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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Mar 24. 2021

무소유적 마인드가 우리에게주는 것-자유

사무실서 일하고 있는데 누군가 미안한 소리로 내 차 번호를 이야기합니다.

순간 '아~ 주차장에서 내 차와 부딪쳐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칩니다.

아니나 다를까.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는 적이 없지 않은가!'

그래 맞다. 주차 도중 내 차 범퍼를 긁었다고 하며 가서 같이 보자고 합니다.

무조건 미안하다 보험 처리하겠다가 아니고 같이 가보자고 하는 것을 보니 내심 그냥 보내주기를 바라는 맘 그러니깐 내차 범퍼는 애매한 상황인가 봅니다. 

차라리 찌그러질 정도로 박고 냥 도색이나 깨끗하게 할 정도라면 아무 미련이 없을 것을 이제 나는 단 1분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무슨 결정? '뻔뻔하게 이게 모냐고 따지며 다시 도색을 하느냐!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그냥 가시라고 하느냐!'의 선택의 기로에 선 것입니다.


'어디 보자 과연 애매하구나'
거기다 내차 곳곳엔 그보다는 더하진 않지만 그것들을 합치면 지금 이분이 만든 것보다 많은 생채기도 이미 있고, 내 차의 나이가 이 10살은 지나지 않았던가?
자 시간이 많지 않다 결정을 내려야 한다.
미간을 찌푸리며 도색을 외치느냐! 사람 좋은 미소로 그냥 가시지요! 를 외치느냐 이 순간만큼은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보다 도색이냐 그냥 타느냐의 선택이 나에겐 더 중요하고 어려운 것이다.
아 드디어 입이 벌어진다. 하지만 내 머리는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입은 열리고 말은 나온다. 나도 궁금하다 내가 무어라 할지.........
" 괜찮습니다. 어디 다친 데는 없으시죠? 그냥 가세요." 아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관대하고 내 차보다 사람이 중요한 박애주의자가 되었는지 내가 생각해도 멋있다. 그렇다고 상대가 아름다운 여자냐? 그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쁘면 모하냐.......
쿨하게 서로 돌아서 사무실로 돌아가는 나의 마음 한구석은 그래 잘했어를 외치며 토닥거려주고, 다른 마음 한구석은 이 멍청한 놈아 이참에 범퍼 도색이라도 했어야지를 외치며 내안 서로 다른 자아가 '지킬 앤 하이드'를 공연하고 있었다.

자리에 돌아와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동기가 무엇일까에 대해서 말니다.
그것은 차가 오래되었다는 것이 저를 편하게 해 주었다는 점입니다.
새 차엔 새롭다는 것 때문에 그 어떤 생채기도 내면 새것이라는 가치를 훼손하기에 사람이 각박해질 수밖에 없지만, 오래된 것이라는 것에는 그정도 생채기 정도는 허락되는 넉넉함이 깃들어 있기에 각박하지 않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것과 새것은 남들이 가진 것보다 좋다 와 새것이라는 점 때문에 그런 부분을 보존하려 애쓰기에 정착 그 그런 가치에 묶여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치를 떠나서 나에게 편한 것, 오래 쓴 것들은 오로지 나의 관점에서 존재하는 것들이기에 내가 살아가는데 보조자의 역할에만 충실하여 나에게 그것들이 주는 편리만을 제공하는 본연의 가치를 충실하게 수행하게 되므로 좀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해 줍니다.


이렇게 명확하고 쉬운 삶의 진리를 우리에게 열반의 순간까지 강조하신 분이 법정 스님입니다.
물론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가 물질적인 것만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정신적인 것 즉 인간으로서 가지게 되는 욕망을 경계하고 편한 마음으로 희망을 품고 살자는 고귀한 정신을 말씀하신 것이지요.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모든 가치들을 남들과 비교하는 순간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나를 구속하는 하는 것으로 돌변한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좋은 옷과 차 그리고 남들보다 더 많이 배우고 뛰어나다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구속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타자와의 비교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엄청난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저 사시사철 때에 맞는 옷과 본분에 맞는 생활을 하면 나머지 시간과 돈은 오롯이 나를 위해 소비될 수 있기에 자유롭고, 함께 사는 사람들 또한 욕심 없는 마음으로 행하는 나의 의지에 충분히 감동받아 모두가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은 뻔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오늘 저는 새것. 좋은 것이 나뿐만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할 수 있고 오래된 것. 익숙한 것의 가치가 얼마나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확실히 검소 또는 소박한 삶이 나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며 경쟁 사회에서 으르렁거리며 살지 않도록 나를 잘 인도해 줄 수 있는 가치라 여기며 무소유는 자유라고 오늘 이 순간 크게 한번 외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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