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의 빅브라더가 그 시대도 있었구나.
전국시대 말기 대상인(大商人)이자 정치가였던 여불위(呂不韋).
우리가 기억하는 여불위는 아마도 수많은 중국의 야사 속에서 '진시황제의 친부(親父)였을 것이다.'라는 추측으로 유명하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지금의 우리에게 그리 중요한 일은 되지 않는다.
다만 역사를 대함에 있어 흥미 유발자로 나름의 가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나 하는 것이 솔직한 나의 생각이다. 여담은 각설하고 그런 그의 최대 업적으로 여씨춘추를 편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대의 거상답게 당시 3,000여 명이 넘는 식객을 거느리고 편찬한 책인데 도가(道家)를 기본으로 하여 잡가의 성격을 가지는 이 책을 통해 봉건 중앙집권 제국 건설의 이론적인 근거가 되길 바랐으나 정작 진시황제는 법가의 도(道)를 내세워 천하통일을 이루었고 그 권세 또한 너무 짧았다. 뒤를 이은 한(漢) 나라는 법가에 반기를 든 유가(儒家)의 도를 기반으로 통치되어 그가 원했던 저작활동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전국시대 말기 춘추시대부터 내려온 제자백가를 종합했다는데 의의를 둘만하고 현대에 와서도 그런 업적은 높이 사고 있다.
오늘은 이런 여씨춘추 중 십이(十二) 기 맹춘기 4장 귀공(貴公)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맹춘기 4장의 제목은 귀공(貴公)이다.
'함께 나눔을 귀하게 여기다.'라는 뜻으로 십이기(十二紀)는 계절을 나타내는 12개월의 뜻으로 맹춘기는 봄이 막 시작되어 땅에서 새싹이 소생하는 시기를 일컫는다. 이 시기는 양의 기운이 넘치는 시기로 국가의 흥망성쇠의 시기로 보자면 창업(創業)의 시기라 할 수 있겠다.
사실 귀공의 가치는 창업의 시기뿐만 아니라 수성(守成)의 시기는 물론이오 망국의 기운이 돌지언정 무엇보다도 높은 가치를 두어야 하는 것으로 왕과 신하 그리고 인민 모두가 함께 나눌 때 국가의 구성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지금까지 인류가 최고의 선으로 추구한 가치지만 아직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인류 역사상 아직까지 창업되어 1,000년 이상을 수성한 국가가 없는 것을 보면 인간의 욕망은 공평한 나눔은 뒤로하고 함께 나누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
그런 귀공의 가치를 논함에 있어 제(濟) 나라 환공과 관중의 대화를 통해 무릇 전해지는 교훈이 큰 바 소개하고자 한다.
춘추시대 오패(五覇) 국 중 첫 번째 패국이었던 제나라.
무엇보다 관포지교로 유명한 관중이 재상 정치를 펼쳤던 국가로 환공 또한 자신에게 화살을 겨누어 맞힌 관중을 포숙아의 천거로 받아들여 그야말로 상남자 국가로 유명했으나 관중의 유언을 듣지 않은 환공 말년의 처사로 신하와 왕자들의 세력 다툼으로 인해 정작 그 자신은 죽고 나서 육십 일 동안이나 입관을 못해 벌레가 득실거릴 정도였다고 하니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늘 귀공에 소개된 일화는 관중이 몸이 쇠하여 가까운 시일 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는 소문을 듣고 환공이 찾아가 관중의 사후 포숙아와 습붕중 누구를 재상에 앉히는 것이 나을 것인가에 대하여 묻자 관중은 각각의 인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한다.
"안 됩니다. 저는 포숙아와 절친한 사이입니다만, 포숙아의 사람됨은 청렴하고 곧으며, 자기만 못한 자를 보면 그와 함께 가까이 지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한번 들으면 평생토록 이를 잊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습붕의 사람됨은 옛날의 현인들에게 뜻을 두면서 자기만 못한 사람을 질책하고, 덕이 황제와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면서 자기만 못한 삶을 불쌍히 여깁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대한 그의 태도는 강령만을 총괄해야지 굳이 소소한 것까지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고, 일에 대한 그의 태도는 자신의 직무가 아니면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으면, 사람에 대한 그의 태도는 세세하게 따져야 밝혀진다고 보지 않는 입장입니다. 부득이하다면 습붕은 괜찮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큰 관직에 처한 사람은 까다롭고 세밀하게 살피려 하지 않고, 잔꾀를 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큰 목공은 잔 기교를 보태어 다듬지 않고, 큰 요리사는 제사상을 차리는 일까지 맡아 하지 않으며, 큰 용사는 직접 칼을 휘둘러 싸우지 않고, 큰 군대는 백성을 해치지 않는 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씨춘추 십이기 맹춘 4장 귀공 中
사실 위 내용만 보면 귀공- 함께 나눔을 귀하게 여기다 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포숙아와 습붕의 성격적 차이는 꼼꼼하느냐 무탈하느냐의 정도이며 오히려 포숙아가 재상에 자리에 더 잘 어울릴 법도 하다. 왜냐하면 청렴하면서도 자신보다 못한 사람은 멀리하니 사사로운 이권에 개입하여 국사가 어지럽혀질 염려가 없기 때문이오. 습붕의 경우 국사를 꼼꼼히 살피지 않아 나라가 어지러워질 우려가 절로 일기 때문이다.
또한 위 내용은 귀공의 가치보다는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가 절로 떠오르게 한다. 극단적 전체주의 사회인 오세아니아에서 국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텔레스크린으로 감시하며 부당권 권력을 유지하는 모습과 위에서 습붕이 하지 않는 일 다시 말해 사사건건 필요 이상으로 국사나 인민의 일에 관여하는 나쁜 군주의 전형으로 말하는 부분에서 1984의 빅브라더가 떠오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따져서 귀공 '함께 나눔을 귀하게 여기다'의 기본 전제는 인민의 자유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2,000년 이상을 넘어서 올바른 국가에 대한 생각이 대동소이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의 자유와 올바른 나눔에 대해 생각해 보건대 여씨춘추 맹춘기 4장 귀공의 내용으로 미루어 한국가의 인민은 국가의 권력으로부터 모든 표현과 행동의 자유를 포함한 일신상의 완전한 자유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으며 우리 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억압과 강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이상 여씨춘추 십이기 맹춘기 4장 귀공- 함께 나눔을 귀하게 여기다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