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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Dec 08. 202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94년~ 1832년) 하면 왠지 고전문학이라는 틀에서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도 그의 평생에 걸친 역작 '파우스트' 1부와 2부 두 권을 앞에 두고 마치 그 옛날 '통곡의 벽'앞에 선 유대인처럼 슬픔을 넘은 자책의 비애라고 할 말한 감정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요한 볼프강 폰 괴테만큼 현대인의 감성과 가장 가까이 다아 있는 작가가 있을까?

특히, 오늘 소개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있자니 고전주의니 낭만주의니 당시의 사조 보다 오히려 근대의 철학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가까운 그의 시대를 초월한 철학적 면모를 느낄 수 있는데 쉽게 이야기하자면 250여 년의 세월의 간극이 못 느낄 정도로 세련되어 소설적인 재미마저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럼 젊은 베르테르가 왜 그렇게 슬퍼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 '이탈리아를 여행 중인 괴테의 초상화' 1787年作

소설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여 소개하면 이렇다.

1771년 5월 베르테르라는 청년은 변호사로서 상속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한 시골마을로 내려오게 된다.

그곳에서 늙은 법무관의 딸인 로테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로테는 알베르트라는 반듯한 청년을 약혼자로 두고 있는 유부녀와 다를 바 없는 처지였다.


20대 초반의 불타오르는 사랑의 열병에 괴로워하는 베르테르를 위해 그의 친구와 가족들은 도시에서 공사관의 비서로 일 할 것을 추천받고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그렇게 하여 비서관으로 일하던 중 당시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해도 아직은 관료주의적이고 귀족 중심적인 체제에서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는 베르테르는 여러 가지 관습에 좌절하고 만다. 또한 하루는 귀족들의 파티에서 씻을 없는 모멸감을 느끼며 쫓겨나게 되고 베르테르는 이 일을 계기로 도시에서의 생활을 아예 접고 다시금 로테가 머무르는 시골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상황도 녹녹치 않아 로테는 베르테르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알베르트와 결혼을 하여 그와의 인연에 대한 실낱같았던 희망마저 사라져버리고 만다.


사회의 높은 벽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그에게 앞으로의 세상도 결코 만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와도 같은 두 가지 일이 생기는데 하나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청년이 로테 아버지의 서기로 근무하던 중 로테에게 반하여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후 해고를 당하고 급기야 미쳐버려 한겨울에 로테에게 줄 꽃을 찾아 헤매던 와중에 그와 마주친 것, 또 다른 하나는 주인집 여자를 흠모하던 머슴이 그녀의 재산을 노리던 남동생의 음해로 해고를 당하게 되고, 그 여자가 다른 머슴과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질투와 열등감에 현재의 머슴을 살해한 자를 베르테르는 이미 안면이 있고 좋은 인상을 받았기에 그에 대한 변호를 하고자 하지만 로테의 아버지인 법무관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죄이기에 허튼 노력 따위는 하지 말라는 충고에 자신의 사랑도 그 머슴과 똑같이 그가 사는 인간 사회에서 모멸과 조롱의 대상이라는 처절한 자각 속에서 로테의 남편인 알베르트에게 여행 중의 호신을 위하여 필요하다는 빌미로 권총을 빌려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초상화

이 소설은 베르테르가 친구인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서간체 문학이다.

그가 서간체 형식을 빌려 소설을 쓴 것은 아마도 소설의 내용이 그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기에 요즘 말로 '남의 일' 같은 않은 것들에 대하여 조금 더 밀착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여겨진다.


괴테가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마치고 1772년 봄 베슬러라는 도시의 고등 법원에서 법무실습을 하던 시절. 그곳의 법관 브푸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그 집 딸 샤로테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16살의 그녀는 당시 외교관 케스트너와 약혼한 사이여서 끝내 괴테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렇게 끝난 이야기에 반 년이 지나 충격적인 일이 발생하는데 같은 베슬러에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있던 예루살렘이라는 사람이 친구의 부인에 연정을 품고 있다가 자살을 하는데 공교롭게도 그가 자살의 순간 사용했던 총이 게스트너에게 빌린 것이었으며 심지어 예루살렘은 대학시절 괴테와도 친분이 두터웠던 사이였다.


그 누구라도 소름 돋을 상황에 놓인 25세의 괴테는 불과 14주 만에 이 이야기를 믹스하여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완성하는데 이 첫 소설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그에게 부와 명예를 함께 가져다준 시대의 문제작이었다.

사진출처: pixabay.com

마지막으로 집고 넘어갈 부분은 과연 이 작품이 지금 와서 보면 그리 놀랄(?) 것 없이 평범한 듯 보이는 플롯이 현대적 감각의 작품이라고 앞서 언급했던 부분을 역시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당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라는 서로 극단에 서있는 문학사조에서 과연 이 소설은 어느 사조에 속하느냐에 대하여 나름의 정리를 해보며 마치고자 한다.


우선 그의 첫 소설 작품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된 시기 그의 단짝 실러와 함께 슈트름 운트 드랑이라 불리는 질풍노도 문학의 선구자로 불리었다.

실제 이 작품 곳곳에 지나친 이성주의를 배격하는 낭만주의적 요소가 넘쳐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모든 규칙은 자연의 진실한 감정과 자연의 정다운 표현을 파괴하는 것이다.(24p)

●정말로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은 내가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 그 경위를 자네에게 조리 있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나에게 어려운 일이다. 나는 지금 행복하고, 또 만족하기 있기 때문에 지난 일을 시시콜콜 다 적을 수는 없다.(32P)

●아아, 당신들 이성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란!(78p)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 영향으로 일어난 프랑스 혁명은 1784년 7월 14일에 시작되어 1794년 7월 28일에 끝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시대를 휩쓸고 있는 이성중심주의 사회에서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지나친 이성주의 사회의 획일성. 경직성을 비판하며 감성주의적 인물들(로테 아버지의 서기관, 살인을 저지른 머슴, 베르테르)이 숨 쉬고 살 여지조차 없는 현실을 비판한다.

이렇게 보면 천편일률적인 이성주의에 반기를 든 낭만주의적 색채가 너무나 뚜렷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살아생전 괴테는 자신은 낭만주의적 성향의 작가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으며 오히려 3년간의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와 그리스. 로마적 전통에 입각한 고전주의적 성향의 작품을 썼다.


이렇게 보면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의 가장 강력했던 문학사조인 낭만주의가 반이성주의 친감성주의의 사조였던 것을 고려해 보면 세계 1.2차 대전을 겪고 그제야 이성주의 철학에서 비롯된 근현대사가 이해할 수 없는 전쟁과 홀로코스트 그리고 공산권의 반정치세력 숙청이라는 도무지 이성의 근거한 정치적 행위라고 하기엔 참담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감성에 근거한 철학을 주창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을 낳았던 점을 상기해 보면 예술 분야의 사조가 확실히 정치철학이라는 사회현상을 기반으로 하는 철학보다 분명히 앞서 감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어쩌면 젊은 베르테르가 슬펐던 이유가 그 이후의 우리 역사의 비운의 전조였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보면 바로 이 소설의 현대적 감각이 놀랍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 된다.

또한 이 작품이 과연 고전주의냐 낭만주의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히 괴테 자신이 당시로는 반동적인 낭만주의와 결부되는 것에 대하여 큰 부담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산층 출신이었던 그가 바이마르 공국에서 정치적 요직에 있으면서 남작의 지위까지 부여받는 상황에서 반동적인 낭만주의 선구자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25세라는 젊은 혈기에 자신의 일과 대학시절 교제를 하였던 예루살렘의 일에서 분명히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 같은 것을 느끼며 작품을 폭풍처럼 썼기에 그 울분이 녹아 당시 사회와 예술적 사조를 부정하는 것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사실 독일 낭만주의의 시작을 괴테와 실러로 여기지만 그 의도에서 분명 거리가 있는 것은 이후의 괴테 삶이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간에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도 전에 반이성주의적 감성의 인간 베르테르가 자살이라는 극단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현실을 예리한 통찰로 표현하여 시대적 문제작이자 지금의 위대한 고전 명작 반열에 오른 불후의 명작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시간이 된다면 고전이라는 다소 경직된 카테고리에 가두어 감상하기 보다 1774년의 아득히 먼 과거에 현대적 감각으로 소설을 쓴 젊은 천재 괴테의 호기와 분노에 강에 거칠게 배를 뛰어 감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고 보람된 일일 것이기에 일독을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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