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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Apr 08. 2021

조지프 콘래드- 암흑의 핵심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 영화와 소설의 핵심에 대하여


폴란드 혈통 우크라이나 출신의 영국 작가(?)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무튼 정체성이 조금은 특이하고 난해한 작가 조지프 콘래드의 1899년 발표한 작품 '암흑의 핵심'을 소개하고자 한다.


원제는 Heart of Darkness로 민음사는 '암흑의 핵심'이라 번역했으며 을유문화사는 '암흑의 심연'으로 번역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악(惡) 한 본성의 발현과 그 최후를 파헤쳤다고 보기에 다소 모호한 '암흑의 심연'보다는 그 악의 핵심이 무언인가에 대한 원론적 질문을 던지는 듯한 '암흑의 핵심' 조금 더 나은 번역이 아닌가 싶다. 또 극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커츠의 상징적인 마지막 말 한마디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 유명한 'Horrible. Horrible!'이다. 이것을 민음사 판에서는 '무섭다. 무서워라!'로 을유문화사판에서는 '끔찍하다. 끔찍해!'로 번역하는데 개인적으로 '무섭다'라고 번역할 땐 커츠가 단순히 죽음이나 본국 송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에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많은 죄를 지은 삶에 대한 회한적이며 자조적인 해석인 '끔찍하다. 끔찍해!'가 이 논란 많은 소설을 이해하기에 좀 더 나은 번역으로 여겨진다. 우선 이 소설을 이해하려면 서두에서 이야기한 정체성 모호한 조지프 콘래드의 삶에 대하여 조금은 알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폴란드 혈통의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조지프 콘래드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 그의 본명 요제프 코르제니오프스키로 다분히 슬라브족의 느낌이 물신 풍기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다. 오늘날 폴란드는 어엿한 독립국으로 있지만 1980년대 냉전시대까지도 주변국의 입김이 많이 받던 나라이다. 독일과 러시아 그리고 2차대전 전까지만 해도 합스부르크 왕조가 지배하던 강대국 오스트리아까지 국경을 접하고 있기에 굴곡 많은 역사를 지닌 나라가 폴란드이다. 그런 나라의 혈통을 이어받은 조지프의 아버지는 러시아 점령지로부터 폴란드의 독립운동을 하다 러시아에 연행되어 옥고를 치르고 유배를 당하게 된다. 유배생활의 영향으로 조지프가 9살 때 어머니가 12살 때는 그의 아버지가 모두 폐결핵으로 여위고 만다. 그 후 외삼촌의 보호 아래 성장했지만 몸이 허약하여 학교를 다니기보다는 집에서 독서를 하며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성인이 되어 아버지의 러시아에 대한 독립투쟁 행위로 인하여 그 자신이 25년간의 러시아군 의무복무를 하게 될 것으로 예정되었던 바 이를 피하기 위해 프랑스 마르세유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여 자살기도를 하기도 하나 외삼촌의 도움으로 빚을 청산하고 24살이 되던 해 어려서부터 탐독하던 탐험과 항해에 관한 책의 영향을 받아 무역선의 선원이 되어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게 된다.


25년의 형벌과도 같은 장기 복무를 피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시민권이 필요했던 조지프는 일찍이 오스트리아에서 시민권 신청을 거부 받았던 경험이 있었기에 영국의 시민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영국 상선에 오르게 되는데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그가 그때까지 전혀 영어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조지프는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영어를 배워 오늘날 영문학계에서 엄청나게 인정받는 문학가가 되었다고 하니 천재적 재능이 그에게 있었던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그 후 이런 상선 선원의 경험으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가 살던 시대는 19세기 중후반기에서 20세기 초로 자본주의가 무르익다 못해 마르크스가  예견한 대로 독점 자본주의의 폐허가 곪아 터지던 시기이다.

이런 시대 식민지 수탈에 이용되던 상선과 회사에 몸담았던 조지프는 그 천재적인 재능으로 그가 목도한 그 Horrible 한 상황들을 묵묵히 써나가고 헨리 제임스와 함께 20세기 초 영국 문학의 개척자로 남게 되었다.

저 멀리 우크라이나의 폴란드계로 태어나 20대 후반까지 전혀 영어를 모르다 영문학의 위대한 개척자로 남았다는 것 그 자체가 기적으로 그야말로 드라마틱 한 삶이 조지프 콘래드의 삶이었다.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는(물론 나를 포함하여)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감상하고 조금 더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2편을 보는 기분으로 비교적 가벼운 마음에 책을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처음 마음과는 다르게 무거운 마음으로 책 읽기를 중도에 포기하거나 길지 않은 분량을 어렵게 읽고 한숨지었을 것이다.

먼저 왜 그런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말론 브란드, 마틴 쉰 주연의 197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1980년 아카데미 촬영상에 빛나는 영화로 원작이 바로 이 '암흑의 핵심'이다.

다만 배경이 소설의 경우 19세기 후반 당시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콩고이고 영화는 1970년대 초 베트남전쟁 시기 캄보디아이다.

어차피 베트남전쟁도 자본주의적 마인드에서 촉발된 전쟁이기에 자본주의가 낳은 인간 본성의 타락이라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논리비약적 오류가 있는 것이고 그저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르포 형식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듯하다. 이 소설이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안에서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가려는 시도 때문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문가들은 이 책에서 반식민주의, 반제국주의, 인종차별과 성차별,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하여 당대 새롭게 떠오른 정신 분석학적 탐구 등 너무나 많은 해석을 하기에 읽는 내내 그러한 주제에 대하여 기웃기웃하다 정작 말로의 눈으로 본 커츠는 무엇 때문에 타락했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의 답에는 다다르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 상선의 선장이 된 주인공 말로가 저 멀리 원시시대 같은 야만족의 세계에서 당시 가장 값나가는 물건인 코끼리 상아를 대량으로 빼내는 신출한 재주가 있던 커츠에 대하여 일종의 환상과 작은 경외를 가지고 여행을 하는 내용은 유럽인의 시선으로 처음으로 엮어낸 식민지 시대 아프리카와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의 모습이었기에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대부분의 독자들은 당연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 하에 이 책에 대해 접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가치는 거두절미하고 왜 커츠가 믿기 힘든 괴물 같은 악마가 되었고 그가 마지막에 말한 '끔찍하다'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만 집중하기로 하기 책을 읽었다. 안 그러면 너무 혼란스럽기 때문에 오로지 그 가치에만 집중하려 했다.

소설 속 무역 주재원인 커츠는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는 커츠 대령으로 말로는 윌라드 대령으로 단순히 커츠를 본국으로 송환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를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럼 마지막으로 '암흑의 핵심'의 커츠와 '지옥의 묵시록'의 커츠 대령은 당대 지성인으로서 왜 그렇게 타락했으며 그런 그가 마지막으로 말한 'Horrible. Horrible!'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지프 콘래드가 원래 의도한 이 큰 질문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물론 이 브런치 주인인 목가적 일상 추구의 개인적인 견해이다)

우선 커츠는 음악을 전공한 당대 유럽의 지성인이었다. 그런 그가 벨기에의 아프리카 식민지(당시 벨기에의 식민지는 원료 공급과 시장 개척이라는 자본주의적 명분과 함께 원주민을 유럽의 개화된 의식을 이식하겠다는 인도주의적 명분도 없이 그저 값나가는 것들을 수탈만을 하는 악랄함으로 유명했다)인 콩고의 무역 주재원으로 파견되고 상아 수집에 남다른 재능을 뽐내며 유럽 내에서도 상당한 인지도를 쌓아놓는 등 그야말로 출세 길을 스스로 개척한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다. 커츠 대령 역시 유능한 장교로 베트남에 파병되어 부하들을 통솔하며 그 지휘력을 인정받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러던 그들이 식민지와 전쟁지에서 독자적인 세력이 되었고 커츠는 상아가 회사의 소유가 아니라 자신의 소유라 생각하게 되고 커츠 대령은 자신의 국가라 할 수 있는 집단의 지도자가 되어 회사나 군의 수뇌부의 통제를 벗어나게 되어 모두 제게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물론 그 와중 콩고나 캄보디아의 원주민들들에게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으며 살인을 일삼는 등 더 이상 그들에게는 그 어떤 인간적인 지성은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그들의 사회는 살인이 일상인 아주 기괴한 사회로 변해있었던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그들의 타락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식민지에서의 원주민에 대한 학대와 전쟁터에서 죽음이라는 거대한 충격의 일상화가 그들로 하여금 인간의 유물론적 한계와 그것을 인식 밖으로 조금이라도 밀어내기 위하여 커츠는 상아라는 물질적 욕망에 커츠 대령은 신격화라는 정신적 욕망에 의지 함으로서 그 끔찍함을 잊고자 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최진석 교수가 주장하는 대로 제자백가 중 한 명인 순자의 성오설(性惡說)에 입각하여 우리가 아는 인간은 본디 악한 존재라는 성악설이 아닌 악을 오로 인식하던 당시의 언어 사용을 빗대에 인간은 본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존재이나 배우지 아니하고 가다듬지 않으면 악을 저지르는 과오를 범하기 쉬운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극한의 상황에 내몰려 인간존재의 한계를 몸소 느낀 그들은 니체가 말한 권력에의 의지를 통해 그 고통을 잊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암흑의 핵심은 인간존재의 한계(죽음)에 대한 불안에서 오는 권력에의 의지 그것이 그들은 타락시킨 핵심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게에 그들이 죽어가며 또 죽음을 각오하며 한말은 그들 스스로 그렇게 타락하게 된 인간의 본성의 나약함으로 인해 저지른 끔찍한 살생의 현장을 목격한 것에 대한 회한적 외마디 외침이 바로 이 'Horrible. Horrible!'이다.


나머지 부분은 조지프 콘래드의 경험이 그렇게 특수하고 그것을 소설 속에 처음으로 발언하여 이런저런 비평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지 이 소설에서 콘래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암흑이 핵심은 다분히 순자(荀子) 적이며 니체적인 철학에 근거한 인간존재의 한계를 보다 의연히 대처 못한 연약한 우리의 본성을 지적했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싶고 그것이 진정으로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과 프란시스 포드 코플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을 느끼고 즐기며 사유할 수 있는 가치라 감히 말하며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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