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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Oct 05. 2020

악의 평범성에 대한 또 하나의 르포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유대계 이탈리아인 프리모 레비의 아우슈비츠에서의 1년 여간의 차분한 기록이 있는 책 '이것이 인간인가'.
우리가 기억하는 아우슈비츠라 일컫는 나치의 유대인 강제 수용소의 경험을 기록한 책으로 대표적인 것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일 것이다.
신경정신과 의사로 겪은 수용소 생활을 바탕으로 극한의 고난과 고통에 대처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며 로고테라피라는 정신 치료법을 착안하는데 책의 내용이 수용소의 생활만을 기록한 것은 아니고 철학적 또는 정신의학적 접근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많은 생각이 덧붙여진 책이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인가>에서는 화학자 출신의 작가가 수용소에서의 생활만을 순수하게 이야기하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모습을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한 것으로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 계기 또는 동기를 부여해 준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부록으로 수록된 '독자들에게 답한다'는 일종의 인터뷰 형식의 글로써 작가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서만 한치의 과장 없이 객관적으로 서술하였고 전해 들은 이야기나 전쟁이 끝난 후에 알게 된 사실은 처절하게 배제했다고 밝히고 있다. 
책은 그 이외의 유대인 차별의 역사나 당시 독일의 나치즘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이 어떤 반유대 정책을 펼쳤으며 또한 아우슈비츠 대표되는 강제수용소의 실태를 부록을 통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는데 매우 유익한 정보라고 생각한다.

191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난 프리모 레비는 1941년 토리노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최우등으로 졸업한다.
 당시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은 인종차별법을 시행하는데 유대인은 공립학교에 다닐 수 없는 것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미 대학에 다니고 있던 프리모 레비는 무사히 졸업은 할 수 있었지만 졸업장에는 유대인이라는 별도의 낙인이 찍혀 직업을 구하는데 상당한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아무튼 레비는 파시즘 정권하에서는 그럭저럭 일자리도 얻고 생활하지만 무솔리니 정권이 실권하고 이탈리아 중. 북부를 독일이 점령하면서 반독일 저항세력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1943년 12월 동지의 밀고로 체포되고 1944년 2월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수용소에서 1945년 1월까지 1년여를 살게 된다.

책의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탈리아의 임시 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로 5일간의 기차여행 후 선별과정(말이 비인간적이지만 노동할 수 있는 자를 빼고는 모두 가스실로 향하여 소각되었다고 한다. 특히 나치는 이들에 대한 명부 기록도 남기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지금도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의 정확한 수와 신원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후 합성고무인 부나를 생산하는 부나 수용소로 옮겨 저 노동, 배고픔, 추위, 질병 등과의 처절한 사투 끝에 소련군에 의해 해방될 때까지의 기록과 그 속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들의 군상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책에서는 그 자신이 그와 같은 지옥에서 살아 나오게 된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하는데(직접적으로 서술한 것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책에서 느낀 점이다) 하나는 자신이 겪은 모든 일들을 자신과 분리하여 한 발 물러선 객관적인 방식으로만 고통. 기쁨. 두려움을 느끼는 간접적 감정이입이었으며(이런 간접적인 감정이입으로 냉철한 판단과 행동으로 다른 수용자보다 더 합리적인 판단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이 비극적 일들의 고발을 통해 다시는 인간의 역사에서 이러한 비인간적 일들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시대정신이었다고 생각된다.

프리모 레비

책을 읽으면 많은 인물들이 잠깐잠깐 등장하는데 특히, 수용소 안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남들보다 편하게 자신의 육체를 보존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석하는 대목에서는 현대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직장에서 비교적 온화한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나에게도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저자는 그러한 분석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이곳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알게 되는데 확실히 세상에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으며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교훈이 왜 중요한지를 새삼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었다.(반면교사의 교훈이라고 말한 것은 저자 프리모 레비는 그들을 결코 긍정적으로 묘사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살아남은 이유가 그들에게서 얻은 무언가를 자신의 삶에 희석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부록 독자들에게 답한다에서 저자는 독일인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데 이 부분은 유대계 독일 여류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가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서술한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자신은 수용소에서 나치에 부역한 사람은 수용소 생활이 끝나기 며칠 전에 SS 대원 한 명 만을 보았을 뿐이고 설사 나치에 부역했던 독일인이라도 자신은 그들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그들도 자신의 생각으로 나치에 부역한 것이 아니라 나치의 선동가들에 의해 포섭된 주체의식이 결여된 개인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개개인들이 성숙한 시민의식을 함양하여 정의가 아닌 것엔 반대할 수 있는 용기가 600만 명 이상의 무고한 사람이 가스실에서 알몸으로 죽어 컨베이어로 소각장으로 날라져 불태워졌던 반인륜적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는 부탁 조의 경고를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슴 저미는 구절 하나를 올린다.
이탈리아의 포솔리 임시 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되기 하루 전 죽음의 불안이 덮친 수용소의 풍경을 묘사한 글인데 읽기만 해도 눈물이 맺힌다.


어머니들은 여행 중 먹을 음식을 밤을 새워 정성스레 준비했고 아이들은  씻기고 짐을 꾸렸다.

새벽이 되자 바람에 말리려고 널어둔 아이들의 속옷이 철조망을 온통 뒤덮었다.

기저귀, 장난감, 쿠션, 그리고 그밖에 그녀들이 기억해낸 물건들, 아기들이 늘 필요로 하는 수백 가지 자잘한 물건들도 빠지지 않았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지 않았겠는가?

내일 여러분이 자식들과 함께 사형을 당한다고 오늘 자식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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