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9.
하푸탈레(Haputale)는 스리랑카 남부 고원지대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공기가 서늘하고 맑아, 스리랑카의 다른 지역보다는 덜 더운 곳. 특히 차밭으로 유명한데, 그 유명한 홍차 브랜드인 ‘립톤(Lipton)’ 의 창립자가 이 차밭을 내려다보며 즐겨 앉아 있던 언덕의 전망대(Lipton seat)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19년 1월, 스리랑카를 여행 중이던 나는 수도 캔디를 지나 엘라에서 하푸탈레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플랫폼에는 배낭을 멘 외국인 관광객들이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고, 바로 옆에는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 몇 명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조용히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연히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왜 이 하푸탈레행 기차가 ‘천국으로 향하는 기차’라 불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풍경이 끝내주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곧 도착한 파란 열차에 올랐다.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찬 칸에 들어서자, 나와 일행은 좌석 예약이 별 의미가 없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사람들은 창밖을 바라보거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겨우 발 디딜 곳이 있던 좁은 칸의 통로에서 무거운 배낭과 다양한 냄새를 견디며 몇 시간을 서 있고 싶지 않았다. 일행에게 말하고 잠시 혼자 연결 통로로 나왔다. 칸 사이 공간에는 밖을 막아주는 문이 없어서 들어오는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곳은 객석을 오가며 과일과 음료를 파는 현지 상인들이 잠시 쉬는 듯한 공간이기도 했다. 그들의 과일 바구니에서 바나나 하나를 사서 입에 넣으려던 순간, 상인이 구석으로 자리를 내어주며 앉으라고 손짓했다. 바람에 모자가 밖으로 날아갈 뻔한 아찔한 순간마저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깔깔거리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푸탈레가 보이던 창밖으로는 푸른 차밭과 구불구불한 철로가 이어져 있었다. 기차가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면, 안개로 뒤덮인 시야 때문에 마치 구름 위를 달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난간에 팔 하나를 걸치고, 여행 내내 들고 다닌 카메라로 기차 밖 풍경을 찍고 있을 때 눈치를 보며 말을 걸어온 상인이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한국이요!”
“한국사람은 스리랑카에서 처음 봐요. 사진 작가인가요?”
“아뇨, 그냥 여행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몇 년간 돈을 벌고 돌아온 친구가 스리랑카에 집을 샀다느니, 자기는 스리랑카를 떠나고 싶어도 이미 늦었다느니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나와 몇 마디 더 주고받고 나서, 가지고 있던 바구니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짧은 대화 속에서도 그의 표정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묻어 있었지만, 그때는 더 깊이 알아볼 방법을 알지 못했다.
하푸탈레역이 가까워지자, 함께 있던 일행들이 나를 찾아 통로로 나왔다. 나는 일행에게 그들을 소개했고, 상인은 기다렸다는 듯 바구니 속 과일을 건네며 가격을 말하기 시작했다. 어리둥절한 일행들을 옆에 두고, 나는 주머니에서 1,000루피를 꺼내며 “자리를 내어줘서 고맙다”라는 짧은 눈인사와 함께 기차에서 내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역을 떠나는 기차에서 마지막까지 바구니 쥔 손을 흔들어주던 그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하다.
우리는 하푸탈레에 도착하자마자 립톤싯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45분 남짓 걸렸다. 길게 이어진 산길을 따라 천천히 오르면서, 차밭 위로 쌓여있던 안개와 바람, 일행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올라가는 길옆에는 찻잎을 따고 있는 현지인들이 있었고, 우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에게 손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정상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립톤싯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경제적 여유가 크지 않은, 전통적인 농촌 지역 주민이었다.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찻잎을 따고, 바람에 흔들리는 풀숲 사이에서도 그들은 매일 새로운 관광객들을 밝은 모습으로 맞아주고 있었다.
스리랑카에 다녀온 지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문득 떠오르던 그날의 기억에 서랍을 뒤져 금방 고장 날 것 같은 외장하드에서 몇 개의 영상과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같이 여행했던 일행과 나는 15일 동안 스리랑카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잠깐 쉬었다 가라며 따뜻한 홍차를 내어주던 어느 집 아주머니, 툭툭이를 대신 잡아주겠다며 먹던 밥도 내버려두고 도로로 뛰어가던 식당 직원, 여행 중 기차에서 만난 상인들까지. 사진을 넘기며 떠오르는 그들의 모습은 여전히 밝게 웃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켠은 편하지 않았다. 그중 하푸탈레로 향하던 길, 기차에서 찍은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하푸탈레로 향하던 길은 나에게 다시 오기 어려운 특별한 순간이었지만, 그들에게는 하루를 이어가는 익숙한 길이었다. 같은 기차에서 누군가는 발밑에 펼쳐진 천국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생계를 짊어진 채 지루하기까지 한 풍경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장면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는 사실을 이제는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카메라로 열심히 남겨놓았기에 이렇게 다시 진하게 기억이 떠오르는 것도 있겠지만, 요즘은 한순간을 억지로 담으려 하기보다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저마다 다른 행복을 그려가고 있을 테니까.
여행하면서 만났던 풍경과 그들의 일상이 잠깐 겹쳐 스쳐가는 순간, 그 짧은 시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오래전 누군가가 말해주었던 여행의 진짜 의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일까. 하푸탈레행 기차를 가리키는 ‘천국으로 향하는 기차’라는 이름도 정작 현지인들의 것이 아니라, 여행자들이 만들어낸 말이었다.
지금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스리랑카는 넉넉한 나라는 아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순수함과 사람들의 밝은 웃음이 남아 있는 곳. 나를 포함한 스리랑카를 방문한 관광객들처럼 여행의 순간에서 만난 특별한 곳이나 드라마틱한 일이 생기지 않아도 그들의 세상은 이미 충분히 아름다울지도 모르겠다.
스리랑카에서 만난 모든 이들의 일상도 천국으로 가는 길, 그 어느 여정을 지나가는 중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파란 열차는 지금쯤 어느 역에 도착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