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3.
33살, 지방의 한 공공기관에 신입으로 입사했다. 내 사주에는 없을 줄 알았던, 나랏일. 최종 합격까지 쉽지 않았던 과정이 있었지만, 그토록 원하던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몇 달간의 긴장이 풀렸던 탓이었을까. 사무실 자리가 정해지기도 전부터, 나는 이미 일에 대한 과한 의욕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 창원에서 유명했던 갈비탕집 서빙을 시작으로, 방송국과 외국살이, 그리고 작은 사업까지. 15년 동안 어떤 일이 주어져도 항상 자신 있었다. 키보드 소리만 들려오던 사무실에서 맞이한 출근 첫날, 창문 하나 없는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몇 달간 내 자신감과 자존감이 바닥이 보일 때까지 꺾여나갈 줄은 전혀 몰랐다.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낯선 이곳에, 나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말투, 내가 모르는 규칙들로 가득 찬 공간. 처음으로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 시간에 쏟아지는 용어들과 ‘공공’이라는 단어가 가진 묘한 무게감은 계속해서 나를 다른 별에서 온 사람처럼 만들었다. 열심히 하려고 하다가도 젊은 꼰대들의 시기와 질투에 숨어야 했으며, 조금만 속도를 내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부수지 말라는 말에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하림씨, 사회 초년생도 아니고 왜 자꾸 두 번씩 물어보는 거에요?“
“지난 사업의 자료를 찾아봤는데 남아 있는 게 없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지금 처음 여쭤봤습니다.“
“이전 자료가 없으면 일을 못 해요?“
좋아하는 것도 일이 되면 싫어진다고 했던가. 무수히 많은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덕업일치’의 삶을 살고자 했던 나는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헤쳐나가고 싶었다. 1시간 일찍 출근해 여러 결재 문서를 외울 때까지 몇 번이고 읽었고,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허드렛일을 나서서 하기도, 퇴근을 하면 노트북을 켜고 내일 해야 할 일을 먼저 테스트하곤 했다. 내가 낸 아이디어가 전체 회의에 올라갔을 때, 위에 있던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내 이름을 지우는 것을 목격한 날. 그날은 그냥, 조금 더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있었을 뿐. 슬픔이나 분노의 감정조차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입사한 지 1년이 다 되어 갈 즈음, 생각보다 더 늦어진 야근을 끝내고 지하 공연장을 정리하기 위해 내려갔다. 사람들로 가득하던 공연장의 잔향은 이미 사라졌지만, 아직 조금 남아 있는 온기가 유난히 좋았던 날. 무대 위 조명 아래, 먼지가 천천히 떠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창고에서 가져온 의자에 앉아 텅 빈 객석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자리도, 평가받을 일도 없는 공간에서 나는 잠시 ‘일하는 사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거기, 누구세요?”
“아, 저 여기 2층 직원이에요. 정리만 마저 하고 갈게요.“
건물 시설을 담당하던 아저씨의 소리에 올라오던 감정은 와르르 무너졌지만, 그렇다고 코 앞에 마주한 현실을 피할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그 짧은 순간이, 내가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단순히 음악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하고 싶은 사업과 일에 대한 기대와 긴장이 섞인 설렘 같은 것들로 가득 차 있던 1년 전으로.
결국, 나는 돌고 돌아 제자리로 왔다. 여전히 1시간 일찍 출근하고 있고, 문서에 틀린 곳이 없는지 몇 번이고 확인하며, 누군가의 허드렛일도 열심히 하는 중이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꾸준함이라는 단어 덕분에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 사사건건 나를 무시하던 상사는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 되었고, 내 의견을 옆에서 경청해 주는 사람들이 생겼으며, 하고자 하는 사업의 방향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경험이 생겼다.
40대를 바라보는 지금, 지난 많은 순간들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흔들렸다. 한 번의 선택에 모든 것이 무너진 적도 있었고, 일 때문에, 사람과 사랑 때문에 세상 문을 꼭 닫고 혼자 조용히 숨을 고르며 버텼던 날들도 있었다. 겨우 일어섰지만 이내 다시 넘어지던 순간에도 어쩌면 나는 계속 반짝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흔들렸기에 반짝일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생각하기까지 그동안 별 볼 일 없는 눈물을 참 많이도 흘렸다. 이제서야 하루, 그 찰나의 순간들을 조금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서툴고 작은 일에도 몇 번이고 넘어지지만, 이런 나라도 누군가가 멀리서 보더라도 바로 찾을 수 있도록 반짝이는 중이다. 반짝인다는 것은 내가 아직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는 빛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런 하루들이 많이 남았다는 뜻일 테니까.
"대한민국에 사는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내 하루를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