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가적일상추구 Oct 13. 2020

버림받아도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

우리가 고아였을 때- 가즈오 이시구로

2017년 노벨문학상은 영국의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였다.

확실히 그 전해인 2016년(가수- 밥 딜런)보단 의외성은 덜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 언론이나 도박업체의 예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수상자 선정이었다.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 역시 처음 노벨 문학상 수상을 연락받았을 때 장난인 줄 알았다고 할 정도이니 오늘날 노벨문학상을 예상하는 것은 오히려 수상 예상 작가를 노벨문학상과 더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만을 줄 것 같다.(실제로 매년 예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는 무라카미 하루키, 마리즈 콩테, 응구기 와 시옹오, 밀란 쿤데라 그리고 우리나라의 고은 등 해마다 의외의 인물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미국의 여류시인 루이즈 글릭이 예상을 뒤엎고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아야 거장 소리를 듣는 현실에서 어느 정도의 흥행이 바쳐주는 성과가 있는 감독이라면 아카데미 취향적 영화를 만드는 것은 이제 영화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논란거리가 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얼마나 아카데미 위원들에게 어필을 해서 과연 감독상을 거머쥐을 수 있을 것이냐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 당대의 현실이라고 봤을 때 같은 선상에서 모든 작가들의 최고 영광인 노벨문학상 역시 살아생전 이 상을 받기 위해 노벨문학상 취향이라 일컫는 앙가주망적 작품을 발표하며 꾸준히 작품 활동과 자선활동 등을 병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일본계 영국인)

그런 면에서 볼 때 가즈오 이시구로의 수상은 다소 의외의 면이 있지만 오히려 그 전해의 의외성-사실 2015년 기자 출신의 르포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또한 의외의 수상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을 만회하고자 전통성에 귀의한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의 대표작인 '남아 있는 나날', '우리가 고아였을 때', '나를 보내지 마', '녹턴'등의 작품을 보면 그는 인간문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에서 꾸준히 따뜻한 통찰력을 잃지 않았다는데 전통 작가로서의 품위를 가지고 있다.
장르 또한 다양하여 삶과 사랑의 서사시인 '남아 있는 나날', 미스터리 스릴러인 '우리가 고아였을 때', 복제인간문제를 다루어 다소 SF 적이라 할 수 있는 '나를 보내지 마'등 그는 여러 실험적인 작품을 발표하지만 그 주제는 인간 삶의 다양한 통찰을 통한 따뜻함의 발견이라는 작가정신 그것이 그의 탁월함이라고 했을 때 정통성에 회귀한 스웨덴 한림원이 가즈오 이시구로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두 번의 외도가 이제는 조강지처적인 작가정신으로 무장한 정통 소설가를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소설의 주 배경인 1930년대 상하이

'남아 있는 나날'이 그의 주요 작품으로 소개되지만 왠지 이 애잔한 제목의 소설 '우리가 고아였을 때'에 먼저 손이 갔다.
왜 소설 제목을 과거형으로 썼을까?
사실 고아라는 것은 한 번 고아가 되고 나서 다시 생물학적 부모를 얻는다는 것은 일어나기 힘든 일이므로 이 소설 제목은 과거에는 고아였지만, 지금은 고아가 아니라는 것이 되기에 말 자체에 역설이 있다.(사실 이 대목에 작가의 작품 의도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고아 소년이 성장하여 청년이 되어 가정을 이루게 된다면 가족이 생기므로 일찍이 고아가 되었어도 성장을 토대로 가족을 이룬다면 고아의 자격을 상실한다는 것일까?
소설은 마지막에 그 대답을 준다.
전쟁 포로(약간은 이 표현이 어색할 수는 있지만)에서 풀려나 영국 영사관으로 가던 도중 그를 인솔했던 일본군 대령이 이렇게 말한다.
"일본에 궁녀이면서 시인인 사람이 있었는데, 오래전 어린 시절이 얼마나 슬픈가에 관한 시를 썼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이 우리가 자랐던 이국의 땅과 같은 것이라고 썼지요."
그러자 소설의 주인공인 크리스토퍼 뱅크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글쎄요. 대령님, 제게는 어린 시절이 낯선 이국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많은 점에서 저는 지금까지 어린 시절 속에서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에서야 막 어린 시절을 떠나는 여행을 시작했지요."
이렇게 말하는 주인공의 의도를 파악하면 우리는 과거에 고아였다고 하더라도 성장을 통해 스스로 고아의 자격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그 성장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이 부모의 사랑 안에 존재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인 것이다.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유년시절 갑작스러운 부모의 실종에 자신을 고아로 여겼지만 그 과정에서 편안한 성장이 어머니의 모진 희생이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자신이 고아가 아니었으며 그 따뜻한 모정(母情) 속에서 성장한 유년시절을 고아가 아닌 상황으로 재인식하며 소설은 인간의 삶이 해결하기 힘든 거시적 문제(이데올로기, 정치 운동, 사회운동, 전쟁, 경제적 부 창출, 부의 분배, 사회정의 등)를 누군가의 멋진 희생이나 노력을 통해 한 번에 해결하는 것이 아닌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사랑 안에서 따뜻해질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유년시절의 일들로 삶을 송두리째 불행에 바쳐지는 일을 각각의 개별적 사랑을 통해 보호받으며 성인이 되었을 때 그 사랑을 다시금 전달하며 사랑의 대물림을 통해 인간적이 삶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역사적 또는 사회적 사명을 가지고 사회운동이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인간 사회의 기여를 하고자 하나하나같이 실패한다.
그들은 모두 실패를 통해 본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 구성원까지 불행해졌다며 심한 자기혐오에 시달리지만 작가는 소설의 막바지에 치달으며 그것보단 개별적 사랑의 실천을 통한 보호받는 약자와 그 약자의 성장으로 또 다른 사랑의 실천이 우리가 고아로 무참히 세상에 내 던졌다 한들 그런 현실을 극복하는 길이라 이야기한다.


제목부터 미스터리한 '우리가 고아였을 때' 이 소설은 상하이에 살던 영국인 10살 소년이 부모의 사랑 속에서 행복해하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부모로 인해 고아가 되어 성장한다.
그 소년은 영국으로 보내져 부유한 이모 곁에서 성장하며 명문대를 졸업하고 성공한 탐정이 되어 넉넉한 유산상속으로 안락한 생활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생의 과업으로 여기던 상하이에서의 부모의 실종사건을 직접 수사하게 되고 유년시절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흥미로운 과정 속에서 결국엔 답은 휴머니즘이라는 따뜻한 결론에 도달하는 마음씨 고운 소설 '우리가 고아였을 때'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역사 앞에 짓밝힌 여자들의 삶을 생생히 들여다 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