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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Aug 24. 2021

채근담(菜根譚)

소확행의 바이블


채근담 하면 왠지 그 옛날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한 명이 썼을 것 같지만 16세기 말 그러니깐 명(明) 나라 후반기인 1580~90년대쯤 홍자성이란 인물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나와 같은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면 책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알게 된다.

유교, 노자, 장자, 불교 등의 여러 사상이 섞여 개인 처세와 삶의 의미에 대하여 논하는 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확실히 혼란의 시대를 살다간 제자백가들의 절박한 심정을 담기보다는 모든 불행의 원인을 욕망의 탓으로 돌리며 유유자적 삶 그 차제를 즐기기를 권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는 저자인 홍자성이 살다간 시대적 상황에 빗댄 결과라고 생각되는데 16세기 후반 지도층의 부패로 인하여 국운이 저물어가는 명나라를 보면서 저자는 중국의 사서(史書)에서 무수히 등장하는 지도층의 부패와 역성혁명의 기운을 느끼며 어지러움이 예견되는 시대 욕망에 휩쓸려 부귀영화를 추구하다 주어진 천명을 다하지 못하고 비명횡사하느니 마음가짐과 처세를 바로 하여 삶의 진정한 의미와 함께 깨달은 그 의미대로 무위(無爲)의 삶을 살 것을 마치 도인(道人)처럼 권하고 있다.

채근담의 저자 홍자성은 말한다. 세상 자체는 불교적 세계관인 공(空)으로 존재한다고, 이런 세상에서 개인의 세속적 삶은 유교의 가르침대로 신독(愼獨)과 중용(中庸)의 자세로 임하라

먼저 저자 홍자성에 대하여 간략하게 언급한다면 사실 책에 나와있는 저자 소개란의 내용 밖에 할 얘기가 없을 정도로 그가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아무런 기록이 없다.

다만 그가 어떤 사람이었나 하는 정도를 추측할 수 있는 자료가 있는데 이는 이 책의 서문에 해당되는 제사를 지은  우공겸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홍자성은 그의 친구인 점을 들의 그가 명나라 말기 유학을 공부한 선비였으며 쓴 책의 내용으로 말미야 마 유학뿐만 아니라 노장사상과 불교 등에도 정통한 것을 보아 재야에서 많은 공부를 한 서생(書生) 정도로 추측되고 있다. 사실 책을 읽고 제일 와닿는 점이라고 한다면 이 책을 너무 격이 낮게 여기는 것 같은 죄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사실 홍자성이라는 인물이 확실히 언행일치의 삶을 살았다는 것에 대해 증명된 인물이라는 점이다. 홍자성이라는 사람이 책에서 부단히 지적한 대로 부귀영화를 쫓다 제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역사적 기록이 없는 점을 들어 추측건대 그는 자신의 주장대로 자연에서 유유자적 삶을 즐기는 소요유(逍遙遊) 적 삶을 살았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나름의 확신으로 책의 내용을 다시금 되돌아보겠다.

채근담이라는 책은 사실 책의 내용보다 제목이 더 유명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십여 년 전 이미 이 유명한 제목에 이끌려 읽었지만 역시나 지금 나에게 남은 것은 그 강렬한 제목뿐이다. 이 채근담(菜根譚)이라는 제목은 송나라 유학자 왕신민이 '사람은 항상 나물 뿌리(채근. 菜根)를 씹을 수 있다면 백 가지 일을 할 수 있다.'라는 말에서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입에 달고 소화하기 쉽고 배출 용이한 음식이야 누구든 바라는 바지만 어찌 삶이 바라는 마음처럼 이루어지기가 쉽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욕구불만에 가득 차 괴로운 번민에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며 명(命)을 재촉하는 것이다. 하지만 입에 쓰고 소화 안되고 배출이 힘든 나물 뿌리를 먹음에도 별 어려움이나 불만이 없다면 세상사에 대한 거의 모든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바 삶이 어찌 고단한 역경일 수 있겠냐는 홍자성의 격언 집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채근담이다.


이런 채근담은 개인의 처세에 대하여 주로 논한 전집(前集) 222조와 욕심 없이 자연 속에 사는 삶에 대하여 찬양한 후집(後集) 134조로 이루어져 있다.

논어나 장자와 같은 일화나 우화를 소개하며 각자가 주장하는 최고선(最高善)을 이야기하는 형식이나 노자처럼 각 장마다 어떤 주제를 이야기하고 설명하는 식의 전개가 아니라 대놓고 이렇게 이렇게 살아라 하는 식의 짧은 격언 모음집에 가깝기 때문에 처음 접할 때 적잖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읽고 나면 마음속에 무언가가 크게 남는 것도 없기에 이 책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계속 읽다 보면 무수히 반복되는 격언 속에서 몇 가지 기둥이 되는 도(道)를 배우게 되니 바로 이것들이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공(空)이다. 무엇은 무엇으로 영원히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물질을 공유하는 변화무쌍한 세상에 살고 있어 나(我)라는 것조차 스쳐지나는 우연의 산물이거늘 인식이라는 것이 작용하여 받아들여지는 세상인 현상계(허상)를 내 마음대로 해석하여 집착하면서 모든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불교)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 그런 사회 속에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모름지기 공자의 수신(修身)과 신독(愼獨)의 자세로 수련하여 마련된 중용의 덕으로 일관하여 나와 남에게 해(害)가 되지 않도록 처신한다.(유교)


사람은 욕심이 끝이 없기에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공을 이루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라는 노자의 공수신퇴(功遂身退)의 가르침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노자)


또한 사람의 성공은 사람들 사이에서 드높은 명예나 부를 이루는 부귀영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에서 안분지족하는 그 마음 그것을 깨닫고 깨우쳐 단 하루를 살아도 불만족 없이 주어진 삶에 스스로 만족하는 개인주의적 사상의 내용도 부단히 찾을 수 있다.(장자)


이런 동양의 고전적 사상의 틀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진정한 행복에 대한 정의를 다시금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 채근담이다.

삶에, 사람에, 사랑에, 욕망에 지쳐 비틀거리고 있다면 채근담을 손에 쥐고 하루를 시작하기 전이나 잠자기 전에 10조씩 딱 5분만 투자해 그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작금의 시대 유행하는 소확행에 대한 확실한 접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일찍이 어두운 시대를 예견하고 소확행을 노래했던 홍자성의 채근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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