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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Apr 07. 2023

아르튀르 랭보- 나의 방랑생활

16살부터 19살까지 약관도 안된 나이에 햇수로 4년 실제로는 3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시(詩)를 쓰고 절필한 시인이 있다.

그의 동성 애인이었던 폴 베를렌과의 그 떠들썩했던 일들 이후 베를렌의 말처럼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가 되어 여기저기를 떠돌다 아프리카라기보다는 아랍에 가까웠던 아덴에서 밀무역까지 했던 이 남자는 37살의 나이에 온몸에 종양이 번져 오른쪽 다리를 완전히 절단한 끝에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눈을 감는다.


병원 사무원은 그의 사말을 이렇게 기록했다고 한다.


무역업자, 이송 도중에



현재 랭보는 불멸의 시인으로 전인류에게 기억되고 있음에도 죽음의 순간 그는 그저 그런 무역업자, 아니 나쁘게 표현했으면 '밀수업자, 이송 도중에'라고 기록될 뻔했던 순간이었다.

살아생전 그의 시(詩)들이 파리의 젊은이들을 열광하게 했음에도 "그건 다 헛소리였고 거짓말이었다."라고 하며 정말 말 그대로 절필을 했던 시인.

왜 그렇게 살았아야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시선(詩仙) 있다면 바로 이 아르튀르 랭보가 아닐까 한다. 오늘은 이런 랭보의 대표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 수록된 '나의 방랑생활'을 감상해 보자.

영화 '토탈 이클립스'의 실제 인물이었던 폴 베를렌(左)와 아르튀르 랭보(右). 신혼의 베를렌은 10살 연하의 랭보와 함께 시끌벅적은 연애를 하다 총으로 랭보를 쏘아 살인미수로 감

나의 방랑생활


- 아르튀르 랭보


난 쏘다녔지,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놓고,

짤막한 외투는 관념적이게 되었지

나는 하늘 아래 나아갔고, 시의 여신이여! 그대의 충복이었네,

오, 랄라! 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꿈꾸었는가!


내 단벌 바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었지

- 꿈꾸는 엄지동자인지라, 운행 중에 각운들을

하나씩 떨어뜨렸지. 내 주막은 큰 곰자리에 있었고.

- 하늘에선 내 별들이 부드럽게 살랑거렸지.


하여 나는 길가에 앉아 별들의 살랑거림에 귀 기울였지.

그 멋진 9월 저녁나절에, 이슬방울을

원기 돋우는 술처럼 이마에 느끼면서,

환상적인 그림자들 사이에서 운을 맞추고,

한 발을 가슴 가까이 올린 채,

터진 구두의 끈을 리라 타듯 잡아당기면서!



랭보의 시는 상징주의의 상징과도 같다. 자산의 방황을 저 우주의 은하수 속에 별들에 비유했으며, 자산의 낡아 터진 구두의 끈은 리라 악기를 타는 고상한 모습으로 표현했다.


어쩌면 10대 시절 시인 랭보는 자신의 삶을 이미 예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시이다.

현재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의 국경지대인 프랑스 아르덴주 샤르빌에서 태어나 파리와 영국을 떠돌다, 현재는 소말리아 땅인 에디오피아의 아덴에서 밀수까지 했던 랭보.

집안의 유전적 요인으로 온몸에 종양이 번져 파리로 이송 중 남프랑스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 서른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눈을 감은 아르튀르 랭보.

그의 삶 전체가 녹아 있는 듯한 이 시(詩)는 랭보를 잘 모르는 이가 읽었다면 그의 삶 말년에 쓰인 시라고 충분히 오해할 만큼 무언가 애잔한 마음이 든다.


문학적 재능과 열정으로 삶과 자연을 노래하고 싶었던 랭보.

하지만 현실은 가난과 방랑의 삶뿐이라는 것을 그는 10대 시절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가난했지만 문학적 재능이 높았던 랭보.

부유하기도 했지만 문학적 재능이 높았던 보들레르.

랭보에게 위안이 된 것이 있다면 부유했던 보들레르도 여러 가지 이유로 비극적 삶을 살았으니, 이곳저곳 맨발로 세상을 누비고 싶었던 랭보는 발이 잘린 위험에 낡은 구두를 신고 다녔지만 고향으로부터 가늠하기도 힘든 아라비아 해역의 아덴까지 세상 구경을 했으니 그렇게 손해 본 삶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시(詩)로 돌아와서, 자신이 엄지동자인지라 저 먼 우주를 유영하듯 여행하더라도 별을 떨어트려 언제든 다시 되돌아올 수 있다고 여겼던 시인 랭보.

비록 발과 가슴이 현실에서는 큰 괴리가 있을지언정 시인(詩人)은 터진 그 구두의 끈을 잡아 댕기는 것조차 그리스신화의 나오는 아름다운 신(神)이 리라를 댕기는 것과 같다고 자신을 위안했던 그 모습이 시각화되는 순간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진다.


시 한연을 읽고 지금의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에서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었던 랭보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고, 다시 한번 한연을 읽고 나의 아들. 나의 동생이라 여겨지는 당시의 랭보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고, 또다시 한번 한연을 읽고 어리고 여린 인간 랭보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니 어느새 눈가가 뜨거워지는 시.

아르튀르 랭보의 '나의 방랑생활'이었다.

사실 우리에게 아르튀르 랭보의 이미지가 더욱 애잔하게 느껴지는 건 1995년 리즈시절 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가 연기했던 그 랭보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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