 자기 이야기라고 자랑한다. 그럴 때면 흐뭇한 답장을 받은 기분이었다.



읽지 않는 활발한 아이들에 대한 속상함은 놀랄 만큼 없다. 평소에도 자주 이름을 부르기 때문이다. 다만 읽어나가는 조용한 아이들에 대한 기쁨이 아주 크다.




여덟 통의 편지를 썼다. 이제 금요일이면 아이들은 "금요일의 편지 주세요!"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사랑받는다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다행이다. 역시 표현을 해야 안다.






금요일의 편지.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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