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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나나 Jul 16. 2022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어때요?

사람들은 나에게 종종 질문한다.



내가 디자이너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 건 16살, 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 때다.


요즘 중2들은 스스로도 중 2병이라는 진단을 내릴 만큼 막(?)사는 나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중2들은 나름 순수했다. 엄마에게 동아리 활동이 있다며 데이트를 하고 들어가는 게 보통 아이들의 가장 큰 일탈이었던 것 같다.


그 무렵 나는 내 진로가 굉장히 걱정됐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잡코리아나 사람인 같은 사이트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진로적성검사를 수도 없이 많이 해봤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뽀시래기 중학생은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무엇인지, 세상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적성검사를 할 때마다 나왔던 직업에는 PD가 있었다. 나에게는 꽤나 마음에 드는 제안이었다. 방송에서 나오는 화려한 비주얼들이 나와 어울린다는 건가? 역시, 나는 될 놈인가?(음?) 다른 여러 직업들이 있었지만 가장 적합하다고, 그리고 많이 나온 PD를 내 꿈으로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내 결정은 채 1년도 가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교과서에 그림 그리는 사람 누구야? 하면 가슴을 철렁거리면 얼른 교과서를 덮었던 학생이 바로 나였다. 가방에는 두꺼운 무선 연습장이 항상 담겨 있었고 쉬는 시간이나 수업시간(?)에 그리고 종종 집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게 내 유일한 재미였다. 그러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것도 적성검사에서 봤던 것 같다. 디자이너는 뭐지? 하고 찾아보다가 건축물을 디자인할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다.

그때부터 나는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고3보다는 아니지만 나름 중요했던 중3인 가을쯤, 이제는 어느 고등학교를 가야 하는지 결정해야 했다. 이미 모든 조사는 끝났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 디자인과가 있는 고등학교는 딱 두 군데였다. 둘 다 실업계고였고, 하나는 옆 도시에 있던 데다 굉장히 평판이 안 좋았다. 그때 당시 소문을 그대로 옮겨보자면 "둘이 들아가 셋이 되어 나온다."는 웃지 못할 괴담이 돌았다. 물론 다른 한 곳도 썩 훌륭한 곳은 아니었지만 나름 나쁘지 않았다. 내 내신으로는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다. 진로 담당 선생님은 실업계고를 가려면 많이들 가는 곳으로 가라고 했지만(사실은 담당 선생님의 실적과 연계 되어있던것 같다.) 내가 원하던 건 그곳이 아니었다. 그렇게 장학금을 받고 원하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어찌어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치 않았던 대학이지만 디자인 전공으로 대학 졸업장도 받게 되었다. 나는 능력 없는 교수님과 지루한 수업들은 내가 디자인을 질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렇게 몇 년의 방황이 시작됐다. 강연 회사 기획팀(들어간 지 3달 만에 망함)을 시작해 그래도 한번 해보자 해서 들어간 디자인 회사(최악의 가족회사)를 거쳐 무대감독(이라고 쓰고 허접한 유랑단 1일 체험), 영화관, 프랜차이즈 식당 주방 사원, 텔레마케팅 등 다양한 일을 해봤다. 여기저기 치이다 보니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진리를 깨닫고 다시 디자이너로 진로를 틀었다. "회사는 나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고 프리랜서로 일하기도 4년 차, 세상은 여전히 녹녹지 않다.


녹녹지 않은 디자인일을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그래도 너는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니까 어때요?" 등등등... 내 반응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보자면 "롸?" 이 한마디가 될 것 같다. 누가 좋아하는 일은 한다는 거지? 그래 맞다. 분명 순수했던 학창 시절에는 좋아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좋아해서 한다기보단 할 수 있기 때문에 한다. 일을 하면서 매일 내 한계를 마주하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다. 전문 기술이긴 하지만 어쩔때는 일반 단순 노동과 다를게 뭐가 있느 싶을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 중에 디자인 능력치가 가장 쓸만하기 때문에 하는 거다.


나영석 PD   <나영석 피디의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에서 C 에피소드가 나온다. 한창 1 2일이 고공행진을 했을  C 돌연 하차 의사를 밝힌다. 대체  그러냐는 나영석 PD 질문에 C "내가 누군인지 알기 위해 베를린으로 떠날거다"라는 답을 한다. 그럼 베를린 가서 무엇을  거냐는 나영석 PD 질문에는 "아무것도  한다"라고 답하며 "그렇게 아무것도  하다가, 어느  무언가를 손에 잡는다면 그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겠지."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부분을 읽으며 생각했다. 내가 만약 아무것도    있다면, 그렇게 아무것도  하다가 어느  문득 하고 싶은  그냥 하면 된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생각해봤다. 상상이기는 하지만, 디자인은 절대 아닐 거라 확신한다. 오히려 글을 쓰거나 붓을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덧붙이자면 디자인과 예술은 다르다. 예술은   쓰고 마음대로 하는 거고 디자인은 남의 돈을 받고 그들이 원하는것,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하는것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꼭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 특혜라도 받는 것 마냥,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않으면 불행한 것처럼 말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건 물론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떤가? 좋아하는 일이 없으면 어떤가?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이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은 삶이다. 나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늘 감사하다. 조무래기 같은 나도 어느 한구석에서 작동하며 살고 있구나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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