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존버 장인이 되어야 한다.
요즘에는 참 빠르다.
부자가 되는 것도 빠르고 영어를 배우는 시기도 빠르고, 꿈을 결정해야 하는 나이도 빠르다.
엄마의 흰색 폴더폰을 신기해했던 게 불과 20여 년 전이고 인터넷도 안 되는 그저 터치폰이었던 "프라다"라는 스마트폰의 조상이 등장한지 10여 년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우리는 스마트폰 보급률 95%에 다다르는 세계 1위 국가에 살고 있다.
처음 페이스북을 접했을 때는 한국인이 거의 없었다. 흥미롭지 못해 가입만 하고 잊고 있었는데 어느새 페이스북은 싸이월드를 능가하는 SNS 플랫폼이 되었고, 유튜브 없는 일상은 이제 상상하기로 힘들게 됐다. 흘러넘치는 영상들 속에서 우리는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많이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과 나를 비교하고 현재의 내 모습에 좌절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대출을 받고 빚더미에 오르면서까지 부를 위해 영혼을 몰빵 하는 영끌족들이 생겨났다.
일할 때는 또 어떤가. 얼마 전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소위 MZ세대인 요즘 신입사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중간급 관리자들이 하나 둘 되어가는 밀레니얼인 우리들의 눈에 보기에도 Z세대는 말 그대로 엉망징창이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수많은 영상 속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현실을 열심히 살지 않고, 각자 자기의 소신(?)대로 객기를 부린다. 회사의 룰을 지키지 않고 조금만 기분 나빠도 그만두기 십상이다는 거다. 이런 신입들을 관리하느라 골머리를 섞었다는 게 친구들의 경험담이었다.
와 정말로 그러는구나.
SNS상의 풍문으로만 들었지 정말로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에 깜짝 놀랐다. 물론 우리 윗 세대들도 우리를 보고 깜짝 놀랐겠지. 그 마음이 우리의 지금 마음이었을까 생각도 해본다.
이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로 오늘만 사는 요즘 세대들의 현명하지 못함이 안타까웠다. 이 친구들은 지금 당장, 눈앞에 나에게 놓인 것들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자다 일어나면 사지도 않은 로또라도 당첨될 것처럼 여느 성공한 유튜버들처럼 자신도 돈 방석 위에 올라가 여행이나 실컷 하며 살 거라는 이룰 수 없는 망상에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는 "시간"에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일이든 삶이든 경험이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안고 버텨내면 그게 뭐든 단단하게 쌓이기 마련이다. 그것들은 벼락으로 찾아온 이벤트와는 다르다. 복권에 당첨되려면 복권을 사야 하는 것처럼 한 주, 두 주 우리는 실력을 차곡차곡 쌓아가야 한다.
위에 나왔던 신입사원들처럼 젊은 시절을 살아간다면, 그들은 10년 후에도 그 자리 그 상태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밑에서 또 불평불만하고 못난 자신의 모습에 여전히 좌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시간을 쌓아온 사람들과의 실력과 빈부의 격차는 좁힐 수 없을만큼 벌어져 있을거다. 10년이란 인고의 시간을 버티고 버텨야만 대박이 터진다.
디자이너들끼리는 장난 삼아 "잡부팀", "노가다하러 갑니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회사를 다니거나 일을 하다 보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하찮은 일들을 많이 하게 된다. 작업은 또 어떤가. 처음부터 몇백 몇천만 원짜리 일을 하는 디자이너가 어디 있겠는가. 사자 털 하나하나를 누끼 따야 할 때도 있고, 매일 똑같은 판 위에 수백장의 이미지만 바꿔야 할 때도 있고, 시안 수정만 50번을 넘게 하다가 결국 첫 번째 시안으로 프로젝트를 마감하는 일도 많다. 그 수정의 과정에서 피드백 알람이 울리면 수명이 10년은 줄어든 것처럼 가슴이 철렁한다. 연예인처럼 디자이너도 자신의 작업물을 늘 평가받고 혹독한 피드백을 견뎌내야만 한다. 디자이너는 늘 악플을 보며 작업을 이어간다.
영혼이 탈탈 털리는 것 같은 이런 시간들은 필연적이다. 이 시간들을 지나가야만 비로소 10년 후, 인내의 결과물을 보게 된다. 그게 안정적인 직장이나, 어디 가도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실력, 탄탄한 커리어가 될 수도 있다.
이 시기를 잘 버텨내자. 불안하고 의문투성인 이 시간들을 잘 갈무리하다 보면 언젠가 내 삶이라는 건물에 건물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