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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Oct 31. 2020

무지렁이 그리스인 조르바가 맞다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누군가 나에게 자유로운 인생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답하겠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그처럼 살면 된다고!!'

그리스의 지성이라 말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원제는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모험'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번역 제목보단 원제가 훨씬 더 좋다.

삶은 모험인 거다. 삶이 모험이 아니라고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의료보험 공단에서 앞으로 맞아야 할 예방접종 시기와 종류를 안내한 우편물을 받았다.

만약 인생이 그처럼 몇 살엔 무엇을 맞고, 몇 살엔 또 무엇을 하며 정해진 순서대로 남들처럼 산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미 다 정해진 대로 남들 하는 대로 따라 살다 보면 적어도 한 평생 남들 하는 거 다 해봤으니 손해는 보지 않았겠지 하는 안도감 정도는 느끼게 될까?

하지만 우리들 중 누구도 그와 같은 안도감을 위해 남들 하는 대로 살고자 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삶은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는 신나는 모험의 세계인 것이다.

그 신비한 모험과도 같은 삶을 어떻게 자유의지를 가지고 살 것 인지에 대한 답이 나와 있는 책이 바로 이 책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19세기와 20세기 중반까지 유럽은 그야말로 격변의 시대였다.

프랑스혁명부터 시작해서 세계 2차 대전까지 유럽이 조용했던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특히 그리스는 15세기 이후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지배에서 1830년에 독립을 달성하고 1897년과 1919년 2번에 걸쳐 그리스-투르크 전쟁을 치렀다. 전쟁은 두 번 모두 투르크의 승리로 끝났으나 1.2차 대전 시 오스만 제국은 철저히 분해되고 지중해의 많은 섬들이 그리스의 영토로 편입이 되는데 1883년 생인 카잔차키스의 삶이 그 격동의 시대에 걸쳐 있었다.

실제 카잔차키스의 고향이 크레타 섬인데 그가 태어날 땐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으며, 1차 전쟁 때 터키인들의 박해를 피해 피난을 가야 했으며, 1912년 발칸전쟁 때 육군의 자원입대하여 참전하였고 그 전쟁에서 그리스의 승리로 고향 크레타는 독립을 쟁취하여 그리스에 편입되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작가의 그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1946년에 출간한 책이며, 1957년 노벨문학상에서는 단 1표 차이로 알베르 카뮈에게 노벨상을 놓쳤지만 그 영향력만큼은 알베르 카뮈 못지않은 사람이 그리스의 지성 니코스 카잔차키스이다.

1964년 영화로도 제작되어 아카데미 3개 부문을 석권하게도 했다. 조르바 역할을 맡은 앤서니 퀸 영화 장면을 보아하니 광산 사업에 실패하고 같이 춤을 추는 장면 같다.

소설은 1930년대 항구도시 피레에프스의 한 카페에서 유산으로 상속받은 갈탄 광산을 개발하고자 크레타섬으로 가는 젊은 지식인인 화자 '나'가 60대 광산 노동자 출신 '알렉시스 조르바'를 만나 그를 광산 재발 현장 감독으로 고용하고 크레타섬에서 겪는 이야기를 통해 화자 '나'가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과정을 담고 있다. 소설 속 화자는 지식인인 '나'이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전형적인 그리스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무지렁이 '알렉시스 조르바'가 되시겠다.

소설은 카잔차키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씌었는데, 1917년 그는 친구인 '알렉시스 조르바'와 고향 크레타섬에서 광산 개발 사업을 했다. 비록 사업은 실패하고 말았지만 우리에게는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위대한 소설을 선물해 준 시기이다. 또한 카잔차키스는 친구 조르바에 대해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준 인물로 스스로 평가했다고 한다.


이제 배경 설명을 끝냈으니 본격적으로 이 소설'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말하고자 하였던 것을 늘어놔 보겠다.

일단 소설 등장인물의 성격적 차이가 분명하다. 젊은 지식인 '나'와 나이 들고 가난한 노동자'조르바'라는 확실히 다른 두 유형의 사람이 이야기를 이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젊은 지식인이 나이 든 노동자에게 하나하나 현대적 사유의 세계로 인도하는 교도적인 내용으로 전개될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소설은 반대의 경우이다.

특히,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은 소설은 단 한 명의 지식인이 마을 전체, 나아가 좀 더 나은 나라 또는 인간사회를 만들고자 종교, 정치체제, 철학 등을 설파하며 눈물겨운 노력을 하지만, 이 소설은 그 반대로 젊은 지식인 '나'가 삶의 현자(賢者) 격인 자유로운 그리스인  '조르바'에게 하나씩 하나씩 배우고 깨쳐 나간다.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삶에 대한 정신이 무엇인지를 나이 들고 가난한 노동자 '조르바'에게서 젊은 지식인이 하사를 받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우리를 옭아매는 많은 기존 권위에 대해 나온다.

발칸전쟁에서 고통받는 그리스인 동포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지식인의 윤리적 의무감, 인간 욕망의 변태적 집합체가 되었지만 하나님을 모시는 수도원의 권위, 과부의 사랑은 돌 맞아 죽어야 하는 사회적 관습 등 이성이라 일컫는 것들이 얼마나 타락하고 비겁한지를 카잔차키스는 낱낱이 고발한다.

그리고 그 기존의 이성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배운 이 젊은 지식인 또한 그 틈에서 고통받고 있지만 그것이 배운 진리기에 여과 없이 부조리한 것들을 받아들이며 살았지만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그런 기존 관념에 묶인 삶보다는 개인의 실존적 존재를 먼저 인식하고 행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와 인간애가 무엇인지 말이다.

아름다운 지중해의 섬

그리스인 조르바가 말하는 삶과 모험은 무엇인가?

두 마디로 요약하면 "carpe diem"과 "慈悲"이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카르페 디엠 즉, 현재를 즐기는 삶과 자비- 이웃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이다.

조르바는 소설 내내 일관성 있다.

젊은 시절 전쟁에 참전해 수많은 터키인을 죽이고 결혼도 해보곤 했지만, 사람 삶 부질없으며 안갯속에서 사이렌의 노래에 취해 어떻게 난파할지 모르는 삶 그 삶을 종교, 정치, 전쟁, 관습, 제도 따위에 얽매여 산다는 것은 아무 의미 없다고 한다.

가지려 하면 더 달아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라면 그 모든 것은 내려놓고 현재를 즐기라고 말한다.

아침이 밝고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것 자체가 신비로워 춤과 노래가 절로 나온다고 조르바는 말한다.

그리고 카잔차키스는 조르바의 입을 빌려 위대한 인간상에 대한 위대한 텍스트를 남긴다.

조르바를 좋아하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있었는데 할머니는 조르바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매일 몸치장을 하고 조르바 앞에 나타났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조르바는 화를 내며 할망구가 노망이 들었다고 노발대발한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할머니는 충격에 휩싸여 며칠을 앓다가 죽게 된다. 그때 조르바는 충격을 받고 깨닫게 된다. 진정한 박애정신에 대해서 말이다.

모든 상황을 떠나서 자신으로 인해 사람이 살아가 이유가 된다면 받아들여주어야 한다고, 그 이후 조르바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마음을 연다. 여자도 이쁘고 젊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으로 인해 살아갈 이유와 용기가 생기다면 그 누구든 다 받아들인다.

그리고 말한다. 자신은 하나님이고 천국이고 잘 모르지만 같은 사람이 자신을 필요할 때 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하나님이 있다면 저 수도원에 갇혀 기도하는 자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자기를 더 좋아하고 천국으로 부를 것이라는 말을 남긴다.

카잔차키스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란 하고자 하는 것을 진정으로 즐기며 현실에 충실하되 사람에 대한 사랑 즉,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법, 종교, 정치, 이념, 제도를 떠나 내가 행하고 싶은 그 무엇을 해도 남에게 악(惡)을 행하는 사람은 되지 않을 것이니 그 얼마나 위대한 자유인가?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살 수는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갈망하며 스스로를 구속하지 말고 작은 것에 행복하고 만족할 줄 알며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누구나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카잔차키스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묘비명이 무엇이던가를 마지막으로 생각해 보겠다.

"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자유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 둘은 광산 사업은 망하지만 음식과 술을 먹으며 춤을 춘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두려움도 없고 지금이 행복하고 즐거우니 그들은 자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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