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뉴스나 신문 등 언론을 보면 가슴 따뜻한 이야기보다는 빈부격차 심화나 집값 상승 같은 경제문제, 정치인들이나 정당 간의 반목이나 대립, 폭력. 사기 등의 온갖 범죄, 기타 개인적 문제들의 비극적 결말 등 한숨짓게 만드는 뉴스들이 우리들의 눈과 귀 어지럽히고 마음까지 마음까지 아프게 합니다.
이런 뉴스들에 실망하고 삶이 얼마나 더 팍팍해 질지 염려하다 결국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힘들고 어지러운데 그 어항 안의 물고기처럼 살아가는 우리 개개인의 삶 또한 지금보다 나아질 일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그래도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야 하기에 위로가 될 만한 따뜻한 무엇인가를 찾아 나섭니다.
온갖 따뜻한 위로의 말로 뒤덮혀 있지만 정작 작가가 어떠한 인격의 사람인지도 모르는 책들, 눈물 글썽이며 보다 아직도 세상은 살만하다고 생각하며 마음 따뜻해 하지만 온통 픽션뿐인 영화나 드라마, 신문이나 잡지 언저리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 버팀목이 되며 살아기는 우리이웃들의 애틋한 사연 등으로 위안을 받으며 살아갈 용기를 얻곤 합니다.
아니라고 해도 어느새 우리는 서점에서 노란색이나 보라색 등의 따뜻한 감정이 이는 표지의 책을 선택하고 실화라고 하지만 얼마 큼의 픽션이 가미되었는지도 모른 영화를 보러 가고 있습니다.
무슨 근거로 확신하냐고요? 저 역시 그러하고 주위의 많은 지인들이 그것에 목을 맬 정도로 좋아하고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불현듯 나의 머릿속에 다음과 같은 생각이 일렁입니다.
현재 나의 삶의 범위는 아주 좁고 한정적인데 왜 그렇게 인식의 범위를 넓혀 실망하고 그 급부로 큰 감동이나 위로로 채우려 하지?
좁디 좁은 나의 주위를 나 스스로 따뜻하게 덮일 수는 없는가?
정작 나 자신은 내 주위에 아무런 온기조차 주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누군가의 마음 따뜻한 배려나 위로만을 기다리다 지쳐 사회가 차갑기 때문에 이렇게 모두가 힘들다며 그 탓을 외부로 돌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 따뜻한 삶이란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한 건데 왜 나는 스스로 발열하지 못하고 그렇게 남 탓만 했을까? 아주 조그만 양보만으로도 나는 스스로 온기를 내뿜는 위로 그 자체가 될 수 있는데도 조금도 손해 보기 싫은 이기심으로 살면서 누군가의 마음 따뜻한 위로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따뜻함을 만들지 못할 바엔 일말의 위로조차 기대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양심임에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주 미약하지만 스스로 온기를 품은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는 나를 위해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조금씩 조심씩 손해 보며 자리를 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 보고자 하여야겠다.
남 탓하며 아쉬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스스로 뜨거운 무언가가 되기 위해 한 발짝 더 움직이고 한 발 더 물러서 보도록 해보자 더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