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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Apr 07. 2022

백석- 국수

시인 백석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아마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타자를 쳐야 할 것이다.

이처럼 무수히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 아마도 전설과도 같은 사람이 백석 시인이 아닌가 싶다.


일제강점기 185cm라는 당시 어마어마한 키에 훤칠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 시작(詩作) 뿐만 아니라 러시아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에 능통한 언어 천재로서 세 번의 결혼을 한 이력과 란이라는 여자와 함께 통영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소로 만들어버린 이야기 그리고 김영한이라는 재일동포 여인이 1980년대 후반 당시 1,0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백석 시인을 위해 길상사라는 절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하며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 일, 100권을 사비로 1936년 한정 발간한 그의 첫 시집 '사슴'은 전설 속에 등장하는 용(龍)이 되어 어딘가에서 나타나 주기만 한다면 1억 원을 호가하는 돈으로 사겠다는 이가 지금도 줄을 선 전설 중에 전설의 스토리를 가진 이가 백석 시인이다.


오늘은 이런 백석 시인의  '국수'라는 정감 어린 작품을 감상해 보자.


국수

    -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소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얀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들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는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서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아버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상뀡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굴을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시(詩)는 특별한 은유나 비유가 없이 평안도 사투리로 함께 국수를 지어내어 먹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쓰지 않는 평안도 사투리에 대한 뜻만 안다면 그 구수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감상할 수 있기에

나름의 노력으로 평안도 사투리를 표준어로 정리해 보았다.


산엣새: 산에 사는 새

벌로: 벌판

멕이고: 먹이를 찾음

애동: 아이(어린이)

엄매: 엄마

김치가재미: 김치 저장고

흥성흥성: 활기차게 번창하는 모양새

양지귀: 햇살 잘 비추는 가장자리

능달쪽:  햇살이 잘 비치지 않는 자리

은댕이: 산꼭대기

예데가리밭: 비탈밭

하로밤: 하룻밤 

접시귀: 접시 귀퉁이 

산멍에: 구렁이

분틀: 국수를 눌러빼는 기구(틀)

녯날: 옛날

들쿠레: 구수하고 시원한

텁텁한: 눈이 흐릿한

둥덩: 둔덕

여늬:  여느

야배: 아버지

사리워: 담어

잔등에: 등에

큰마니: 할머니

집등색이:  짚으로 만든 자리

자채기: 재채기

큰아바지: 할아버지

넘엣: 넘어

슴슴하다: 심심하다(싱겁다)

쩡하니: 좋아하고

동티미국: 동치미 국물

댕추가루: 고춧가루

탄수: 식초

더북한: 수북한

삿방: 갈대를 엮어 짠 자리를 깐 방

아르굴: 아랫목

고담하고: 글이나 그림 따위의 표현이 담담하고 소박함


북한에서 촬영된 둘째 아들과 막내딸 그리고 아내와 함께 한 백석 시인(오른쪽 하단)

먼저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백석 시인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하기에 최대한(?) 간단하게 그의 삶을 정리해 본다.

백석 시인의 본명은 백기행으로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백시박은 사진 기술을 가지고 있어 조선일보에서 사진기자로 근무하다 고향인 정주로 낙향했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백석 시인과는 꾀나 깊은 연을 맺게 되는데 그의 시에서 늘 말했듯이 가난했던 그는 집안 형편상 대학 진학이 어려웠다고 하는데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에 선발되어 당시 일본에서 학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아오야마대학에 유학을 하게 되고 그 후 조선일보사에 근무하며 문예계 등단 역시 조선일보의 신춘문예를 통해서 였다고 하니 그 인연이 보통은 아니었다고 할 것이다.


1934년 일본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당시 조선일보 사장인 방응모의 제안으로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2년여를 근무하다 낙향하여 함흥의 영생여고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으나 사임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여성>지의 편집을 맡기도 한다.

1940년에는 만주로 넘어가 만주국에서 측량 공무원으로 근무하기도 하다 1942년에는 같은 만주 안동으로 이주하여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등 자신이 일을 하여 돈을 벌지 않으면 유지되기 힘들었던 삶이었기에 늘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시 쓰기에 열중했다고 한다.


그 후 해방이 되고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로 돌아와 작품 활동에 열중했다고 한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특별히 좌익 활동이 없었던 그에게 월남을 권했으나 가족 모두가 북에 있는 상황에서 자신 또는 자신의 처자식만 데리고 월남하기엔 남아있는 친족에게 해를 끼칠까 하는 염려로 그 모두를 다 거느리고 가기엔 생활 터전이 없어 힘들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북에 남았다고 한다.

조만식 선생의 러시아어 통역 일을 하긴 했으나 이념 문제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던 그는 사상 문제에 수단이 되는 문학보다 예술적 순수성을 옹호하는 글을 섰다가 김일성 정권에 미움을 사 양강도 삼수군으로 유배를 당해 평생을 협동농장의 양치기로 살다 1996년 사망하였다고 전해진다.

워낙 이념에 관심이 없었던 지라 숙청당해 목숨을 잃었던 재능 있었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북한 정권에서도 특별히 관리하지는 않았는지 지역 내 어린 인재들에게 문학 과외를 해주었다는데 그중에는 북한의 유명 문인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월북작가로 잊혔던 작가였으나 1988년 해금 조치로 인하여 정지용 시인 등과 함께 각광받는 작가가 되었으며 특히, 그러한 조치 이후 남한에서 그에 대한 연구 논문만 600편이 넘고 2005년 <시인세계>가 시인 15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시집 중 가장 영향이 큰 시집 1위로 그의 '사슴'이 꼽힐 정도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이렇듯 힘든 세상에 태어나 사연 많은 삶을 살다간 사람이 백석 시인이다.

한 편의 시(詩)인 '국수'를 소개하며 이렇듯 서두가 긴 것도 참으로 기이하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념으로 얼룩진 세상살이 속에서도 오로지 글쟁이로서의 본분만을 생각하며 글을 쓰신 백석 시인의 그 찬란한 정신이 가장 잘 우러난 시가 바로 이 '국가'가 아닌가 싶어 글이 길었던 것 같다.

자신의 고향인 평안도 사람들이 산꿩을 잡아 육수를 내고 겨우내 살얼음 끼어있는 동치미 국물과 섞어내어 고추를 넣어 먹는 메일국수잔치 그 정겨운 모습에 감동하고 글로 엮은 참 시인 백석.

일제의 탄압과 이념의 대립이라는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안빈낙도의 삶을 살다간 백석.

고향땅 정겨운 모습을 그저 반가운 것의 재림으로 설렘 가득한 표현으로 써내린 시  '국수'를 감상하며 참다운 시인의 모습을 다시금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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