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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Apr 14. 2023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취해라 (파리의 우울 中)

1815년 6월 벨기에에서 워털루 전투가 나폴레옹의 패배로 끝을 맺고 프랑스는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는 1914년까지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통칭되는 '벨에포크'를 맞이한다.

어지러웠던 프랑스 혁명의 폭풍이 지나가고 자본주의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특별한 전쟁이 없었던 100여 년간의 시절 철학. 문학. 과학은 이성주의의 열풍을 타고 폭주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정반합의 변증법적 사고가 지배적인 시대사조 안에서 지식인들은 그 이성에 반기를 들며 점차 개인의 감수성에 주목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프랑스 벨 에포크 말기에는 그러한 위대한 문인들이 왕성히 활동했다.(앙드레 지드, 랭보, 베를렌, 프루스트 등)

오늘은 그중에서도 그들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의 '소산문시'집인 '파리의 우울'에 수록된 '취해라'라는 시를 소개할까 한다.


샤를 보들레르는 1821년에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나 낭비벽으로 인하여 치산자 선정을 받고 그의 문학적 재능이 함축되었던 시집 '악의 꽃'은 문단과 대중의 환호는커녕 외설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어 몇 편(6편)의 시는 정부 검열에 의하여 도려내어지고 벌금형까지 선고받는 작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에 봉착하다 생계를 위하여 강연을 다니는 등 말년에는 가난과 건강 악화로 고통받다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 작가이다.


이 시(詩)는 그의 사후 2년인 1869년 발표된 유작에 수록된 작품으로 '파리의 우울'의 수록된 시중에서도 비교적 많이 알려진 시로 차분히 감상해 보자.

파리의 어느 거리(출처: pixabay.com)

취해라

-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게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당신의 어깨를 무너지게 하여 당신을 땅쪽으로 꼬부라지게 하는 가증스러운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당신은 쉴 새 없이 취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취한다?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어느 것이든 당신 마음대로다. 그러나 어쨌든 취해라.

그리고 때때로 궁궐의 계단 위에서, 도랑가의 초록색 풀 위에서, 혹은 당신 방의 음울한 고독 가운데서 당신이 깨어나게 되고, 취기가 감소되거나 사라져버리거든, 물어보아라. 바람이든, 물결이든, 별이든, 새든, 시계든, 지나가는 모든 것, 슬퍼하는 모든 것, 덜려가는 모든 것, 노래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게 지금 몇 시인가를. 그러면 바람도, 물결도, 별도, 새도, 시계도, 당신에게 대답할 것이다. "이제 취할 시간이다!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취해라! 술이든, 시든, 덕이든, 당신 마음대로."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中




'파리의 우울'에서 이 시가 비교적 잘 알려진 건 아무래도 운문시적 요소가 많고 특히, 수미상관적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 편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리고 내용면에서도 다른 어떤 시보다도 이해가 쏙쏙 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인간 실존의 한계라 일컫는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기록된 불멸의 생명을 가진 이는 아직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가 성인이라고 말하는 예수는 십자가 못 박혀 본인도 두려웠던 고통을 감내하고 가셨으며, 부처는 보시 받은 상한 음식을 드시고 시름시름 앓으시다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러므로 죽음은 태어난 모든 인간에게 아직까지 극복되지 못한 문제이다.

또한 죽음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지옥과 천국으로 나뉘어 믿음과 선(善) 한 행위의 차이에 의하여 엇갈린 길을 가고, 불교에서는 누구나 마음속에 있는 불심(佛心)을 깨우친다면 성불(成佛)을 이루어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열반에 이루게 되고 그렇지 못한 중생은 윤회의 굴레에서 고통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주장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입증한 이가 없으니 우리는 늘 불안할 뿐이다.

죽음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 또 그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되는지 새까만 암흑의 커튼이 드리워진 죽음을 늘 등에 지고 사는 우리 인간은 그래서 불안의 존재인 것이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는 이것에 대한 아주 간단한 해답을 내놓는다.

"취해라!" 무엇이든 좋으니 취해라.

취기가 사라진다 하면 다시금 무언가에 취하라.

그것이 술이든, 시든, 덕이든 당신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다시금 취하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봐도 언제 어떻게 죽어 무엇이 될까에 대해 늘 불안에 떨며 사느니 무언가에 취해 사는 게 훨씬 좋을 것이다.

특히 '술이든, 시든, 덕이든.'과 '바람이든, 물결이든, 별이든, 새든, 시계든'을 반복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존재방식이 어떻든 간에 그들도 사라질 운명임에도 그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는 모습에 우리 인간도 무엇이든가에 취해 살아야 한다는 이러한 자기주장을 뚜렷하게 전달하는 효과를 시적 표현을 통해 극대화하는 부분에서 우리는 보들레르의 시가 혁명이라고 말하는 부분에 공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2023년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보들레르의 이야기처럼 죽음이라는 시간의 흐름 앞에 주저앉는 노예가 되기보다 무엇이든 거기다 삶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에 취하게 된다면 삶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불멸의 사실을 확인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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