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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Feb 19. 2021

터키의 정치적 갈등을 오이디푸스 왕 신화에 빗대어 보다

오르한 파묵- 빨강머리 여인


터키 출신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의 가장 최근작 소설인 '빨강머리 여인'.

표지부터 무언가 할 말 많은 소설일 것 같지만 분량은 그리 많지 않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들었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인 '내 이름은 빨강'이나 '하얀 성'을 읽기 전 인지라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의 작품세계를 파악하기도 전에 너무 중심으로 향하여 자칫 책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그런 불안감 말이다.

소설은 내내 그 유명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우리에게는 낯선 페르시아 왕서의 '쉬흐랍'이야기를 언급하며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이야기와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이야기를 계속적으로 상기시킨다.

결국 '쉬흐랍'의 이야기처럼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비극으로 끝을 맺고 만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공감하시겠지만 소설은 그 비극을 정점으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이지는 않았다. 다만 시공간을 초월한 우리 인류의 역사에서 아버지의 의미와 그 부재(不在)에 대한 성찰이 아닌가 싶다. 그럼 이야기가 시작하는 1980년대 터키 이스탄불로 돌아가 주인공 젬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1980년대 터키 이스탄불 외곽에 살고 있는 17세의 젬 그의 아버지는 약사이지만 공산주의 운동에 빠져 감옥에 가고 그 와중 다른 여자와 사는 등 젬의 가정을 돌보지 않아 젬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며 성장해 간다. 그러던 중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인 과수원 지기보다 몇 배의 보수를 약속하며 우물파기 장인인 마호메트 우스타가 그에게 우물파기 조수를 제안한다. 여름방학 길어야 2주 정도인 우물파기 조수 아르바이트를 통해 대입시험 학원비를 벌 요량으로 그를 따라 외괴렌이라는 군부대 주둔 지역으로 향하게 된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 성장한 젬은 우물파기 장인인 마호메트 우스타에게 아버지를 대하는 듯한 자신의 감정을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서 빨강머리 여인에게 반하여 이내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바로 그날 아침 간절히 원하는 물이 나오지 않는 우물을 우직하게 파내려 가는 우스타 이내 깊이가 20미터에 가까워지고 작업은 점점 극한을 향해 가던 중 흙을 퍼올리는 양동이가 떨어져 심한 부상을 입은 우스타 그런 우스타를 남겨놓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17살 소년은 이내 혼자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이후 시간이 흘러 젬은 지질학을 공부한 엔지니어가 되고 약사 출신 아이쉐와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하던 사업도 번창하여 2014년 터기에서도 손에 꼽히는 기업 쉬흐랍의 최대주주이자 경영자가 된다.

그러던 중 자신의 아픈 기억이 있는 외괴렌의 개발사업 제의를 받고 그곳으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자신이 버리고 간 우스타의 그 후 이야기와 더욱 충격적인 빨강머리 여인과의 사이에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끝내 그 아들에게 총격을 당하여 죽게 되는 '오이디푸스 왕' 신화를 재현하게 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터기 이스탄불의 전경

태어나서 처음으로 읽는 터키 작가의 소설에 읽는 내내 이게 모지?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것 밖에 더 되며 그 과정을 너무 억지스럽게 짜 맞춘 건 아닌가? 이런 의문들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읽다가 결국 이유 모를 매력에 끌려 끝까지 다 읽고 말았다. 사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행될 때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쉬흐랍 이야기든 양당 간에 하나 일 거라는 예상이 가능하며 거기에 들어맞는 종말에 적잖이 실망했을 것이다.

이 뻔한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야기를 터키라는 나라와 작가의 성향에 빗대어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하는 과제를 받게 되었다. 이해의 길을 다시금 잡아 내 이 소설을 꼭 이해하고 말리라는 다짐을 하며 하나하나 다시 따져 보기로 했다.

먼저 터키라는 나라에 대하여 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들은 터키라는 나라보다는 오스만 제국으로 기억될 나라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형제의 나라로 유명한데 사실 그들이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동등한 입장이 아닌 자신들이 도움을 준 동생의 나라라는 뉘앙스라고 한다. 어찌 되었든 오스만 제국의 주요 구성 민족은 투르크족이다.

이 투르크족이 그 유명한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 왕국을 무너트리고 강성할 때는 그리스인, 쿠르드족, 아제르바이잔, 발칸반도 등을 피지배 민족으로 두는 꾀나 번성한 나라였다.

그러던 왕국이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독일 편에 서서 패전국이 되어 나라가 없어질 운명까지 갔다가 그 유명한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가 나라를 이슬람 국가에서 현대적인 민주국으로 변화를 꾀하며 독립을 유지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오늘날의 터키의 방황이 시작되었다고 할 것이다.

소설에도 나오지만 젬의 아버지는 좌익운동가였고 주인공인 젬은 자본주의에 물들어진 세대이고 그의 아들은 민족주의 극우세력이다. 잘은 모르지만 이 소설을 통해 유추하자면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터키는 좌익과 우익 그리고 근래 극우익까지 정치세력 간의 끊임없는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

바로 그런 점이 터키라는 나라의 구심점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며 이것이 집단적으로 아버지의 부재에서 오는 혼란을 야기한 것 같다.

작가는 이러한 현대 터키 내부의 집단 간의 갈등 문제를 아버지의 부재에서 오는 신화적 비극을 통해 다시금 조명한 것이다.

실제 작가 오르한 파묵은 민주 공화제를 지지하는 양심적 지식인으로 터키의 아제르바이잔 인과 쿠르드인 학살에 대하여 역사적 인정과 진정한 사과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터키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음). 이러한 점 때문에 민족주의적 극우세력에게 살해 위협을 받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임에도 터키에 거주하지 못하고 프랑스에 거주하다 이내 미국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동서양의 걸쳐있어 늘 동서양 교류와 분쟁의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터키 지금도 민주공화정과 민족주의적 이슬람 국가제라는 동. 서양의 각기 다른 국가체제를 지지하는 세력 간의 다툼이 끊이지 않는 곳 터키.

성장기 삶의 확실한 지지목과 방향을 지켜주는 등대 같은 아버지가 있어야 함에도 현대 터키라는 국가에는 그러한 아버지가 부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한 지금의 터키의 혼란이 신화에서 이야기하는 근친 살육의 비극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작가의 문제 제기가 있는 소설이 '빨강 머리 여인'인 것이다.

서구 유럽처럼 종교적, 정치적 혁명을 통해 내부 자양으로 성장(물론 이 또한 많은 피를 본 것은 역사가 거짓 없이 보여주고 있다) 하여 각각의 국가가 하나의 구심점으로 묶인 현대 민족국가가 있는 반면, 아직도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그런 구심점이 없는 단계에서 많은 갈등을 낳으며 내전으로 몸살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볼 때 조금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물음을 해보며 나름대로 풀어본 독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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