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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Apr 11. 2023

목매는 줄(에두아르 마네에게)- 샤를 보들레르

보들레르 소산문시집 '파리의 우울' 中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의 책 '파리의 우울'에서 가장 유명한 텍스트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서른 번째 시인 '목매는 줄- 에두아르 마네에게'일 것이다.

보들레르는 '악의 꽃'이라는 현대 상징주의 시(詩)의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시집의 작가이기도 하지만 시대를 앞서는 탁월한 예술비평과 안목은 음악의 바그너, 미술의 마네 같은 새로운 예술 사조를 창조한 위대한 위인을 알아보는 신(神)의 축복을 받은 미적감각을 타고났다.


시대의 금수저로 태어나 치산자 판정을 받고 경제적 궁핍과 건강 악화로 고생했던 말년의 보들레르였지만, 위대한 미술적 재능을 가지고 새로운 예술적 가치를 창조하고 있었지만 시대를 앞선 그의 작품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이유 불분명한 비난에 고통받던 에두아르 마네에게 이 시(詩)를 받칠 만큼 아끼던 사람이었다.(물론 마네도 금수저로 태어나 경제적으로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의 그림들이 워낙 시대를 앞서간-고전주의에서 잠깐의 사실주의를 거쳐 그의 손에서 인상주의로의 대세 전환- 까닭에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 올랭피아는 그간 아무도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던 매춘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켰으며 아무런 미화 없이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흑인인 하인의 얼굴은 검은색 배경에 이목구비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명함 표현은 당시로서는 충격 그 자체였다고 한다.)

에두아르 마네(左)와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右)

아무튼 이런 에두아르 마네의 입을 빌려 인간 삶의 매정함을 표현한 산문시가 바로 '목매는 줄'로 마네가 겪은 비극적인 일이 모티브이다.

모든 에피소드가 거의 사실과 일치하는데 결정적으로 자살한 소년의 어머니의 행동과 그의 이웃들이 보낸 편지는 사실인지 아니면 보들레르가 작가적 상상을 더했는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너무 긴 산문시라 일부만 소개하고자 한다.


목매는 줄

- 에두아르 마네에게


중략

만일 세상에 어떤 자명하고 평범하고 항상 유사하며 착각의 여지가 없는 성질의 현상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모성애지. 모성애가 없는 어머니를 상상한다는 것은 열이 없는 햇빛을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지. 따라서 한 어머니의 자신의 아이에 관한 모든 얘기나 행동을 순전히 모성애 탓으로 돌리는 것이 매우 당연하지 않겠나? 그런데 이 짤막한 얘기를 들어보게.


중략

나는 거기서 자주 한 아이를 관찰하였네.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열정적이고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나는 대번에 반해 버렸네. 이 아이는 나를 위해 여러 차례 포즈를 취해 주었고, 나는 이 아이를 때로는 어린 보헤미안으로, 때로는 천사로, 또 어떤 때는 신화 속의 '사랑의 신'으로 변형시키기도 하였네. 나는 그에게 방랑자의 바이올린을 들게 하기도 하고, 가시관을 씌워보기도 하고, 수난의 '못'을 쓰게도 하고, 에로스의 횃불을 들게도 했지. 나는 이 장난꾸러기의 익살에 너무나 큰 즐거움을 느낀 나머지, 하루는 그의 가난한 부모에게 간청하여 아이를 잘 입히고 돈도 얼마간은 줄 것이며 내 화필을 빨거나 작은 심부름을 시키는 일 이외에 다른 일은 시키지 않겠노라고 약속하며, 아이를 내게 양보해 달라고 했네. 아이는 깨끗이 씻고 나니 귀여워졌고, 그가 우리 집에서 영위한 삶은 아버지의 누옥에서 살아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그에게는 천국처럼 생각되었을 것이야. 다만 이 꼬마 양반이 때때로 이상하게 조숙한 슬픔의 발작을 보여 나를 놀라게 했다는 사실과, 머지않아 곧 달콤한 사탕과 주류에 터무니없는 취미를 보였다는 사실을 말해야만 하겠네. 그것이 어찌나 심하던지, 내가 수차례 걸쳐 경고했는데도 그가 여전히 이런 유의 좀도둑질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어느 날 그를 부모의 집에 돌려보내겠다고 위협해 두었지. 그리고 나는 외출을 했네


중략

그 애를 내려놓는 일은 자네가 생각하듯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네. 그는 벌써 굉장히 굳어버려. 그를 덜커덕 땅바닥에 떨어지게 하는 데 나는 설명할 수 없는 혐오감을 느꼈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의 몸 전부를 한 팔로 붙들고, 다른 쪽 손으로는 줄을 끊어야만 했네. 그러나 그렇게 하고도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어. 이 꼬마 괴물은 아주 가느다란 끈을 사용했으므로, 그 줄이 살을 깊게 파고들어 목에서 줄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가느다란 가위로 부푼 살 사이에 박힌 줄을 찾아야만 했지. 자네에게 잊고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때 도와달라고 크게 외쳤네. 그러나 내 이웃들은 모두 문명인의 습관에 충실한 나머지 나를 돕기 위해 오기를 거절했지. 개화된 인간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결코 목매달아 죽은 사람의 일에 끼어들려 하지 않기 때문이야. 마침내 의사 한 명이 와서, 아이는 죽은 지 여러 시간이 되었다고 단정했지.


중략

나는 재빨리 달려들어 이 마지막 불행의 흔적들을 뜯어내 버렸네. 그리고 열린 창문을 통해 그것을 밖으로 내던지려고 하는데, 그 불쌍한 여인이 내 팔을 붙들고 뿌리칠 수 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지. "오! 선생님! 그것을 나에게 주세요! 부탁입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분명 그녀의 절망이 그녀를 그렇게 미치게 만든 나머지, 이제 그녀는 아들이 죽을 때 도구로 사용한 것에조차 애착에 사로잡혀, 그것을 무서우면서도 귀중한 기념물로 간직하고 싶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네. 그녀는 그 못과 끈을 빼앗았네.


중략

어떤 것들은 심각한 요구를 외면상의 장난으로 숨기려는 듯 반쯤 농담 투의 문체였고, 또 어떤 것들은 아주 노골적이고 맞춤법도 형편없었지만 모두가 같은 목적에서였네. 즉 나에게서 그 흉측한, 그러나 동시에 행운을 가져다주는 끈을 한 토막이라도 얻기 위해서였지. 서명들 중에는 여인들이 남자들보다 많았다는 것도 나는 말해야 하겠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정말이지, 가난하고 저속한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뿐만은 아니었네. 나는 아직도 그 편지들을 보관하고 있지.

그런데 그때 갑자기 나의 뇌리에 어떤 섬광이 스쳐갔네. 나는 왜 그 어머니가 나에게서 끈을 그토록 맹렬하게 빼앗아가려 했던가, 그녀가 어떤 거래로 스스로를 위로하려 했는지 깨닫게 되었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 中


위 시(詩)의 주인공 소년이 직접 모델이었다는 '버찌를 든 소년'(左)과 영감을 얻어 그렸다고 하는 '소년과 개'(右) 공히 에두아르 마네의 作品.

하나의 잔혹동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싸늘하게 드는 시(詩)이다.

위 소년의 은은한 미소 뒤에 숨겨진 인생(人生)의 부조리함.

삶의 힘듦을 잊게 해주는 쾌락적인 것에 대한 중독과 그 중독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불안에 스스로 가느다란 끈으로 목을 맨 소년의 이야기.

그리고 더 잔혹한 건 살아있는 인간들의 끝 모를 이기심.

어린아이에 대한 동정심보다는 행운을 위해 목맨 끈을 얻고자 하는 욕망과 모성애를 열이 없는 햇빛에 비유하며 매우 자명한 현상으로 여겼던 생각을 단 번에 부숴버리는 소년의 어머니의 돈을 향한 욕망까지 책의 제목처럼 이 파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떻게 하나같이 다 우울한지 모르겠다.


샤를 보들레르의 데카당적 시선이 가장 많이 묻어 나오는 시가 바로 이 이 시가 아닌가 싶다.

실제적으로 이 시는 보들레르가 죽기 전해인 1864년에 발표한 시로 에두아르 마네가 1861년에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다만 서두에서 밝혔듯이 그 끈을 구하고자 달겨들었던 이웃과 어머니의 이야기는 진위 여부가 뚜렷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고 하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라고 한다.

아무튼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라는 문학계의 거장과 에두아르 마네라는 미술계의 거장 간의 교류 속에 삶의 부조리를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표현한 부분은 문학과 미술이 사실주의사조에서 각각 상징주의와 인상주의로 넘어가는 기념비적인 작품 두 개가 아닌가 싶다.

기회가 된다면 보들레르의 '목매는 줄'과 마네의 소년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두루 감상하며 현대예술의 역사와 그 자체를 즐기는 것도 아주 의미 깊은 일이라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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