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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Apr 05. 2021

염화미소(拈華微笑)를꿈꾸며

염화미소(拈華微笑) - '꽃을 들고 웃음을 띠다'라는 말입니다.

염화미소,,,,, 염화미소,,,,, 천천히 호흡을 하며 이 말을 되내기면 왠지 사랑하는 사람이 꽃을 들고 나를 향해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장면이 연상됩니다. 한마디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언어입니다.

拈:집을 (념) 華:꽃 (화) 微:작을 (미) 笑:웃을 (소)

이는 대범천왕문불경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가 열반에 이르기 전인 석가세존 시절 영산에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교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석가가 갑자기 꽃을 한 송이 꺾어 손에 들고 제자들에게 들어 보이자.

모두들 그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고 있을 때 가섭 존자(迦葉尊者)만은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여기서 염화미소(拈華微笑)가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스승과 제자가 아무 말없이 꽃과 미소만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소통을 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석가는 "나에게는 정법안장(正法眼藏-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마음의 묘한 덕)과, 열반 묘심(涅槃妙心-번뇌와 미망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닫는 마음), 실상무상(實相無相-생멸계를 떠나나 불변의 진리), 미묘법문(微妙法門-진리를 깨닫는 마음), 불립문자(不立文字)와 교외별전(敎外別傳-다 같이 경전이나 언어 등에 의하지 않고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전한다는 뜻)이 있다. 나는 이것을 가섭존자(迦葉尊者)에게 부탁한다."라는 말로 자신의 가르침을 가장 잘 이해한 가섭존자로 하여금 석가의 가르침을 더욱더 널리 설파할 것을 당부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석가가 가섭존자에게 자신의 철학을 확인하고 후계자(?)로 명명한 것이 아니라 그저 꽃을 들고 미소로 답함으로써 마무리된 그것. 그 자체가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공자(孔子)의 경우도 비슷하게 후계자(?)를 지정합니다.

논어(論語) 학이(學而) 편을 보면 증자와의 일화가 등장합니다.

공자가 증자에게"나의 도는 하나로써 관통하였다."라고 말하자 증자가 대답하기를 "예. 스승의 도는 하나로 관통합니다."라고 대답하자 공자가 미소를 지으며 나갔는데, 곧 공자의 제자들이 증자에게 물었다.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이에 증자는 "스승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 뿐이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즉 공자의 사상의 핵심은 충서(忠恕)인데 이는 자신의 마음을 다해 노력하며 그 노력으로 인해 모두가 평안해지는 수기안인(修己安人)의 정신인 것이었습니다.

공자가 그의 제자인 증자(원래 공자가 아끼던 제자는 안연과 자로 였지만 둘은 스승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증자는 공자에게 그리 인정받지 못하였지만 우직한 성품을 지닌 자로 사서(四書) 중 하나인 대학(大學)의 저자이며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스승이다. 다시 자사가 맹자의 스승으로 이어져 유학의 위대한 계보를 완성한다.)에게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확인할 때도 그리 많은 말이 오가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위대한 정신의 계승엔 그리 많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한두 마디 말과 미소로 답할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 일상에선 왜 그렇게 많은 말들을 하면서도 그리 많은 오해를 낳는지 모르겠습니다.

위대한 정신을 만들고 물려받은 스승과 제자가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기에 그런가요?

그런 우리를 구원하거나 교육하려 한 이들만이 꽃을 들어 올리고 미소로 답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사실 현대를 사는 많은 이들이 여러 인간관계에서 말을 많이 함에 지쳐있습니다.

이렇게 말이 많아진다는 것은 어쩌면 서로의 마음이 통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이들의 삶은 오해와 그로 인한 미움이 난무합니다.

그것은 순전히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고 그 많은 말을 하여도 염화미소는커녕 또다시 오해하고 반목합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겪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꽃과 미소로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많은 말없이 미소 지으며 사랑하는 이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꿈꾸며, 염화미소(拈華微笑)가 석가모니와 가섭존자만의 이야기가 아니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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