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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저기 제 포지션은 어디인가요?

by 디어싱클레어

매장 운영을 하면서 힘들었던 부분 중 하나는 내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전에 낚시가게에서 근무할 때보다 훨씬 워라밸이 좋아졌지만 간사한 게 여유가 생기니 바로 더 많은 휴식을 원하게 됐다. 그렇게 나의 번아웃이 왔다. 의무감처럼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엔 온전히 누워있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버렸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독서모임을 하게 됐다. 다른 직원들에 비해 비교적 자유롭게 근무를 했던 터라 원하는 모임 두 군데에 참여를 할 수 있게 됐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좋았던 점은 같은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단 것이었다. 혼자 책을 읽는 것에 비해 확실히 생각을 깊게 할 수 있었다. 한 번은 모임 중 번아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번아웃이 왜 오는 것일까?’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내 뇌리에 딱 꽂힌 말은 살만하니까 온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말일 수 도 있지만 당시의 나에겐 너무나도 와닿았던 이야기였다. 그 후 번아웃이라는 쉼표에 마침표를 찍고 카페를 처음 기획했을 때 내가 그렸던 다섯 가지의 그림을 상기시켰다. 근교 대형베이커리를 기점으로 동네빵집, 공장과 로스터리, 연구실이 있는 사옥, 관광지, 마지막으로 핫플레이스였다.(순서 상관없이) 어디에서든지 우리의 베이커리와 커피가 잘 어울린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기획이었다. 그렇게 번아웃에서 나온 나는 2호점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다 보니 매장에서 일하는 시간이 더욱 불규칙적이었고, 직원들과의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종종 생겼다. 그때부터 직원들에게 다양한 업무를 나눠줬다. 음료레시피 개발부터 마감까지 원래 임원진이 전담으로 하던 일들을 나눠서 했다.


동네빵집 콘셉트의 2호점이 오픈하면서 나는 두 매장을 번갈아 가면서 일보다는 관리에 가까운 활동을 했다. 그러다 보니 매장에서 일할 때 업무의 밀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일을 하면서도 다음 스케줄을 생각하게 됐고, 본점과 2호 점간의 고객층의 차이로 메뉴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서 했다. 한 매장에 온전히 힘을 쓸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나의 역할은 깍두기가 됐다. 깍두기가 되니 어디가 바쁘면 일을 도와주는 식으로 하면서 내 스케줄은 많이 망가졌다. 본점과 2호점의 거리는 차로 40분 정도였는데, 온전히 길 위에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당시 그런 시간이 아까워서 차로 이동하는 것을 포기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면서 이동시간을 보냈다. 시간 차이도 얼마 나지 않았고 따로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아도 꽤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는 내 역할을 스스로 다시 정리했다. ‘나는 필드에 뛰는 선수가 아닌 감독이다!’ 때로는 깍두기처럼 빈자리를 채워주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우리 팀이 승리(좋은 방향)로 향할 수 있는 기획을 하고, 개개인의 역량을 키워주면서 개인의 성장과 동시에 매장의 성장을 이뤄내는 역할로 나를 정의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더욱 디테일한 일들을 스스로 찾아나가야 했다. 그전부터 쭉 이어왔던 직원들과의 개인면담(입사 후 3개월 차가 될 때쯤 한 번 하고 나중에는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자원하는 경우를 대부분으로 둠)을 통해서 직원들의 일하는 것에 대한 고충과 개인으로서 성장에 대한 욕구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사실 베이커리카페를 처음 시작할 때는 나와 임원진 친구들만 잘 살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것이었는데 점차적으로 확장된 인원과 그들과의 관계에서 '일정'(내가 지어낸 말이다. 일하면서 든 정)이 생기면서 그들의 이야기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훗날 나를 가장 변하게 한 계기이기도 하고 내가 힘들어진 이유이기도 함) 그렇게 임원진을 넘어서 더 큰 그림, 우리와 이 브랜드를 함께 키울 멤버들을 성장시키기로 마음먹으며 그동안 차곡차곡 모았던 개인 적금을 깼다.


그렇게 처음으로 두 명에게 아카데미를 보내주었고, 바리스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서포트를 했다. 그들은 남아서 연습을 하거나 영상을 찍어서 올리기도 하면서 더욱 커피에 대한 흥미를 느꼈다. 또한 일에 대한 열정도 늘어났고 나에게 더 다양한 아이디어를 주면서 매장 발전에 도움이 됐다. 물론 대회에 나가서 꽤 괜찮은 성적도 거두면서 함께 즐거워하기도 했다. 지원을 해준 직원들은 바리스타로서 미래를 더 다양하게 꿈꾸게 되었다. 물론 모든 인원에게 아카데미를 보내거나 세미나를 신청해 줄 정도로 상황이 좋진 않았다. 그래서 명확하게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해내면서 우리 브랜드에 애정이 있는 친구들을 선별해서 보내주었다. 물론 열심히 일을 하지만 일 외에 추가적인 활동을 원하지 않는 팀원들도 있었다. 그들에겐 따로 강압적으로 그러한 활동을 강요할 수 없었다. 오히려 열심히 활동하는 친구들을 몰아주기에도 우리의 역량은 모자랐다. 우리가 하는 활동들을 더욱 재밌게 하거나 좋은 성과를 내면 언젠가 그들도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 마음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이 글이 직원들에게 마음껏 투자하는 멋진 사람으로 보일까 봐 말하자면 명확히 자신의 일을 잘하고 우리 매장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일을 나서서 고민하고 자신의 쉬는 날에도 나에게 연락해서 매장 걱정을 해주는 몇몇 직원들을 지원한 것이었다. 그들도 우리 브랜드를 다해서 최선을 다해줬기 때문에 나 역시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준 것이다. 나는 글 처음부터 말했지만 천사가 아닌 고약한 사람이다.


그러한 성장과 함께 우리는 처음으로 방구석 여포에서 세상 밖으로 나가는 활동들을 하기 시작했다. 항상 매장에서만 이런저런 활동을 이어나갔는데 대외활동으로 팝업스토어라든지 공공기관과의 협업, 장기프로젝트나 각종 대회를 나갔다. 그럴수록 나의 역할이 명확하게 빛이 났다. 구성원이 늘어나고 다양한 활동들이 생길수록 선수로 뛰는 것보다 감독으로서 역할이 더 할 일이 많아진다는 것을 느꼈고, 업무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많이 변하게 됐다. 다양한 시선으로 더욱 부지런히 움직이면 오히려 매장에서 근무하는 선수들을 더 빛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2호점을 열면서 알게 된 것 같다.


Ps) 감독으로 있으면 직원들도 잔소리하는 대표가 매장에 자주 없기 때문에 오히려 직원들에게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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