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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Apr 20. 2023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알바트로스

반항아의 이미지 하면 누구를 떠올려지는가?

1950년대 영화 '에덴의 동쪽'에서 반항적인 역할이었던 칼을 연기했던 '제임스 딘'?

아니면 격동의 19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천부적인 재능으로 세상을 다시금 깨우겠다는 포부를 품고 시(詩)를 쓰겠다고 선전포고를 날렸지만 폴 베를렌과의 떠들썩했던 동성연애사건 후로 세상을 등지고 살았던 아르튀보 랭보?


여기 진정한 반항의 아이콘이며 그 시초라 할 수 있는 사람의 시(詩)를 소개하고자 하는데. 이 인물의 이름은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이다.

태생부터 세상과 융화되기 쉽지 않았던 배경과 금치산자 선고를 받는 억압. 그리고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는 기성세대를 조롱하고 멸시했던 고고함을 결코 굳히지 않았던 진정한 시대의 반항아였던 사람이다.


물론 당시의 문학계의 거성이었던 빅토르 위고의 극찬과 보들레르와 마찬가지로 시대를 앞서간 까닭에 당시 인정받지 못했던 랭보의 찬양이 있었지만 그의 시집 '악의 꽃'은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 6편의 시는 당국에 의하여 검열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그러한 일들을 겪으며 지금으로 따지면 어그로를 노려볼 수 있겠지만 당시 대중의 반응은 싸늘함 그 자체로 책 출판으로 돈을 벌겠다던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은 금수저에서 낭비벽을 우려한 가족의 우려로 금치산자 선정을 받고 나머지 생(生)은 가난과 방탕한 시절 얻은 매독이 발병하여 지독한 고통 속에 삶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 시인이다.


보들레르가 평론가들의 나쁘지 않았던 평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은 당시 자유주의 파고가 거세던 시대적 흐름을 역행 복고적인 왕정을 지지했으며, 그렇게 대중과의 골은 점점 깊어져 천박한(?) 대중과는 거리를 두고 고답적(高踏的)으로 살고자 하는 자신만의 댄디즘을 고수했던 것도 한몫했다고 여겨진다.


오늘은 이런 보들레르의 대표적 시집'악의 꽃'(이 시집 이전의 시를 고전 시라고 하며 이 이후의 그의 영향에서 쓰인 시를 현대시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에 수록된 '알바트로스'를 감상할 것인데, 그의 댄디즘이 가장 잘 표현된 시(詩)이기에 의외로 문학 역사상 상당한 가치를 인정받는 시(詩)임이므로 천천히 감상해 보자.

나다르가 찍은 34세의 보들레르 현재 파리 오르세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1855년에 촬영되었다고 한다.



알바트로스


-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흔히 뱃사람들이 재미 삼아

거대한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잡는다,

이 한가한 항해의 길동무는

깊은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는 배를 따라간다.


갑판 위에 일단 잡아놓기만 하면,

이 창공의 왕자도 서툴고 수줍어

가엾게도 그 크로 흰 날개를

노처럼 옆구리에 질질 끄는구나.


날개 달린 이 나그네, 얼마나 서툴고 기가 죽었는가!

좀 전만 해도 그렇게 멋있었던 것이, 어이 저리 우습고 흉한 꼴인가!

어떤 사람은 파이프로 부리를 건드려 약 올리고,

어떤 사람은 절름절름 전에 하늘을 날던 병신을 흉내 낸다!


「시인」도 이 구름의 왕자를 닮아,

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건만,

땅 위, 야유 속에 내몰리니,

그 거창한 날개도 걷는 데 방해가 될 뿐.


출처: pixabay.com

그의 댄디즘이 바로 느껴지지 않는가?

자신을 바다 위를 나는 고고한 알바트로스에서 한 낯 선원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로잡혀 온 갖 조롱을 당하는 무기력한 새로 비유한 보들레르 시 특유의 상징적 표현이 물신 묻어나는 명시이다.


이 시는 알바트로스의 웃지 못할 상황에 은유하여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시로 알레고리를 통해 절망적 상황을 노래함으로써 기존의 시 형식의 틀을 깨버리고 알레고리나 메타포 같은 형식으로 상징적 표현을 과감하게 씀으로 현대시의 서막을 열었다는 평을 얻는다. 물론 삶의 아름다움 대해 노래해야 함이 당연함에도 그는 시를 절망적 상황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창작하는 당시로는 기행에 가까운 문인이었다.)

기존의 직설적이고 음률에 충실한 것이 시(詩) 였다면 현대시는 은유나 비유 등 상징적 표현을 통해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산문시의 성격이 강해졌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시조에서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정지용, 백석, 윤동주 같은 시인이나 일본어 교육을 받은 많은 국내파 시인들이 일정한 운율을 통해 노래를 읊는 듯한 한시(韓詩)에서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의 영향하에 빠르게 시(詩) 사조가 변한 것을 보면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대번에 알 것이다.


대중들에게 철저하게 배격 받는 천재 시인의 울분과 하지만 나는 너희들과는 다르다는 정신적 고매함이 잘 나타나 있기에 시에 대한 특별한 해석은 필요 없을 것 같아 다분히 그 배경지식을 소개하는데 충실했던 시평.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의 명시 '알바트로스'였다.


파리지앵으로 당디즘을 창시했던 보들레르가 살았던 파리의 전경(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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