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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푸의 여행 Jul 18. 2020

양동이


어느 봄날 양동이 하나가 생겼다.
아직은 차가운 봄비지만 그 덕에 양동이에 물이 차 올랐다
바람이 불어 양동이가 흔들렸다. 약간의 떨림이었을 뿐 담긴 물 때문에 양동이는 넘어지지 않았다.
햇살이 따스한 어느 날 양동이 속으로 분홍 꽃잎이 날아들었다. 꽃잎은 양동이 속에 비친 파란 하늘을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날아다녔다.

그리고 뜨거운 여름이 왔다.
때때로 양동이가 데워져 물이 말라갔지만 한 번씩 내리는 소나기에 양동이 물은 오히려 늘어가다 넘치는 일이 생겼다. 그것에 양동이는 즐거웠다.

뜨거운 여름의 물과 해를 담던 양동이 위로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찌르레기 우는 늦은 가을밤, 예전 봄날처럼 양동이 안으로 붉게 물든 낙엽 한 장이 날아들었다. 낙엽은 달을 등대 삼아 양동이 위를 밤새 떠 다녔다.
행복한 밤이었다.
곧 낙엽은 가라앉고 서늘한 시간이 흘렀다. 물도 줄어 양동이가 가벼워졌다.

겨울바람에 양동이가 흔들거렸다. 그래도 양동이는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찬바람에 양동이 안에 물이 얼어 갔다. 하얗게 얼어 버린 물은 예전처럼 하늘을 담을 수도, 찾아오는 꽃잎도 나뭇잎도 없었다.
지난 꽃잎과 낙엽은 곱든 색이 사라지고 모양도 선명하지 않은 형체가 되어 시간의 잔재물로 얼음 속에 갇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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