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가적일상추구 Mar 24. 2023

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개인적으로 당대 유명한 예술가와 교류했던 엄청난 인맥을 자랑하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니체가 흠모했던 루 살로메와의 인연(릴케도 유부녀였던 그녀를 사랑했다)으로 우선 니체와 교류했고, 그녀와 함께 두 번이나 러시아를 방문해서 무려 톨스토이와 대면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책 '말테의 수기'의 무대가 되는 파리에서는 로댕의 비서로 일했다.

'지상의 양식'의 저자 앙드레 지드를 만나고 그해 북아프리카 여행을 떠난 것으로 보아 그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니체. 톨스토이. 로댕. 앙드레 지드. 루 살로메 정말 미친 인맥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시(詩)와 문학은 현대성 또는 현대적 감수성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우선 릴케는 1875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던 지금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1883년에 같은 곳에서 같은 국적으로 태어난 프란츠 카프카의 8년 선배가 되시겠다.

너무나 유명한 일화라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알만한 이야기인 누이의 이른 죽음으로 인해 어머니로부터 일곱 살 때까지 여자아이로 길러지다 아버지에 의해 생뚱맞게도 11살에 육군 실과 중학교에 보내지고 같은 계열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이내 퇴학을 하고 유럽 여러 곳을 전전하며 학업과 예술인과의 교류를 통해 그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만들었다.


여담으로 성격이 꼼꼼하신 분이라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이름에서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있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바로 그의 미들네임인 마리아이다. 미들네임은 주로 세례명이 들어간다고 하는데 특이하게 릴케는 남자이면서 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이름은 우리의 이름처럼 남녀 구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성서나 신화의 남자 인물, 여자 인물의 이름을 쓰기에 사실상 남자 이름 여자 이름이 정해져있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 성인의 이름을 남자의 세례명으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아마도 그의 어머니의 성격상 여성적 세례명을 차용하였고 실제 유럽에서는 드물지만 종종 이런 경우가 있다고 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루 살로메

본격적으로 책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개인적으로 이 책을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소개하는 포스팅을 몇 개 봤는데 도무지 뭐가 재미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말테 라우리츠 브리게라는 덴마크 귀족 출신의 젊은이가 까닭 모를 이유로 몰락하여 파리의 빈민가에 정착하며 겪는 실존(實存) 적 위기감을 느끼면서 겪는 불안의 감정을 자신의 현재까지의 모든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극복하려 하는 일종의 철학적 성장소설에서 과연 소설적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인가?

또한 단순하게 실재적으로 겪은 경험과 배움만이 소설에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죽은 사람의 유령과 유럽의 온갖 신화와 성서의 이야기가 마구 섞인 이 소설을 단숨에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단 말인가?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다.


'말테의 수기'는 벨 에포크 시대라 말하는 시기 당대 프랑스의 내로라하는 문인들인 보들레르, 랭보, 앙드레 지드, 프루스트와 격을 함께하는 고전적 문학의 형식을 파괴하는 다분히 개인의 실존적 문제에 집중하는 현재로서는 퇴보된 진보의 문학이기에 사실 쉽게 접근되는 류의 문학작품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하고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책의 제목에서도 보듯이 한 개인의 수기로 에세이문학에 가깝게 느껴진다.


소설적 재미보다는 1910년대 영국에 이어 자본주의적 병폐가 쌓여가는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구시대의 산물인 봉건적 귀족으로 성장하여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한 개인이 바라보는 한시대의 이야기로 접근하는 것이 책에 좀 더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

말테의 수기의 주 무대인 프랑스 파리 출처: pixabay.com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의 한 다락방에 말테라는 덴마크 귀족 출신의 젊은이가 있다.

몸이 아파 자선병원을 찾았다가 무수히 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당시로써는 새로운 형태의 주거지인 자본주의 도시가 소비를 위한 상품과 용역뿐만 아니라 죽음 또한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듯한 괴기한 모습을 목도하고는 이 몰락한 외국의 귀족 출신 젊은이는 실존의 불안을 느끼게 된다.


그로부터 자신과 인류의 먼 과거로부터 사유되는 모든 것들로부터 이 불안이 어디서부터 야기된 것이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추적해 나간다.


우선 말테는 자신의 가족들의 죽음을 통해 죽음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본다.

도시의 프롤레타리아들의 아무 의미 없는 아니 생산되는 죽음에 비하여 그의 방계존속들은 귀족 출신으로 그 나름의 개성이 살아있는(?) 죽음으로 기억된다.

또한 그의 이모는 이미 죽었지만 그의 가족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유령으로 나타나는 모습에서 아직 살아있는 자들에게 산자(生)로 여겨지는 텍스트에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백년의 고독'에서 말했듯이 한 인간의 진정한 죽음은 그를 기억하는 마지막 한 인간의 죽음으로써 완성된다는 말과 결을 같이 한다.


한마디로 실존의 죽음은 의미 없지만 존재의 죽음은 그 존재의 크기만큼 다르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하지만 말테는 자신이 현재 귀족이 아니며 원하는 문학적 성취도 이룬 것이 없기에 현재라면 자신의 죽음도 실존 속에서 아무 의미 없이 사라질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며 바로 그 지점에서 피할 수 없는 불안의 감정에 휩싸이며 죽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프랑스 파리의 전경 (출처: pixabay.com)

2부에서는 사유를 개인과 가족의 틀을 넘어 역사적 또는 신화적 사고로 확대하며 존재와 실존 사이의 간극에 대하여 묻기도 하고 과연 존재도 실존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또는 종말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죽음에 대하여 조금 더 보편적 사고에 접근하는 말테의 고군분투가 느껴진다.


특히, 말테의 어린 시절 자신의 이모인 아벨로네에 대한 감정과 책으로 접한 역사적 실존 인물이었던 샤를 6세의 이야기를 통해 과연 실존의 불안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한다.


우선 샤를 6세의 이야기를 통해 왕이라는 존재의 죽음조차 이전의 귀족이었던 직계존속들의 요란한 죽음도 아무 의미 없음을 깨닫게 된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그저 한 광인(狂人)의 보잘것없는 죽음이었음을 깨닫고 죽음의 공포에서 오는 불안의 극복을 사랑에서 찾고자 한다.

하지만 사랑도 어떤 의미로 규정된 사랑은 사랑이 아닌 그저 자기기만의 한 형식임을 깨닫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하여 말테는 깊은 사색에 잠기게 된다.


그는 신약성서인 루카복음서 제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아'의 이야기 속에서 사랑의 의미에 대하여 그리고 실존의 불안을 극복하는 진정한 사랑에 대하여 말하며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우선 말테는 말한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실천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규정짓는다.

이는 니체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 인간이 사후 그 어떤 형태의 구원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안 최초의 인간이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해 창조해낸 허구이다'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듯하다.

그렇게 말하면서 아벨로네의 자신에 대한 감정과 자신이 느꼈던 아벨로네에 대한 감정 또한 순간의 외로움이나 생존을 위한 애정의 수단이지 진정한 사랑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돌아온 탕아'의 이야기를 하며 마무리하는데, 부잣집에 두 아들이 있었는데 성실한 큰아들은 아버지의 밑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지만 작은아들은 자신의 몫의 재산분할을 요구하여 그 돈을 가지고 가출을 감행한다.

이내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작은아들. 그를 진심으로 반기는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던 소(牛)까지 잡아 잔치를 벌인다.

이에 큰아들은 서운함을 토로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작은아들이 살아왔으니 그저 기뻐하자며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지금의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지만 말테는 이야기한다.


그 작은 아들이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 그의 아픔을 보듬고 그 생환을 축하하는 그 순수한 사랑 그 사랑으로 우리는 이 모든 실존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

다소 교도적이고 진부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릴케의 소설 '말테의 수기'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 실존적 한계에서 오는 불안에 대하여 고찰하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몰락한 귀족 출신의 젊은이의 이야기이다.

책이 여러모로 난해한 점이 많아 책의 한 구절 한 구절 텍스트에 집중한 포스팅이 많은데 그런 점을 참고하여 전체적으로 이 책을 어떻게 읽고 이해하여 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해 보고 이야기해 봤다.

명쾌한 해설보다는 다양한 각도로 이해될 수 있는 여지가 많기에 그런 점에 착안해서 책을 읽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듯하다.


기회가 된다면 '벨 에포크'시대에 대하여 조금은 깊이 알아보고 특히, 릴케와 곁을 같이하는 보들레르. 랭보. 앙드레 지드의 문학에 대해서도 접해보거나 알아보고 접근하는 것도 소설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