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의 하루 Jan 29. 2023

01_나도 너 같은 딸인 줄 알았으면 안 낳았어

그리고, 단전에서 나오는 한숨



아빠는 두 번째 자식이 ‘나’였으면 낳지 않았다는 말을 곧잘 했다. 보통 싸움의 마무리 멘트였는데. 그 이후엔 꼭 오장육부를 끄집어내듯 깊은 곳에서 나오는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내 방을 나가며, 나지막이 하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그 세트를 두어 번 더 하고 나면 그날의 다툼은 끝이 났다.


저딴 게 나왔네. xx 년,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나가서 니 맘대로 살아.


직접 대면하며 벌이는 몸과 말싸움 이후에 내뱉는 발언들은 그 종류가 퍽 많았지만 무엇보다 내 뇌리에 깊게 박힌 멘트는 이것이었다.


나도 너 같은 딸인 줄 알았으면 안 낳았어


100분 토론에서 마무리 발언하듯. 이미 할 말은 다 했지만 분이 채 풀리지 않은 찝찝한 마음에 상대측에게 추가 발언을 던졌으리라. 숙고 끝에 입 밖으로 나온 문장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혹은 본인 마음을 대변하는 데 효과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멘트는 이후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갖추게 되었다. 아무래도 같은 말을 여러 번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의 임팩트를 주기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우려와는 다르게, 크고 작은 발언들은 나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마치 RPG 게임 속 독 대미지 처럼 느리지만 확실하게 나를 잠식해 나갔다. 내가 방어하고 반격하는 동안 보이지 않는 상처들로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발언들을 들어오며 삶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문장 자체에 상처를 받거나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되뇌기도 했지만, 점차 문장을 곱씹으며 다양한 상상을 펼치는 날들이 많아졌다.


본인이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가 배에 품고 있는 지금의 둘째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과거로 회귀하는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내’가 나올 것을 예측한 그가 엄마의 배를 발로 차서 억지로 유산시키거나, 어떤 딸이 나올지 상세히 설명하며 소파 유산을 격려해야 했을까.


때로는 장난인 양 본인 흠결인 나를 비아냥대는 그는 몰랐다. 가족의 인연이 이렇게 쉽게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사실 오랜 기간 천천히 쌓아 올리고 있던 나와 아빠 사이의 두터운 벽이 이제야 완성되었다는 것을. 나는 아빠를 용서하고 실망하기를 끊임없이 반복해 왔다. 그 기약 없는 반복의 날을 끊어내기 위해 20대 중반에 아빠와의 인연을 끊었고, 나는 지금 20대 후반이 되었다.


아빠와 연락을 끊은 지 약 4년 차가 된 지금. 탄생의 선택권이 없던 ‘나’와 원하는 딸을 얻을 선택권이 없는 ‘아빠'와의 이야기를 온전히 딸의 시각에서 담아보려 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이 흘렀지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분노와 이 분노의 정당성에 대해 스스로 의심하고 검열하는 것을 멈추기 위해 과거와 직접 마주하며 내 속마음에 솔직해지는 시간을 가지려는 것이다. 20여 년간의 시간을 모두 담을 수는 없겠지만, 그토록 못마땅했던 딸은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현재를 살고 있는지. 이 글을 보는 분들과 공유해 보고자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