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영국 출신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이 소설을 들으면 자동반사적으로 조지 오웰의 '1984'와 함께 디스토피아 소설의 대표작으로 떠오른다.
그만큼 미래사회에 대한 부정적 묘사가 많지만 사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서를 읽는 느낌을 받을 만큼 인간과 인간 사회에 대한 예리한 분석에 감탄을 자아냈다.
먼저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헨리 포드가 T형 자동차를 대량생산한 1908년을 기점으로 포드 632년이다.
이것을 우리가 현재 쓰는 서기로 환산하면 2540년이 된다.
이 책이 처음 발간된 것이 1932년 임을 감안하면 생각보단 과학발전이 더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간생활이 그다지 획기적이지는 않다. 그런 점을 유추해본다면 당시 지성인의 상징이었던 올더스 헉슬리의 예상보다 과학발전이 더 빠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미래 인간 사회는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여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모토로 하고 있다. 우선 결혼이라는 제도 없이 무성생식으로 공장에서 아기를 생산(?) 한다. 태아 시절부터 각각의 계급별로 약물 조절로 그 계급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태어나기 위한 약물 조절을 받고 태어나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계급에 만족할 수 있는 교육을 아니 세뇌를 받게 된다.
인간의 계급은 알파-베타-감마(표준형)-델타-앱실론으로 구분되며 알파 계급의 경우 감마 이하의 계급을 혐오하게 된다. 하지만 각 계급에 어울리는 세뇌를 받은지라 그것에 대한 불만은 없으며 그저 매일 배급되는 마약과도 같은 소마의 환각작용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제도가 없는 대신 자유연애를 할 수 있어 더 많은 이성과의 성관계를 위해 자신을 어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노화가 없이 살다가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자연스레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에 대한 세뇌를 받았기에 죽음이 두렵거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불안은 없으며 죽은 자는 소각되어 비료로 활용된다.
이상이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묘사한 미래 인간 사회의 모습이다.
이 사회는 인간의 욕망의 기초인 성욕을 결혼이 없는 자유연애로 대체하여 욕망을 관리하고 더 나은 것에 대한 욕망 또한 소마로 인하여 몽롱한 환각상태만을 원하며 모든 감정을 통제받는다.
개개인의 갈등이 없는 사회는 안정 속에 물 흐르듯 흘러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렇게 욕망이 통제되는 사회에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연구하며 인간 사회를 더욱더 안정(?) 되게 하기 위한 관리. 연구직 엘리트 계급이 있어야 하기에 세뇌교육이 덜된 알파 계급이 존재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이런 계급에서 이 문명국 사회에 대한 의문과 그로 인한 회의가 생기게 된다.
그런 두 사람이 이 소설의 주요인물인데 바로 인공부화국에 근무하는 버나드 마르크스와 그의 친구이자 감정공과대학의 강사인 헬름홀츠 윗슨이다.
버나드 마르크스의 경우는 알파 계급인데도 불구하고 태아 시절 알코올이 과다하게 주입되어 감마보다 못한 외모의 소유자로 그로 인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으며, 당대 최고의 엄친아인 헬름홀츠 윗슨은 너무나 뛰어난 두되를 소유하여 사색을 통해 문명국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는 인물로 모두 문명국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소외를 선택한 인물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버나드 마르크스가 레니나라는 아름다운 감마 여성과 함께 휴가로 멕시코 야만인 보호구역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20년 전 실종되었던 문명국 여성 린다와 그의 아들 존을 만나 그들을 다시금 문명국으로 데려오면서 이야기는 결말로 치닫게 된다.
이상이 책의 대체적인 플롯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서두에 말한 대로 왜 이 책을 소설이 아닌 철학서로 느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소회를 적고 마치도록 하겠다. 우선 '멋진 신세계'가 어떤 시대적 배경하에 탄생하게 되었는가를 알아야겠다.
올더스 헉슬리는 영국의 명문 집안 출신이라고 한다. 친가와 외가 모두 생물과 문학에 대한 저명한 학자들이 있는 집안으로 그 역시 이튼 스쿨을 졸업한 수재로 의사가 되려 했으나 각막염으로 인해 일시적인 실명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후 기적적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회복하여 안경을 쓰고 겨우 책을 읽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당연히 의사의 꿈을 접고 옥스퍼드에 진학 영문 학도의 길을 걷게 되는데 당대 최고의 문인들과 교류하며 최고의 지성인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태어난 해가 1894년이오 죽은 해는 1963년으로 그가 목도한 세상은 독점 자본주의가 극에 달하여 1.2차 대전을 벌이면서 과학은 인간의 욕망의 수단이 되어 마침내 원자폭탄까지 전장에 투입되는 암울한 시대를 살았다. 그 후에도 미국과 소력의 냉전 상황이 극에 치달으면서 핵무기 위협이 크게 부각되던 시기에 하필 미국으로 이주하여 말년을 보냈다.
한마디로 인간 욕망의 끝에서 파괴되는 인간 사회를 낱낱이 목도한 것이 그의 인생이었다.
그런 그가 '멋진 신세계'를 집필하게 된 이유는 과학의 발달로 인한 인간 특유의 감성을 잃은 채 살아가는 시대의 도래에 대한 경고였을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멕시코 야만인 보호구역 안에서 문명국의 알파와 감마 간의 유성생식으로 태어난 존은 당시 우리 인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존 조차 그가 속한 원시사회의 신(神)과 사회제도에 대하여 어머니 린다에게 들은 문명국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했던 문명국으로의 귀환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이성이 통제된 사회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느끼며 자유를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포기하는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된다. 결국 인간의 욕망으로 점점 타락해 가는 인간 사회를 보면서 좀 더 도덕적으로 나은 사회에 대한 올더스 헉슬리의 해답은 종교와 인류애를 통한 따뜻한 사회였을 것이다.
그 경고와 답이 들어 있는 것이 '멋진 신세계'이다.
마지막으로 소설 속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인 소비를 미덕(美德)으로 삼는 세뇌교육 장면이 나오는데 사실 자본주의 사회의 근간은 소비임에도 자본가의 욕망으로 인해 분배의 미덕은 사라지고 지속적으로 경제공황적 문제가 지금까지도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인간 본성에 대한 선(善)보다는 악(惡)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올더스 헉슬리가 경고한 욕망을 통제하는 미래보다는 현재는 욕망을 부추기며 자본주의사회를 유지하는 모습에 무엇이 나은가에 대한 해답도 딱히 없다는 사실을 통감하게 되었다.
그로 인한 씁쓸함만 더 했던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