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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이 Jan 21. 2019

그냥, 귤을 먹는 것

피 끓는 열정에 집착하는 인간의 그러지 않으려는 노력

 세상엔 순전한 내 의지나 마음으로 해내는 게 그다지 없다. 가령 귤 하나를 먹더라도, 이미 한입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보기 좋게 반으로 갈라놓은 정성을 보고서 부른 배에 귤을 쑤셔 넣게 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내가 귤을 먹는다.'인데, 귤을 먹고 싶어서 혹은 원해서 먹는 게 아니란 거다. 그럼 안 먹으면 되잖아?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귤을 먹는 일 말고도, 모든 것이 그렇다. 나에게 있어서 열정에 피가 끓어서 하는 일이란 무엇이 있나? 순전한 내 의지로, 내 이끌리는 마음으로 도전하고 실천했던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아득하다. 쉽사리 답을 내기 어렵다. 다시 한번 질문하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제대로, 살았는가.      


 이러한 생각이 드는 반면에 무엇에 이끌리든, 동기가 어찌 되었든 내가 알고 생각하고 선택한 하루들이 모이면 그것은 삶이라는 생각이 있다. 삶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제대로 살았든 어찌 되었든 내 삶이고 소중하다. 그 이상의 부가적인 표현을 배치하는 것은 우위를 매기는 것에 불과하다.      


 위의 두 가지 생각이 나에게는 공존한다. 그래서 가끔은 틈 없이 채이는 기분이 든다. 서로 아웅다웅하는 생각들 사이에서 나는 좀처럼 중심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 있게 생각해보면 나는 그중 삶을 좀 더 ’밀도 있게 사는 것‘에 애착을 품는 편이다. 전자의 생각이 더 옳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나는 숨만 쉬며 누워있는 자신을 의식할 때면 마치 불장난을 하고 있는 듯한 죄책감에 휩싸인다. 고질적인 생각인 듯싶다. 톱니바퀴에 올라선 것처럼 자신을 늘 굴려야만 마땅하다는 생각에 나는 꽤 무뎌져 있으니 말이다.    

  

 정리하자면 말이다, 나는 귤 하나를 먹어도 피가 끓는 듯한 이끌림에 의해 행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맹숭맹숭하고 그저 그런 이유들은 성에 차지 않고 죄책감을 부른다. 이게 다 밀도 있게 살기 위한 발악이다. 나는 그런 ’발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엔 아무 생각 없이 귤을 먹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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