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완이 Mar 29. 2022

상담 종결 회기에 다녀왔던 날

가정폭력 현장에 방치되는 상황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12 신고도,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며 그러지 말라고 엉엉 우는 것, 둘을 달래는 것, 폭력적인 싸움으로 번지기를 막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고, 그것은 할 순 있었지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 하는 것이었다. 나는 늘 그 순간에 무력감과 피로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렇지 않았고, 나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나는 그렇게 되어도 상관없는 사람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다. 폭력 현장에 방치되어도, 욕을 먹어도 괜찮은 쓸모 없고 무가치하고 좌절하는 원래 그런 사람.


그래서 나는 사과받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일이 있었고, 나는 어떻게 느꼈으며, 이것에 대해 사과받고 싶다고. 선생님이 기적질문을 하셨을 때, 내가 바라는 엄마와의 최종적인 관계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모두 엄마가 사과하길 바란다고 대답했다. 그것이 없고서는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그 모든 행동들은 껍데기처럼 느껴질 것 같았기에.


선생님께서는 엄마가 느끼고 보는 모든 것이 엄마 딴에서는 진실일 수 있다고 했다. 나도 동의했다. 엄마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나에겐 아동학대의 가해자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피해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힘들 수 있다.


선생님이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핵심감정이 어디서 왔을 지 생각해보자고 말씀하셨을 때, 어디서 왔다기보다는 그것이 그냥 당연했다. 나는 가치있고 소중한 존재라고 여겨진 경험이 잘 떠오르지 않았고, 방치되고 욕을 먹은 기억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자연스럽게 나를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점을 나는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가 역기능적 사고 기록지를 쓸 필요성을 느낄 만큼, 나는 많이 변하고 성장했다. 그 이전에는 내가 무가치하고 쓸모 있는 존재라는 사실 자체를 의심하지 않았다. 내게는 온당하고 절대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중학교 무렵부터 몰두하기 시작했던 동아리 활동, 대학에 들어서 여러가지 참여해본 것들을 통해 내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고 어떤 순간에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여태 가지고 있던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절대적인 명제에 질문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까지 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사실이 아님을 알기에,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자동적 사고들을 반박하기 위한 역기능적 사고 기록지를 쓸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가시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나의 변화다.


나는 가끔 유년시절의 기억으로 불려간다. 그 어떤 것보다도 '불려간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그러면 나는 나의 무력함과 무가치함을 재확인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상기한다. 얼마 전 안 것이지만, 이것은 깊고 오랜 시간 나를 괴롭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러니까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만드는, 내 안에서 작동하는 내면화 방식이다.


가끔 나의 예민함과 복잡함이 골치 아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도 내게 사과하지 않는다면, 그냥 저 쓰레기들! 하면서 욕을 한바탕하고 끝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나는 왜 그러지 못하고, 잘근잘근 곱씹으며 이 상태일까. 그러나 그런 질문은 갖지 않기로 한다. 그것은 다양성을 무시하는 일이며 나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일이다. 모든 상황에 단순히 그런 식으로 대처할 수 있지 않음을, 한 가지 상황도 모든 사람이 제각각 다른 해석을 가진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니 나의 복잡함에, 지나치게 곤두서있는 예민함을 탓하지 않기.

작가의 이전글 심리적인 벽을 뛰어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