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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Oct 07. 2020

헛수고를 덜고 삶을 관조하라.

설국(雪國)- 가와바타 야스나리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소설 설국中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첫 문장이자 명문장으로 소문난 텍스트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눈의 고장이고 어두웠던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으며 신호소에 기차가 멈추었다. 이 문장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 그것이 오늘 이 설국을 다시금 펼친 이유이다.

먼저 저 명문(名文)에 결론을 이야기하자면(물론 무지렁이인 내 생각일 뿐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것은 주인공 시마무라가 일상에서 멀어져 일탈을 꿈꾸는 현재 상태를 말한다.

그런 욕망의 마음을 시커먼 밤의 바닥에 깔린 순백으로 비유하고 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벌거벗은 무의식 속의 욕망 그 욕망대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껏 며칠간의 일탈을 즐기자 이렇게 소설 '설국'은 시작된다.            

소설의 실제 배경인 니가타현 치고 유자와 온천 전경

유부남으로 도쿄에 거주하며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무용에 대한 쓰잘데기 없는 글을 쓰며 살아가는 30대 남자인 주인공 시마무라. 그는 일 년 전 우연히 들러 여관에서 일하는 전직 게이샤 고마코와 관계를 맺고 다시금 그녀를 만나러 니가타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우연히 옆 좌석에 동승한 젊은 여자와 병약한 남자 커플이 그의 주위를 끄는 가운데 차창밖에 비친 여자의 모습에 은근히 이끌리던 중 기차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시마무라는 다시 게이샤가 된 고마코를 맞이하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기차 안에서 병약했던 남자가 그녀의 약혼녀였으며 그 남자의 병원비를 위해 게이샤가 된 것을 알게 된다.

그럼 그를 정성스레 간호하던 그 아름다운 여자는? 그 여자의 이름은 요코이며 게이샤 고마코의 약혼자의 새로운 애인이라고 했다.

민음사편으로 152페이지의 비교적 짧은 소설은 위와 같이 다소 복잡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줄거리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된다.

그건 시마무라가 고마코의 삶을 알아가면서 속으로 무수히 내뱉은 말이 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헛수고' 시마무라는 젊은 시절 결혼한 남자와 사별하고 무용선생님의 아들과 약혼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에서 병든 그를 위해 돈을 벌어 병원비를 댈 요양으로 게이샤가 되었다는 고마코에게 속으로 그저 '헛수고' 이 한마디를 던지며 그 자신과 고마코의 다른 일상에 대해서도 연신 '헛수고'를 연발한다.

그럼 또다시 하나의 질문을 추가한다 '설국'이라는 소설에서 이'헛수고'는 어떤 의미일까?

소설을 읽는 내내 유자와 온천 어느 료칸에 와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유자와는 물론이오 일본에조차 간 적이 없음에도,,,,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선 역시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삶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소설의 작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유명한다.

그런 그의 성장기는 우울하기 그지없는데 그의 부모와 조부모 그리고 누이 해서 모두 그가 17살이 되기 전에 죽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가족 모두의 죽음을 대면한 작가는 그 후 지독한 허무주의에 시달렸다.

당연한 결과 아닌가 가족과 함께 인간적 삶의 즐거움을 느끼기도 전에 하나하나 흔적 없이 사라졌으니 그는 오로지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그 이후에 오는 허무감 이 둘만이 그의 무의식에 자리 잡고 평생을 괴롭혔으리라. 살면서 어렵고 힘든 시기가 올 때 죽은 아버지나 어머니 그 외 가족이 좋은 시절을 회상하며 나타나 밝게 웃으며 힘을 내라는 상상만으로도 다시금 일어나 악당을 때려 부수거나 올림픽 금메달 등을 따는 기적을 우리는 무수히 많은 전설과 신화 그리고 근래 만화영화에서까지도 보아 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는 그런 기적을 선물할 시간도 기억도 없이 가족들이 사라져 갔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 시마무라는 힘없는 눈빛으로 세상을 관조하며 인간 삶을 '헛수고' 즉,  여름날 그리도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날아오르고 노래했으나 가을날 죽어 딱딱한 몸을 바람에 이리저리 굴리는 곤충에 비유했다. 하지만 그런 시마무라에게도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자연(自然)의 아름다움이었다.

16세에 모든 가족을 읽은 슬픔에 몸부림쳤을 젊은 날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 '설국'의 기저는 인간 삶의 유한성 바로 '니힐리즘'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마무라(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같은 격으로 이야기하겠다)는 그 아무것도 아닌 삶을 일상이란 이름으로 아내와 자식과 함께 도쿄에서 흘려보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즉 '헛수고'로 치부해 버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어린 시절 가족 모두의 죽음에 대한 충격은 그렇게 허무한 삶을 관조하며 자신과 타인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주위 환경에 대한 섬세한 탐구과정 만이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으리라. 그래서 시마무라는 순간순간 자신의 눈으로 모든 것을 관찰한다.

특히, 니가타현의 가을과 겨울 그리고 그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과거와 현재의 니가타 사람들의 모든 것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탐구하며 그 속에서 인간과 자연이 타협하여 살아가는 모습만이 한없이 경외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별로 중요한 것이 못된다.

한 발 더 나아가 니힐리스트인 시마무라는 죽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쓰지 않는다.

현재 주위에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살아있던 죽었던  일절 하지 않는다.

오로지 지금 내가 느끼고 만져지며 인간적 관계를 맺는 주위 사람에만 집중한다.

소설의 마지막 니가타 유자와 온천마을에 첫눈이 내리고 그날따라 유난히 아름다운 은하수가 하늘을 수놓은 그날 극장으로 쓰이던 창고에 불이 나고 요코가 2층에서 떨어지는 순간에도 요코의 아름다운 몸이 하늘에서 유유히 추락하는 모습을 세상 그 누구보다 아름답게 표현했으며 죽어가는 요코를 안은 고마코의 머리 위를 수놓은 아름다운 은하수의 모습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고 죽어가는 이보단 살아있는 순간의 아름다움만을 담담히 적고 있다.

결국 인간에게 죽음은 그 많은 '헛수고'의 종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며 살아있는 나는 이 순간에도 아름다운 광경만을 눈에 담고 있다.

이것이 어둠 속에서도 그 기저는 하얘 게 밝은 설국이오 우리는 그 신호에 멈추어진 기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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