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번식을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봉선화처럼 씨방을 터트려 씨앗이 멀리 날아가게 한다든지, 씨앗이 불타야만 뿌리를 내리는 뱅크스소나무라든지, 도깨비 풀처럼 동물의 피부에 붙어 멀리 이동을 한다든지, 이처럼 식물은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번식을 한다. 까맣게 탄 커피콩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든다. 커피는 번식의 기본 방법인 다른 열매처럼 과일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더하여 다량의 카페인으로 동물을 유혹하는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이라면 과거 인간은 커피를 따 과일을 먹고 씨는 버리는 당연한 행동을 했을 테다. 다른 핵과류인 앵두나 버찌처럼 말이다. 여하튼 씹어 삼킬 수 없는 씨를 말려 볶아 물을 내려 먹게 된 것은 상당히 의외의 일이다.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염소가 커피 열매를 따 먹고 좋아하는 걸 본 인간이 따라서 먹게 되었다는 이야길 본 적이 있긴 하나, 아마도 굉장히 긴 시간을 통한 우연의 결과로 인간의 문명으로 스며들어 왔으리라 본다. 이런 면에서 커피는 번식 측면에서 굉장히 성공한 케이스다. 큰 인기를 통해 지구 상에 커피가 가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피의 번식 입장에선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번식은 말 그대로 뿌리를 내려야 성공한 것인데 커피콩의 말로는 뿌리를 내리기는커녕 화장되듯 태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먼 곳을 떠나 살기엔 아직 특정 환경에서만 자랄 수 있는 식물학적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극지방에서 용케도 커피콩 하나가 탈출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곳에선 자랄 수가 없다. 러시아까지가 아니더라도 대체로 온화한 한국에서도 그러하다. 이것은 커피나무가 짠 전락이 예측 불허하는 인간이라는 큰 변수를 만났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아직 실망할 일은 아니다. 비록 인간에 의해 그 수많은 종자들이 불태워 지기는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럴 때마다 이 귀여운 커피콩을 불태워 날카로운 칼로 갈아, 더하여 뜨거운 물을 부어 죽여 버린다. 그도 모자라 그들을 후루룩 마셔 버리곤 연쇄살인마와 견줄만한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커피나무는 자기의 종자들이 이렇게 잔인하게 죽어간다는 것을 알까? 아마도 모주를 떠나 먼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잘 살거라 생각할 것이다. 못난이 커피 열매만이 염소의 소화기관을 거쳐 물러진 껍질을 뚫고 똥 위에 뿌리내려 엄마 옆에서 자랄 것이다. 사실 커피나무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인간과 거래에서 손해 볼 일은 아니다. 앞서, 밀, 보리, 콩, 옥수수가 그렇듯 비록 기형으로 길 러지얼 정 대를 이어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하우스 안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커피나무가 살고 있다. 안데스 어디서 살던 커피가, 에티오피아 고산에 살던 커피나무가 이런 반도 기후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뿌리내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심지어 글 쓰는 나도 고향에 내려가 커피나무와 더불어 5차 농업을 꿈꾸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커피가 인간과 거래에서 전혀 불리하지 않은 일이다. 전 세계 커피 수출 1등인 베트남엔 원래 커피나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커피로써 성공한 일이지 않은가? 커피의 희생?으로 인간의 문학과 예술이 발달하고, 경제의 비중이 커지고, 또 인간의 역사가 바뀌는 일은 오감으로만 즐기기엔 그 품이 너무 크다. 지구 상에 커피가 없다면, (아..벌써부터 금단현상이 오고 있다) 현 인류의 삶은 맹숭맹숭하고 그를 대신할 술의 소비가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세계 주류 식량은 밀, 쌀, 서류, 옥수수, 콩, 보리다. 이미 알려진 대중적인 성공의 길을 가기 위해 공부를 한다면 수많은 다수의 싸움과 경쟁을 이겨내야 겨우 성공할 수 있다. 물론 그 경쟁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길을 개척할 때 그는 독보적인 성공의 이뤄낼 수 있다. 이처럼 커피는 식량들이 치열한 순위의 경쟁할 때 아무런 제약도 없이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삶에 파고들었다.
커피는 아무나 마실까? 일반적으로 커피가 인간에게 다가갈 때는 첨부터 홀연단신으로 가지 않는다. 우유에 숨어서(커피우유), 아이스크림에 숨어서, 빵에 숨어서 은밀히 인간의 몸으로 침투한다. 심지어 3살짜리 아이도 라떼를 빨고 있는 걸 목도한 적이 있다. 사실 아이는 라떼를 빤게 아니라 단지 본능적으로 빨대를 빨았을 뿐이고 그 빨대는 그저 라떼에 꽂혀 있었을 뿐이다. 순간 뺏어 들었지만 두어 번 목을 타고 넘어가는 걸 목도했기에 난, 아니 그 아이 아빠는 허탈한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인 자기 빨대를 내놓으라고 떼를 썼다. 커피는 이렇게 무섭다. 설탕의 썰매를 타고 우유의 구름 떼를 몰아 꿀떡꿀떡 목구멍을 넘어간다. 그렇다고, 본연의 모습에 있어서는 아무에게나, 쉽게 스스로를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그랬다. '커피 먹는 허세 쟁이들, 그 쓴 걸 왜 먹어.' 그러나 요즘 새로운 가게를 발견하고 커피맛을 보고는 '신맛은 신선하고, 캐러멜향이 좋으나 마지막 쩐 맛이 아쉽군.' 허세 작열이다. 이 말은 옆에 앉은 여인에게는 개그로 들린다. 이분 때문에 쓰기만 한 싸구려 길거리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척 억지로 마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 쓴 맛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소하고 달고 향기로운 쩐 맛의 세계로 안내를 한다. 요즘 느끼지만 원두의 종류뿐 아니라 물의 양, 거름종이 종류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 손가락에 굳은살이 배어야 기타도 좋은 소리가 나듯, 혀도 쓴 맛을 견뎌내야 커피의 다양한 맛을 찾을 수 있다. 커피는 이제 식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류사에 빠지면 안 될 식품이 되었다. 우주의 외계인이 지구를 멸망으로 몰아가는 때가 온다면 그 마지막 순간 누군가는 손에 빵보다는 커피 한잔을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돌아가는 외계인 우주선에 잡힌 염소의 뱃속에 커피콩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커피는 악마 일지도 모르겠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