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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Nov 27. 2020

전체주의를 경계하라

1984- 조지 오웰

조지 오웰의 1949년작 '1984'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의 느낌은 그저 따분한 디스토피아 소설 한 권 어렵게 읽겠구나 였지만 책장이 한 장 한 장 넘어가 쌓임과 동시에 충격도 쌓이고 결말 부분에서는 머리를 한대 크게 맞은 것 같은 얼떨떨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만큼 전체주의가 인간 개개인의 자유를 어떻게 억압하는지에 대하여 낱낱이 파헤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작가 조지 오웰이 살다간 시대가 그에게 그런 엄청난 사색을 할 기회(?)를 주었으며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전체주의가 우리 인류를 어떻게 옭아맬 수 있는지를 경고하고 있다.            

먼저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작가 조지 오웰이 어떤 시대에 어떤 삶을 살다 갔느냐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조지 오웰은 1903년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벵갈의 영국인 하급 공무원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1년 후 바로 영국으로 귀국한 그는 명문 이튼 칼리지를 졸업하고 미얀마(당시 버마)에 하급 경찰로 1921년부터 1927년까지 근무하는 다소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로 그런 자신을 의아하게 보는 시선조차도 매우 껄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제국의 식민지 경찰로 근무하며 제국주의의 모순과 폐해를 직접 목격하고 경찰직을 내려놓고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 후 파리 빈민가와 런던 부랑자들의 극빈 생활을 직접 체험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런 경험으로 첫 작품 '파리와 런던의 바닥 생활'을 1933년 발표하면서 본명인 에릭 아서 블레어 대신 필명인 조지 오웰을 사용했다고 한다. 식민지 백인 관리의 잔혹성을 묘사한 '버마의 나날'과 가난한 노동자의 삶을 그린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쌓아 가던 중 1936년 12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스페인 통일노동자당 민병대 소속으로 직접 참전을 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하게 여길 것은 조지 오웰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제국주의에도 염증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의 체제인 나치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 같은 전체주의에는 더 많은 회의감을 느끼고 노동당으로 참전하나 당시 좌익세력의 최고 정점에 있던 소련의 공산당의 횡포와 그로 인한 좌익 간의 세력 다툼에 희생되어 간신히 목숨만을 구한 체 영국으로 탈출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가 불후의 명작으로 남긴 '동물농장'과 '1984'의 밑거름이 되는 경험이 된다.

이렇게 보면 그는 독점 자본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하고 후발 자본주의 국가가 그런 독점자본주의 국가를 따라잡기 위한 전체주의 그리고 그런 자본주의 반기를 들었던 소련이 스탈린 이후 다시금 전체주의화되어 가는 과정을 그저 목격만 한 것이 아니라 몸소 체험하며 죽을 고비를 넘기며 경험하였기에 전체주의가 인간성을 어떻게 멸하며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는지에 대한 생생한 증언과 경고를 할 수 있었다.

이제 소설 '1984'로 돌아와서 이 소설은 그가 폐결핵으로 투병하던 시기 모든 것을 쥐어 짜내듯이 쓰고 불과 몇 달 후 세상을 등지게 되는데 그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마지막 유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소설 '1984'보다 그저 '빅브라더'라는 단어에 더 익숙하다. 여기저기 CCTV와 몰래카메라 그리고 전화 통화 녹음이 판치는 세상 왠지 모르게 감시 당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빅브라더'를 운운하며 씁쓸해 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1984'에 나오는 텔레스크린으로 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과학적 또는 사회기반 시설적으로 그러한 기초는 이미 오래전에 구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코로나19 때도 감염자의 동선을 신용카드 사용내역이라든지 휴대폰 이용 지역 추적 등으로 주도면밀하게 조사 후 접촉자들을 선별하여 방역에 효과를 본 것만 봐도 개개인의 삶을 면밀히 파악하는 것은 이제 소설 속 미래사회에 대한 상상이 아니라 현실로써 일도 아닌 것이 되었다.

조지 오웰이 이 소설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공산혁명 후 스탈린이 소련을 전체주의로 왜곡시킨 것에 대한 배신감에 집필했다고 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큰 오점이었던 독점자본주의 제국주의와 후발국들의 전체주의에 실망한 조지 오웰은 사회주의 운동이 왜곡되어가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믿었기에 스페인 내전에 직접 총을 잡고 참전하였다. 그러나 그 좌익세력 안에서의 기득권 싸움에 희생되고 소련마저 스탈린주의라는 또 하나의 괴물과도 같은 전체주의화 되어가는 모습에 조지 오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치의 게슈타포, 소련의 게페우 등 정치 비밀경찰이 반체제 인사들에게 가혹한 고문과 구금 그리고 강제 이념 교화를 보면서 국민이나 무산계급의 삶의 질 향상보다는 그저 기득권의 권력 유지에만 혈안이 된 기형적 정치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검은 머리의 부릅뜬 눈으로 텔레스크린에서 눈동자를 옮겨가며 개인을 감시한 빅브라더의 형상화한 모습

소설 '1984'의 주인공은 윈스턴 스미스이다. 그가 태어난 해가 1944년인지 45년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가 살고 있는 1984년에 그가 서른아홉인 것만은 확실하다고 자신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가 곧 경험하게 되는 '증발'이 되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 체 어느 날 혼자가 되어 전쟁고아들과 함께 고아원에서 자란다. 그는 오세아니아라는 나라의 당원으로 당시 지구상에는 초국가 3개가 존재하는데 아메리카 대륙과 영국, 아프리카 남부 그리고 지금의 호주를 영토를  국토로 삼는다. 다른 두 개의 국가는 소련이 점령한 유럽 지역 전체와 중동지역을 근거로 한 유라시아 그리고 중국과 동남아시아, 일본과 만주 몽골(우리나라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아마도 이 나라에 속해있을 것이다) 지역을 영토로 삼는 이스트아시아 해서 세 개의 초국가만이 존재한다. 이들 나라는 모두 전체주의국가로 국가의 영속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인간다운 삶은 철저히 유린된 국가들이다. 오세아니아의 국가 슬로건은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특정 소수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민 대다수인 프롤이라 불리는 무산계급 (98%)을 다스리기 위한 당원(약 2%로 600만 명으로 추산)들의 정신무장 슬로건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무산계급은 교육을 하지 않고 그저 생산활동에만 투입되는 기계적 인간으로 사유를 할 수 없기에 신체적 욕망 충족을 위한 개인적 자유는 방임으로 방치하지만 그 프롤 계급의 사유를 관리하는 당원들은 인간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바탕으로 선전, 교육, 역사 등을 관리하기에 그러한 당원들은 텔레스크린이 24시간 감시하는 체제를 유지한다. 이런 당원들은 섹스 같은 개인적 욕망도 불결한 것으로 금지하는데 같은 디스토피아적 소설인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자유 섹스로 인간의 욕망을 사회가 모두 충족시켜주어 불만이 없는 사회를 모토로 안정(?)을 유지하지만 조지 오웰의 '1984' 속 사회는 철저한 욕망의 금지로 사회를 관리한다. 작금의 현실은 욕망을 부추김으로써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두 작가가 그린 극단적인 암울한 미래는 도래하지 않았으나 그 작품이 주는 교훈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의 조작이 주 일거리인 당(黨)의 진리부에 근무하는 윈스턴은 오세아니아 국가의 위선과 개인의 자유 박탈에 대하여 회의 느끼며 같은 당원인 줄리아와 일탈하며 모종의 저항을 한다.

반체제 인사인 골드스타인과 그들의 단체인 '형제단'에 가입하여 빅브라더가 통치하는 오세아니아 전체주의국가에 대항하여 혁명을 꿈꾼다. 그러던 중 오브라이언이라는 형제단 소속의 인물을 만나 골드스타인이 저술한 반체제 책인 '그 책'을 입수하여 줄리아와 읽던 중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애정국으로 끌려가게 된다.

오브라이언은 형제단이 아닌 비밀경찰로 윈스턴에게 혹독한 고문을 하는데 점점 가혹해지는 고문에 있는 것 없는 것 다 불고 육체는 죽을지언정 정신은 결코 그들이 개조할 수 없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만 비밀경찰이 원하는 것은 철저한 교화 후 총살이었다.

결국 원스턴에 그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교화가 되어 빅브라더를 누구보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고 그런 상태에서 조용히 총살된다.

이 책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윈스턴이 입수한 '그 책'의 계급 투쟁론이나 사회조정에 대한 내용이 아니었다.

원스턴에 대한 고문과 그로 인해 변해가는 그의 정신이 충격적이었다.

교화되지 않은 채 배교자로 죽고자 했던 윈스턴 그러나 가혹한 고문은 교화될 수밖에 없어 텔레스크린에 나오는 가상의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 그 과정이 너무나 설득력 있고 섬득했기에 충격적이었다.

지금의 우리 사회로 돌아와보면 극단적인 전체주의는 아니나 완벽한 자유민주주의 사회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빅브라더'가 사회를 통치하는 수단으로 이용한 텔레스크린의 기술적, 사회기반적 여건이 잘 갖추어진 현실(?)을 감안할 때 인간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 전반에 걸친 각성이 필요하다는 다소 거창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아픈 몸으로 암울한 미래에 대한 경고를 힘겹게 남겨준 조지 오웰의 숭고한 정신에 경외감을 느끼며 인간의 자유의지가 국가권력에 의하여 좌지우지되는 비극이 없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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